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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라는 밝은 이름의 개구쟁이가 아빠 손을 잡고 도착하니 일행이 다 모였다. 바로 시산제를 시작했다. 올 한해 안전 산행과 온갖 잡귀 물리칠 액막이의 원을 담은 제문 읽어 하늘로 날려보내고 동호 회장이 두 번 절한 뒤 돼지머리에 정성을 꼽고 술 올렸다가 음복하고 남은 것은 사람들께 장난스레 뿌린다. 모인 사람 모두 절하고 정성 꼽고 음복한다. 마냥 엄숙한 제는 아니다. 정성 꼽는 일에 유난히 사람들은 관심이 많고 목소리도 높다. 이름만 남은 허례허식이 아니니 자유스러워 더욱 흥겹다.
산신께 드리는 제가 끝났으니 사람을 위한 잔치를 시작할 때다. 지난 한 해 동안 산행을 열심히 한 산적(동호회에서 서로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다)에게 상을 수여하고 몇 가지 명목의 시상식이 이어진다. 상품은 모두 등산 장비. 모두모두 새 장비 받아 산을 더 사랑하고 더 자주 산에 안기라는 격려의 의미다. 때때로 박수가 크게 터져 나온다.
이 때쯤이면 점심을 거른 배가 쪼록쪼록 급하게 음식을 찾는다. 눈 앞에 푸짐한 음식이 있으니 뭘 더 기다리랴. 떡이며 고기며 접시에 나눠 담고 막걸리 흔들어 잔에 따라 돌려 마신다. 술잔이 돌면 돌수록 오랜만에 만나 굳은 표정이 풀리고 북적대는 속에 오가는 말이 살갑다. 돌아가는 술잔은 빨라지고 은근한 취기는 올라와 흥겨움이 더해 간다. 산에서 누리는 흥겨움에 객이 어디 있고 주인이 어디 있을까. 지나는 등산객을 불러 음식을 나눈다. 멋쩍어 하던 객도 금세 술 한잔에 친해지고 나눠먹는 김치 한 접시에 정겨워진다. 정성스런 음식 나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잡것들아 훠이훠이 물러나라.
흥겨움의 막바지 고개는 아나바다. 고가의 등산복을 쾌척한 형도 있고 아껴 두었던 장비를 꺼낸 이도 있다. 싼 값에 서로 필요한 장비를 나눈다. 싸게 팔렸다고 실망하는 이 없고 싸게 팔았다고 서운한 이 없다. 생각보다 싸게 사서 싱글벙글 즐거운 얼굴만 있다.
자리에 흘렸을 지도 모를 병뚜껑 하나 없나 다시 한 번 살피고 시산제를 정리한다. 나온 쓰레기 한 손에 들고 남은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잡아 내려 가는 길 도우며 그렇게 사람들은 봄을 부르는 시산제를 마치고 북한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