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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다음의 절기로 '계칩'(啓蟄)이라고도 하는 '경칩'(驚蟄:겨울잠 자는 벌레가 놀라 깨다)은 땅 속에 들어가 동면하던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봄비를 맞아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양력 3월 6일 쯤이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웅덩이에 알을 까놓다.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에 개구리 알을 한바가지 퍼다가 먹는 풍속이 전해 오고 있다. 도롱뇽 알을 건져먹기도 한다.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기도 한다. 이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한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 청개구리, 뱀, 도롱뇽 등이 나오고, 겨우내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버러지도 꿈틀거린다는 경칩 때가 되면 담배 모를 심고 과일밭을 가꾸는 등 농사가 본격화된다. 경칩 때는 식물도 겨울잠을 깨는데 이를 '식물기간'이라 한다. 보리, 밀, 시금치, 우엉 등 월동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본격 개시한다. 바야흐로 농촌에 봄이 시작된다.
| | |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2월령(2月令) | | | | 이월은 중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엿새날 좀생이로 풍년흉년 안다 하며
스무날 날씨로도 대강은 짐작하네
반갑다 봄바람이 정답게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싹이 튼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산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보습쟁기 차려놓고 봄갈이를 하오리라
살진 밭 골라서 봄보리를 많이 갈고
면화밭 갈아두어 제때를 기다리소
담배모 일찍 심기 이를수록 좋으니라
원림을 가꾸니 수입을 더해 좋다
첫째는 과일나무 둘째는 뽕나무라
뿌리를 상함없이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담장도 덧쌓고 개천도 쳐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깨끗이 쓸어 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리라
여섯 가축 못길러도 소 말 닭 개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여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바기 씀바귀요 소로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약초서적 따져가며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천궁 시호방풍 산약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미처 캐여두소.
농촌집에 쥔 것 없어 값진 약 어이 쓰랴
*정학유는 다산 정약용의 아들입니다. / 정학유 | | | | |
씨뿌리는 수고가 없이 풍요한 가을걷이를 할 수 없다. 이 때 바쁘면 일년 농사 절반은 한 셈이다. 농부가 이 때 딴 짓을 했다간 일년 농사 망치기 일쑤다.
예전엔 동지로부터 9일 단위로 나눠(9*9=81) 81일 쯤 지나면 농부들은 '구구가'(九九歌)를 불렀다. 긴 겨울동안 농사를 손놓아 게을러지는 것을 추스리고, 자연현상을 관찰하면서 농사 시기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 중 아홉째 마지막 경칩 부근의 노래는 "밭가는 소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해서 '구구경우(九九耕牛)'라고도 불렀다.
농가에서는 손 없는 날을 잡아 장 담그기를 한다. 장 담그는 일은 가정의 일 년 농사라 할만큼 중요하다. 훌륭한 장맛의 비결은 좋은 재료 선택(콩, 소금, 물)과 주부의 손끝 정성에 있다. 잘 씻어 말린 장독에 메주를 넣고, 체에 받쳐 거른 소금물을 메주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 위에 달걀 하나 띄워 윗부분이 1/3 쯤 떠 있으면 적당한 농도가 맞춰진 것이다. 고추의 붉은색은 악귀를 쫓고 참숯은 살균작용을 하기에 꼭 넣는다. 장을 담근 장독에는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왼새끼줄을 꼬아 솔잎, 고추, 한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장맛을 지켰다.
'장맛'이 그 집 음식맛을 좌우한다. 전통이 있는 명가에서는 진짜 올 장 담그기는 정월에 한다. 요즘이야 삼월도 좋고 사월도 좋지만 그러면 장맛이 제대로 안 나 티가 쓸고 곰팡이와 구더기가 잘 들게 돼 장맛이 영 아니기 때문이다.
날이 완전히 풀리는 경칩 때가 되면 겨우내 쌓인 인분도 푼다. 인분은 직접 논밭에 뿌리기도 하지만 집 한켠에 쌓인 퇴비더미를 파고 묻어서 몇 달간 잘 썩은 거름을 파내 논밭에 내었다. 퇴비더미를 '두엄'이라고 하는데, 두엄은 인분 또는 외양간에서 나온 소, 돼지, 염소, 닭, 누에 똥과 음식물 찌꺼기, 낙엽이 섞인 거름으로 주재료는 역시 똥이다.
퇴비를 금비(金肥)라하고 한약에 비유한다. 농토에 보약같던 퇴비는 지력을 높이는 결정적인 재료였는데 조상들이 퇴비 만들기에 열을 올린 이유도 바로 지력 증진을 통한 생산량 향상에 있었다. 두엄가지고 농사짓는 것이 유기농이었는데 외국에서 유기농을 다시 배운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굳이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과농소초(課農小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금비는 질소, 인산, 칼륨 등 유기화합물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퇴비와 아궁이 재(灰)를 같이 섞어 농사에 이용하였다. 그것도 부족해 세수한 땟물조차 거름으로 만들고, 오줌도 아무데서나 누지 말고 꼭 집에서 누도록 했다.
또한 보리싹의 성장상태를 보고 1년의 풍흉(豊凶)을 점쳤으며, 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이나 다래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여 마시면 위장병과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도 하였다. 이 무렵 대륙에서 남하하는 한랭전선과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기단과 만나 비가 오면서 흔히 천둥이 울리기 때문에 땅속에 있던 개구리·뱀 등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땅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높새바람과 꽃샘추위에 놀라 잠시 움츠러들지만 이내 활기를 찾는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와 뉴스비젼21, 조인스닷컴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