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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가만히 내려놓은 지게의 모습은 마치 이젤과 같았다. 하얀 도화지를 얹으면 금방이라도 빨강 파랑 초록색 물감으로 그린 예쁜 그림이 채워질 것 같은.

그러나 정작 지게꾼의 지게위에 얹어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짐들이다. 지팡이 하나로 자신을 지탱하며 밤거리를 누비는 지게꾼들, 7일 새벽 그들을 찾아 동대문 밤거리에 나섰지만 생각만큼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 김진석
이유를 알아보니 엘리베이터를 갖춘 신식 상가가 들어서면서 지게꾼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란다. 대신 그들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손수레였다.

다시 그들을 찾아 과거 동대문의 대표적인 의류상가인 평화시장 주변을 가보니 지게꾼을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요청하니 손사래를 치며 단번에 거절했다. 그리곤 다른 곳에 가보란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옮기고 옮기길 서너 번. 간신히 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방송국에서 찍어 갔는데 얼굴이 다 나왔어요. 찍을 때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고선, 얼굴이랑 다 나와서, 아니 우리들 중에는 자식들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는 자신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보여 주기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그들의 임금은 물가상승에 비해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힘들고 돈벌이도 되지 않지만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단다. 바로 권리금 때문이다. 할 사람이 없다보니 매매가 잘 이루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보람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고 말할 뿐 별다른 말이 없다.

평화시장 쪽으로 더 들어가자 지게 일을 10년째 해왔다는 신모(42)씨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은 2교대로 움직이며, 그는 야간반이라고 했다. 보통 저녁 7시에 나와 새벽 5시에 들어간다고 했다. 24시간 할 수만 있다면 하겠지만 할 일거리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15건 정도의 일을 했다”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일이 거의 1/5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엔 평화시장에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 상인들이 많이 왔었다고 한다. 덕분에 당시엔 일도 많았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떨어지자 그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밤에 일하면 남들은 특근 수당도 받는데, 우린 힘들기만 하고 또 일거리도 없어서 돈을 못 버는 게 가장 힘들어요."

▲ 전태일 열사의 분신 현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지게
ⓒ 김진석
다른 사람들이 왜 인터뷰를 꺼리는지 그 이유를 묻자 그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잖아요. 창피하니깐."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열심히만 하면 먹고 살 수는 있으니 그게 보람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에게 일거리가 하나 생겼다. 짐을 지게에 실어 나른 후 다시 차에 싣는 그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을 물었다.

“일단 경기가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나라 경제가 살아야, 시장 경제도 살고, 나도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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