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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충남 태안군 '태안문화원'에서는 요즘 '찾아가는 문화·예술학교'라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군내 각 읍·면 지역의 경로당을 돌며 노인들께 우리 고장의 향토사와 역사문화, 전통문화, 문학, 미술, 교양, 건강, 100여 년 전의 동학혁명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풍물과 노래도 가르쳐 드리는 행사다.

태안군과 '한국마사회'의 후원으로 노인들께 점심도 제공하며 벌이는 이 문화사업에 나도 강사로 참여하여 우리 지역 향토문학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있다. 11일은 이 사업의 첫 번째 날로 원북면과 이원면에서 행사가 있었다. 나는 우선 이원면의 포지리 경로당에 가서 오전 10시 30분부터 50분 동안 40여명의 노인들께 강의를 해 드렸다.

경로당의 비교적 너른 방을 가득 메운, 남녀 비율이 거의 정확해 보이는 노인들은 의외로 진지했다. 노트를 펴놓고 메모를 하시는 분도 있고, 강의를 하는 내가 고맙고도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강의 중에 나는 노인들께 엊그제 일요일 오후에 열린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의 TV 공개토론'을 보셨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노인들이 보았다고 했다. 집에서 보신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경로당에서 함께 보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공개토론에 대한 토론과 어떤 결론적인 것도 이미 노인들에겐 대체로 마련이 되어 있음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공개토론에 대한 시골 노인들의 '합의된' 견해가 궁금했다. 그것을 이따가 점심 식사 자리에서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나는 우선 너무도 상식적인 검찰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를 잠시 설명했다. 부정적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는 우리나라 사법정의의 실상에 관해서도 얘기했고, 검찰의 정치권력 예속 문제와 관련해서는 너무도 부러운, 우리와 확실하게 대비되지 않을 수 없는 이웃나라 일본의 검찰에 관해서도 잠시 언급을 했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 사법시험의 매우 상징적인 한가지 실태를 소개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번 사법시험의 첫 문제를 시(詩)에 관한 문제로 출제한다는 이야기…. 사법시험 응시자들은 첫 문제로 출제되는 시에 관한 문제에 오답을 쓰는 것을 가장 부끄러워한다는 이야기….

노인들은 대체로 내가 왜 프랑스 사법시험의 예를 소개하는지, 그 이유를 쉽사리 간파하는 눈치들이었다. 그것은 곧, 프랑스가 왜 사법시험의 첫 문제를 시에 관한 문제로 출제를 하는지, 그것의 상징성까지 헤아린다는 뜻일 터였다.

나 다음에 정우영 태안문화원장의 역사문화에 관한 강의가 있은 후 곧 점심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경로당의 넓은 방안에 여러 개의 상을 놓고 둘러앉아서 노인들은 즐겁게 식사를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엊그제 9일 오후의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의 TV공개토론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골 노인들의 직설적인 표현은 재미도 있고 감칠맛도 있었다.

"그 젊은 금사들이 한마디루 싸가지들이 읎더먼. 우덜 같은 촌 무지랭이들두 테레비를 보면서 느끼구 생각허는 게 있는디, 국민들을 아주 그냥 삭 무시허더먼."

"눈에 뵈는 게 읎어서 그려. 아, 시세 좋구 글력 좋은 금사 나리들 눈에 뵈는 것이 있겄남. 뵈는 건 그저 즈이덜 금빛깔 나는 밥그릇뿐이지. 안 그려?"

"그래두 그렇지, 나라 생각, 국민들 생각은 아예 허덜 않더먼."

"당장 눈앞에 있는 대통령두 눈에 잘 안 뵈는디, 뵈지 않는 국민들 생각을 헐 수가 있겄남. 안 그려?"

그러자 전직 교사였던 한 노인이 점잖게 한마디했다.

"한마디루 그쪽 동네두 나부랭이들이 많어서 그려. 우리 사회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나부랭이들이 지천으루 많거든. 그런디 선생 나부랭이, 기자 나부랭이, 공무원 나부랭이들만 있는 게 아녀. 판금사 나부랭이들두 많어. 그래서 그런 겨. 사람이란 모름지기 무얼 허게 되면 최소한 나부랭이는 되지 말어야 허는디, 인간 세상이란 게, 거기다가 우리 현실이 그렇지를 않어. 실은 그게 문제란 말여."

전직 교사 노인의 그 말에 답하는 다른 한 노인의 말은 더욱 재미있고 의미심장했다.

"그게 다 우리나라 핵교 교육이 잘못 돼서 그런 겨. 우덜 중에 과거 핵교 선생이었던 사람두 있어서 허는 얘긴지먼, 우리나라 핵교 교육이 문제가 많어갖구, 사람을 맹글어 내지 뭇허구 맨 시험기계에다가 기술자만 맹글어 내서 그런 겨. 워띠어, 내 얘기가 틀렸남?"

"그건 그려. 금사든 뭐든 지 이익보다는 나라를 생각허구, 바른 세상을 생각허믄서 살어야 허는디, 워디 그런감."

"사람이 무슨 직책에 있든지 간이 올바르게 살라면 일정헌 바탕 철학이 있어야 허구 인생 문제를 깊이 헤아릴 줄 아는 눈두 가져야 허는디, 그게 워디 쉬운 일인감. 금사라는 사람들이 공부를 헐 때는 법률 공부만 헌 게 아니라 나름대루 법철학이라는 것두 공부를 혔겄지먼, 고시에 합격헤서 출세를 헤갖구 권력 조직 숙이서 높은 벼슬을 살다보면 그 앞에 법만 남구 철학이라는 건 읎어지게 되는 모앵여."

"전 한 금사 입이서 나온 386세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386세대 금사들은 일종의 죄의식을 갖구 살어야 헌다구요. 수많은 동료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포기허구 민주화 투쟁에 헌신헐 때 오로지 골방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만 헌 죄,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금사로서 우리 사회에 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다 바쳐서 절대루 비겁허지 않게, 똑바르게 직분을 수행헤야 헌다구요. 금사들이 오늘날 자신들의 불만 때문에 대통령과 공개 토론두 허구, 대통령헌티 그렇게 무례헌 언동을 헐 수 있는 것두 다 따지구 보면 오랜 세월 민주화 투쟁에 헌신허구 희생헌 사람들 덕이 아니겄남유. 그런디 대통령과의 공개 토론을 보니께 그 금사들의 자질과 의식 수준이 너무도 기대 이하여서, 거기에서 저는 그들의 나약함과 몰상식과 비겁함을 범벅으루 읽구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워쨌거나 우리나라 교육이 문젠 겨. 사람을 맹글어 내지 뭇허는 교육 말여. 사람은 무엇이 되든지 간에 사람부터 되어야 허는디, 그게 말이야 쉽지. 그런 말 물르는 사람이 어디 있구, 안 허는 사람이 어딨어. 선생이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헌다, 정치가가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헌다, 성직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헌다, 판금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헌다…. 그건 누구나 허구 댕기는 말 아녀?"

"말이 너무 흔헌 것두 탈이여. 세상이 말처럼만 된다면야 뭔 문제가 있겄어. 암튼 뭐가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헌다는 말은 옳은 소리니께, 자네두 말여, 노인이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혀. 내 말 알겄남?"

이 말에 좌중의 모두는 큰소리로 웃었다. 나도 함께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는 말이었다.

무엇이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흔한 말이어서 도리어 실상이나 실체를 포유하지 못하는, 공허한 껍데기 말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인생의 황혼녘에 이른 한 노인이 친구 노인에게 우리 사회의 그런 실상을 역전시킬 법한 묘한 농담을 했다. "노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허는 겨." 그리고 모두는 즐겁게 웃었다.

나는 지금도 노인들의 그 대화와 마지막을 장식한 그 말과 웃음소리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마지막 말과 웃음들이 이상하게 내게 신선한 희망을 안겨 주는 것만 같다. 그만한 감각과 의식과 비판력을 소유한 노인들이 시골 경로당에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살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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