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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다 참새방앗간에 들리듯 하면서 연구실 문턱을 넘나드는 전교사들이 있었다. 한결같은 미소로 늘 비슷한 얇은 책자를 일방적으로 주고 가는 그녀들이 연구실 문턱을 들어서면 나 또한 한결같이 지나가다 왔나보다 하고 차 한 잔을 나누었다.
불교도, 가톨릭, 기독교도. 무신론 등의 다양한 문턱 안의 연구생들은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왜냐면 각자 자신들의 종파에서 그 종교에 대한 의식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서 교육되고 관념 지어진 이성적인 사고보다 그냥 한 세상에서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슷한 사람들이란 동류의식의 감성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편이라서 종교의 색깔에 대해 별로 유념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그들이 나와 가끔 차 한잔을 나누기를 수 년... 가끔 가다가 그들의 종교자리에 나를 끌어당기려는 시도를 했지만 어지간해서 내 뿌리를 섣불리 지나가는 바람에 맡기지 않는 나는 당겨지지 않았다. 내 뿌리가 튼튼해서가 아닌 오히려 허약한 영혼뿌리를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도 내 뿌리를 거기서 잘 뻗어 푸른 잎과 향기를 피울 수 있는 나무라면 몰라도 세상의 소리를 접하지 못해 이해 받지 못하는 오해 투성이의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치열한 삶의 고단한 현장에 서 있기도 하고 또 정신뿌리가 유약함이 있기에 회유되지 않고 그냥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수 년을 들락날락 하던 그들이 어느 날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을 걷지만 옷차림이 세련된 아가씨 하나를 손잡고 왔다. 말을 못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왼쪽이 뇌성마비인 삼십초반의 중복된 장애를 가졌다. 학교를 전혀 가지 못해 한글도 잘 모르고 언니가 목욕탕을 운영해도 언니와 함께 미장원이나 외출을 한 적이 별로 없으며 하루 여섯 번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층주택을 불편한 몸으로 청소를 끝내고 텅 빈 거실에서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여대생 조카의 팬티를 느글한 맘으로 개다가 이대로 살기 싫다는 자아의 꿈틀거림이 일어나던 차에 우연히 TV의 다큐를 보고 사람들의 손을 잡고 제대로 인생길을 가고 싶어서 길을 떠난 것이었다.
마음이 간절하면 그 마음은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고 그것은 자신의 생의 변화를 유도하는 새 길을 가게 한다. 비록 그 길의 걸음걸음에는 때론 이해되는 다정다감의 웃음이 있지만 때론 이해되지 못해 오해하여 눈물과 땀으로 얼룩이 교차되어지지만...
가난하지 않은데도 교육에 소외되고 가정에서도 그렇게 가족과 함께 외출을 하지 못하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집안에서만 지내는 여성장애인들은 이 땅에 아직도 차암 많다. 영화 <오아시스>는 픽션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보다 더 낫지 않은 상황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집을 찾아가 그 아가씨의 엄마인 할머니를 만나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가정부처럼 살아가는 막내딸의 삶이 꽃이 피는 것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냈다. 그렇게 해서 매일 연구실에 오는 아가씨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고 미장원출입과 복지관 및 공공시설을 찾아가는 길을 알게 했다.
성당과 작가모임과 서울여행에도 함께 손을 잡고 다니던 어느 단계에서 손을 놓았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삶의 생존훈련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거나 걸음걸이와 흡사하여 처음에는 몸으로 함께 보듬어서 생활을 나누지만 나중에는 손만 잡고 더 나중에는 그 잡은 손도 일시적으로 놓고 먼 발치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손을 놓고 숨어 있는 엄마를 찾듯이 그 아가씨는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자신의 손을 놓고 모른 척하는 나를 야속한 시선으로 보았고 언제나 내 차를 타고 다니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난감함에 부딪치며 주저앉아서 울기도 하고...
때로는 아가씨의 엄마도 찾아와서 따졌다. 이렇게 중간에서 손을 놓을 바에야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말지...하면서 오해를... 말로서는 풀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면 그들은 처음처럼 내가 그렇게 눈에 보이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찼고 나는 계속 그 아가씨보다 더 형편이 좋지않은 케이스에 유형 무형의 생활을 나누어야 했으니까...그리고 그 아가씨를 위해서도 이 고비만 넘기면 좋아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충분히 느끼기 때문에...
우여곡절의 삼 년이 지나고 혼자서 미장원가고 복지관에 연결해서 취직도 하면서 어느 정도 세상살이가 할 만하기 시작했을 때 그 아가씨는 집에서 나와 독립세대주를 구성하였다. 국민수급자로 지정되고 선도 여기 저기 보던 어느 날... 발에 약간 이상이 있는 우울한 기사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렇게 결혼을 했다. 삼십의 중반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혼자서 세상의 우울을 몽땅 안은 듯의 기사는 한 팔에 안기는 조그만 여자에 대한 책임감에 불타서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고 항상 불편한 몸 때문에 가족과 세상에 소외되어서 못한다는 자의식에 잡혀 맘까지 불편하여 의기소침하던 아가씨는 더 이상 소침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함께 하는 동반의 길에서 안정을 찾은 이들이 임신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고 그들도 걱정을 하였다. 자신들처럼 몸이 불편한 아기가 나오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 또한 사람들은 너희들이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잘 키울려고 그러는가, 하는 의구심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에 전혀 유리하지 못한 일들을 일어나게 한다. 그것은 장애분야에서 아주 심하다. <맘을 먹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이 동서고금에 전해지고 있음에도 몸이 불편하니 그냥 딴 맘을 먹지 말고 그대로 머무르라고 배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길로 유도를 한다.
그래서 신부가 되고 싶고 또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많은 여성들이 제한된 환경안에서 <오아시스>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집이 나올 수 있음에도 자신의 집에 대한 주거권, 이동권, 문화에 대한 근접권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사랑이 통하는 한 사람 소수의 벗들... 또는 신만이 알 수 있는 그 소외의 고통과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만 하는 상황을 견디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엊그제 그녀의 집을 찾았다. 두 번째 아기의 임신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이쁜 아기는 몇 달 있으면 돌공주님이 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키우기 힘들어서 하나만 낳을려고 했는데 절로 그렇게 임신되어 우짜냐고 내게 걱정스럽게 한 손만의 손짓소리와 눈짓으로 말을 했지만 걱정하는 내면에는 성취감과 행복감의 색깔도 보였으며 오히려 나오지도 않은 아기를 가지고 아기가 둘이 되면 원룸의 집이 좁으니 여름에 이사해야겠다는 현실에 대한 상승욕구의 색깔도 진하게 내 비치고 있었다.
그냥 나와서 교육을 받고 싶고 날 따라 다니기만 해도 좋겠다고 하다가 나중엔 애인이 생겼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가 안 생기면 어쩌나 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고, 어떻게 한 아이를 정상적으로 키워가나 하다가 아이가 둘이 되게 된 이제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는 그녀.
그녀의 멈추지 않는 상승욕구는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뻗고자 하는 마음이며 잘만 조절하면 삶의 발전을 유도하는 희망일 수도 있다.
그 희망은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사람의 씨앗을 키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이루게 한다. 단 조금 모자란 부분... 불편한 부분을 누군가가 함께 하여 나눈다면 말이다.
생각과 마음은 홀로라도 하늘 끝까지 갈 수 있지만 불편한 몸으로는 혼자 이 땅에서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엄마의 길도 그렇게 나누어야 갈 수 있다.
망설이던 손을 내밀자. 엄마의 빛을 향해서. 그래서 딸들의 희망을 넓게 꽃 피우자. 작은 손이라도 잡자. 그래서 이 땅에서 아름다운 엄마들의 깊은 노래를 함께 불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