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안보 분야가 아무리 '고위 정치(high politics)'의 영역이고 비밀과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오늘날 미국의 외교안보가 소수의 테크노크라트에게 장악 당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께 새삼스럽게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점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정부에서도 명분은 없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한미관계를 고려해 이라크 전쟁 지원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내에서는 우리의 국익과 대미관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라크 전쟁 지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는 인식도 많이 팽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지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비전투원을 파견해야 할지, 전투원을 파견해야할지 '지엽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히 이라크 전쟁 지원의 불가피성으로 '국익'을 많이 거론합니다. 즉, 명분을 버리고 국익을 택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상호간의 의존과 협력, 그리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명분과 국익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조화시켜야할 대상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명분과 도덕성이 의심받을 때, 국익 역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전쟁 지원 추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반할 뿐더러, 정부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막아볼 생각은 안하고,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편협하고도 불확실한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또한 이라크 전쟁을 지원할 경우, 그 결과에 대한 깊이 있는 사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CIA 전직 관료들조차 경고하고 있듯이 미국의 대 이라크 침공 강행은 전세계에 걸쳐 미국 및 이라크 전쟁에 지원한 국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테러를 낳을 가능성이 높고, 한국이 이라크 전쟁을 지원할 경우 테러의 표적으로 한국 및 해외 교포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슬람국가 및 국민들과의 관계 악화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지원의 따른 전리품으로 미국 주도의 석유 이권 분배에서 약간의 득을 얻더라도, 이는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로 상쇄되고 말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을 한반도의 남쪽인 한국이 지원하고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임하지 않은 채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면, 북한의 핵 시위는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높고, 이라크 전쟁 종결 이후 미국의 총구가 북한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 상태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때, 명분과 도덕성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갖는 근본적인 위험성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갖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우리가,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염원하는 인류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쟁을 지원하고선 어떤 명분과 논리도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 이라크 전쟁 지원을 통해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유화시키는 것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근시안적인 접근입니다. 미국의 대북강경책 완화와 한국의 이라크 전쟁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일시적으로 미국의 대북발언을 유화시킬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했지만, 이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화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및 지원 불가 방침을 천명하면, 한미동맹관계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및 국제사회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미국의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에 병력과 돈을 대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미동맹이 갈수록 미국의 패권주의 추구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이는 정작 중요한 우리 국민들로부터의 외면을 당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미동맹의 미래는 더욱 불안해질 것임을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바로잡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가 '정치적 수사'가 아닌 '정책적 의지'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국제사회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대통령께서 단호히 'No'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많은 국제인권단체와 유엔 기구들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면 수십만의 이라크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그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참사'입니다. 더구나 이라크 정부가 유엔의 무기 사찰 및 해체 활동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지금,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를 이유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겪은 민족입니다. 반세기 전 전쟁의 참상은 두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강력한 '반전' 의지로 승화되고 있고, 이는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전'의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라크 전쟁 지원은 분명 득과 실이 모두 있습니다. 득과 실,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이라크 주민들이 겪게 될 고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잠시 눈을 감고,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떨어지는 총탄 속에서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과 이라크 어린이가 직면하게될 모습을 중첩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최선은 역시 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나라들과 국제 시민사회는 어느 때보다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50년 된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할 때, 바른 길로 인도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무리 그 친구가 힘과 고집이 강하더라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의 무모하고도 위험한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당당한 외교'를 펼쳐나갈 것을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