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진서면 입암리에서 차를 내려 양쪽으로 늘어선 전나무를 따라 600여 m를 걸어서 내소사에 닿았다. 멀리 능가산이 보인다.겨울인데도 전나무의 푸르른 향내가 코 끝을 찔러왔다. 전나무 길이 끝나자 짧은 단풍나무 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굴 속 같은 길의 끝에 이르자 직소폭포 2.9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보인다.
천양희 시인은 <직소포에 들다>라는 詩에서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정토)! 나는 늘 꿈꾸어왔다"라고 직소폭포를 바라보며 흥분에 겨워 소리지른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곳에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此岸(차안)의 일이 더 가까워 해야할 일을 잠시 미루고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난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채 여기까지 달고 온 것이다.
가을 내소사엘 갔다
나무들이,어릴적 소판 돈 털리고 돌아온 아버지처럼
너른 어깨를 늘어뜨리고
날 맞았다
열세 살,내 간절한 기도를 아버지는 알았을까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된 내 기도를 저주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떨어지는
서늘한 햇살 속으로
눈부신 옥양목 두루마기 입으신 아버지 걸어가신다
순백의 등뒤로 떨어지는
활엽, 활엽, 활엽들
내소사 부처님들 시간 속으로 함께 숨어 버린다
아버지도 저처럼,한번쯤 자유로웠을까
까탈 부리기 시작한 두 무릎 위에
세속 도시의 시간들 들쳐메고 찾은 내소사 숲에서
삼십여년 전,소판 돈 털린 뒤 소울음 삭이며 자장면 사주시던
아버지를 만났다
유별나게 소매치기에게 돈을 잘 털려
어머니에게 혼나시던 아버지
하지만
결코 인생은 털리지 않은 아버지를
가을 내소사 숲에서 만났다.
고광헌 詩 <가을 내소사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全文
능가산. 내소사는 바로 능가산 자락에 있다. 능가산(楞伽山)의 능가(楞伽)는 파리어로도 마찬가지지만 범어인 Lan、ka-의 음역이다. 부처님이 번뇌의 근원은 무한한 과거로부터의 습관에서 오는 것으로, 모든 법은 오직 자기 마음의 비춤이라고 설파하는 능가경을 설한 곳이 바로 이 능가산이란 산이다. 아마도 산 이름은 거기서 유래했을 터이다.
천왕문을 지나 내소사 경내로 들어섰다.겨울 내소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그시 눈을 내려깔고 있을 뿐 아무것도 說(설)하지 않는다.저것이 이른바 無說(무설)의 說法(설법)이란 것인가. 겨울 내소사는 내게 말한다. 침묵하라고, 그대의 마음 밖으로 자꾸 비어져 나오려는 소리를 가라앉히라고 한다. 나는 마음의 체로 말들의 찌꺼기를 걸러낸다. 淸(청)하다.침묵의 진면목은 淸(청)이 아닐까.
사찰 경내로 들어서자 천년 수령의 느티나무 고목이 버티고 서있다. 위풍당당하다. "워메 뭔 나무가 저리도 옴팡지게 생겨부렀다냐. 내소사는 참 든든한 불목하니를 두었네 그려." 내 얄팍한 수작에 느티나무는 어서 오라고 반가이 맞아준다. 단순한 놈. 나는 입천장을 가리고 하하하 웃는다. 엉뚱한 상상이 마음을 따스하게 바꾸어 놓는다.
대웅보전 옆 배흘림 기둥에 붙어서서 꽃문살을 들여다 본다. 아름답다. 무채색의 소박함이 은근히 곱다. 이 문살을 맞춘 소목장은 왜 여기에 채색을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는 말(言)을 이기는 침묵의 힘. 모든 色(색)이 다하고 나서야 빛을내는 空(공)의 의미를 깨우친 賢者(현자)였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니 내소사 경내 어느 곳에도 단청이 없다. 아마 내가 내소사의 경관을 청하게 본 건 그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내소사를 빠져나와 곰소항 부두의 황혼에 섰다.황혼은 어디서나 슬프지만 여기선 햇살이 한층 더 측은하게 다가와서 서 사람을 아득하게 한다.그런 내 쓸쓸함을 눈치챘는지 바다로 들어가려던 태양이 <개그 콘서트> 버전으로 한 마디를 던지고 사라진다.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라고.여행의 끝에서 맨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은 삶의 귀소성이다. 그렇게 나도 다시 돌아가서 못 이기는 척 일상을 끌어안을 것이다.
삶에 대하여 받들어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