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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을 떠나온 지 15년, 그사이 한국은 군사 독재를 청산하고 명실상부 온라인 민주공화국을 이룩하였다. 근 수년간 온라인은 내게 유일하게 한국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온라인카페도 여럿이고, 자주 돌아보는 인터넷 신문도 여럿이며 간혹 한국음악도 개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음악방송도 접속을 하곤 한다.

영어로 운영하는 내 개인웹 (http://www.vadose.net)은 인터넷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지만 주로 미국 속의 삶에 국한되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내 아내의 웹 (http://www.youngsinlee.com)은 김대중 정권이 한국간호사가 남아돈다는 미명아래 폐교했던 국군간호사관학교 살리기에 활용되어 온라인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시켜 주었다.

그와 함께 만들었던 다음카페 '미국간호사로 미국병원에 취업하기 (http://cafe.daum.net/usanurse)'는 2천여명에 육박하는 간호사회원을 지닌 매머드 카페로 발전하여 아내의 후배이자 미네소타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주경아 간호사가 비공개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주인으로서 관여하는데 그 한계가 들어났고, 젊은 한국간호사들과의 교류에 내 아내가 제동을 걸음으로서 지금은 그 운영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이어 내 전공인 환경공학으로 온라인 환경운동을 통해 조국에 작은 봉사라고 하고자 다음카페 '환경 이야기 (http://cafe.daum.net/groundwater)'와 프리첼 커뮤니티 '노란장미의 환경이야기 (http://www.freechal.com/enature)'를 개설하여 고등학생을 비롯한 환경관심자들의 자발적인 운영자 참여로 인해 그 회원이 각각 370여명과 310여명으로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회원들은 주로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환경운동가를 비롯하여 주부, 직장인, 학생에 이르기까지 바람직한 고른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시절 전두환의 살육과 정권찬탈을 지탄했던 이유로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과 불법감금을 경험했었다. 비록 적은 보상과 유공자증서는 받았으나 반드시 전두환에 대한 확실한 응징이 필요하며 절대로 그 처벌의 요구를 버릴 수 없어 만든 다음카폐 '광주민주항쟁 80518 (http://cafe.daum.net/80518)'은 그 뜻에 동참한 회원이 500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비록 졸업생 360여명 중에 26명에 불과하지만 나의 초등학교 다음카폐 '부천북초등 제46회 (http://cafe.daum.net/wonmisan)'는 30여년전의 아름다운 추억의 원미산과 복사벌로 달려가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름 이상원, 그 이상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다음카폐 '이상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http://cafe.daum.net/sangwonlee)'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떠나 같은 이상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340여명의 '이상원'들이 모여 '이상원'이라는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아름다운 사연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이상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얽힌 재미있는 사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어린시절을 보낸 소사, 지금의 부천엔 나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중에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글도 잘쓰고 사진작품도 뛰어난 감수성이 풍부한 구창서라는 친구가 있다. 그 근처에는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복학한 이상원 카폐의 운영자 이상원이 살고있다.

군대를 제대한 이상원군은 주민등록증갱신을 위해 나의 친구 구창서가 운영하는 사진관에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구창서: 음 ... 미국에 있는 내친구와 이름이 똑 같네 ...
이상원: 혹시 그분 플로리다에서 물 관리하시는 분 아닌가요?
구창서: 아니 자네가 그 친구를 어찌 아는가?
이상원: 예 그분이 제가 운영자로 있는 이상원 카페의 주인이세요.

그날 퇴근 후 나는 "야 나도 '구창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란 카페를 만들어야겠다", "친구 분이 부천에서 사진관 하시지요? 저 오늘 그 사진관에서 주민등록증 사진 찍었어요"라는 이메일과 카폐 게시판의 글들을 흐믓한 웃음 속에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생활 속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인터넷. 한국인터넷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인터넷 불륜'. 물론 한국교민 몇 되지 않는 내가 사는 곳에도 청소업하는 사람이 야후 채팅을 통해서 감언이설로 처자를 한국에서 불러들여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동네 경찰서에서 그 처자의 진술서를 영어로 번역해달라 하여 가슴이 아픈 적이 있었지만, 아직도 인터넷은 그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고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조우가 대다수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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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연구소 연구원 근무하다 버지니아텍에서 농공학을, 브라운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으며 노스이스턴 공대 환경공학석사와 로드아일랜드대학 토목환경공학박사를 취득했다. 플로리다주 리 카운티 공무원을 시작으로 미연방공무원으로 국방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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