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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물안전분야를 공고 등 학교에서 전공하지도 않았고 현장경력 또한 전무한 노모(24)씨는, 얼마 전 회사의 요구로 소방안전협회가 주관을 하는 위험물안전관리자 교육을 3일간 받고 위험물안전관리자 수첩을 받았다. 즉 현장경력조차 없는 무자격자가, 24시간 교육만으로 국가기술자격인 위험물취급기능사 자격을 공짜로 취득한 셈이다.

노씨는 “회사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단지 3일 교육만을 받은 후 위험물취급기능사와 동급인 위험물안전관리자가 되기는 하였으나, 이 업무가 원래 공고 관련학과 출신들의 업무영역인 관계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며 “같은 공고출신이고 공조냉동기계기능사인 자신이 볼 때, 이러한 양성수첩제도(또는 인정기능사제도)는 공고출신들을 죽이는 제도”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이처럼 소위 ‘양성수첩제도’로 인정기능사가 대량 배출이 되고, 그들이 정식기능사들의 자리를 대신하면서부터 기능사들은 백수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연봉도 대 폭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능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체계’가 무너져, 기능사들이 영세민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능사들은 오늘날 '공고 기피현상'의 중심에 소위 양성수첩제도라 불리는 인정기능사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용지물로 전락한 '국가 기능사제도', 무엇이 문제인지 집중취재 했다.

‘기능사제도’ 실태

‘국가기술자격제도’의 역사는 지금부터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지난 1963년, 국가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사법이 제정공포가 되어 기술사를 배출하면서부터, 그리고 정부 주무부처별로 각종법령에 의거 기사, 산업기사, 기능장, 기능사를 배출하면서부터다.

정부 주무부처별로 산재해 있던 기술자격제도를 통합시키고, 기술자격을 기술계(기술사, 기사, 산업기사)와 기능계(기능장, 기능사)의 2계열로 분류를 한 것은 지난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 등 고도산업화정책의 추진일환으로 ‘국가기술자격법’이 제정공포가 되면서부터다.

이처럼 국가기술자격제도가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배출된 기능사는 540만 1091명(2001년 말 기준)으로 기계, 전자, 전기, 화학, 건축, 토목, 환경, 자동차, 항공, 조선 등 이공계 전 분야에서 거의 해마다 배출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이들 기능사들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열사의 나라 중동과 기타 나라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 선진기능을 습득한 덕분인데,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와 이들의 기술력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에 정부도 이들을 ‘조국근대화의 기수’라 호칭하였고, 우대정책도 시행을 하여, 이들은 타 직종 종사자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일례로 당시 공고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명문고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상위권 중학생들이 입학을 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기능사에 대한 우대정책이 효과를 보았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정부의 기능사에 대한 ‘천대정책’으로 사정이 확 바뀌었다. 공고출신들의 진출영역인 기능사가 되면 처우는 고사하고 생계를 우려해야할 지경에 이르면서 ‘공고 기피’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능사가 되면 장가가기도 힘들어 총각으로 늙어죽을 판인데, 중학생들이 공고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이 기능사들의 지적이다.

‘양성수첩제도’ 때문에 백수로 전락한 기능사

기능사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는 이면에는 무엇보다 대책 없는 정부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기능사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의 ‘기술자 천대정책’ 문제가 발단이 돼 지난해 3월 결성된 기술인연대에 따르면, 양성수첩제도는, 무자격자에게 일정경력(대졸 12년, 전문대졸 14년, 고졸 18년)만 있으면 검증도 없이 기술사와 똑같은 자격을 공짜로 주는 인정기술사제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사 자격을 주는 인정기사제도가 기능사제도로까지 확대가 되어 만들어진 제도다.

이처럼 정부가 기능계까지 기술인정제도를 적용시키고 있다. 현행 ‘양성수첩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인정위험물취급기능사라고 할 수 있는 위험물안전관리자의 경우, 학력이나 경력이 전무해도 소방안전협회가 지정한 장소에서 24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위험물안전관리자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형식적인 시험(4과목 객관식 20문제)은 있지만, 합격률이 거의 100%인 것을 보면 3일간 교육으로 누구에게나 자격을 주는 셈이다.

인정공조냉동기계기능사인 냉동시설안전관리자, 인정가스기능사인 운반취급안전관리자, 인정보일러취급기능사인 가스용보일러조종자, 인정소방설비기능사인 방화관리자 등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기능사가 배 이상(추정치, 정부의 통계조차 없음)으로 늘어나 기능사 과잉공급시대를 맞고 있다. 문제는 현장경력조차 따지지 않고, 실력과 무관하게 인정기능사 자격이 주어지고 이들이 전문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기능사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어렵게 기능사시험에 합격한 상당수 정통 기능사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막노동판을 전전긍긍하는 신세로 바뀌었다.

기술인연대(www.engforum.or.kr)의 박성규 기술사는 “정부가 특정이익단체들의 입장만을 받아들여 24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인정기능사 자격’을 부여하면서 부실이나 기술하향평준화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며 “공고 기피현상의 원인제공자는 다름 아닌 인정기능사제도를 만든 정부당국자들이다”고 말했다.

공고출신에 공조냉동기계기능사인 이모(25)씨는 “나는 기능사 자격증이 쓸모가 없어서 장롱에 처박아 두었고, 지금은 모 업체에서 철판 자르는 막노동 일을 하고 있다” 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도 못 받는 자격증이라면 차라리 ‘국가기술자격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인정기능사제도’ 폐지가 해결책

기능사들은 현재의 ‘양성수첩제도(또는 인정기능사제도) 문제’는 정부가 지난 95년, 부족한 기능사를 보충하기 위해 탁상행정식으로 ‘기능인정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 불거진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능사가 부족하다면 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방식으로 충원을 할 일이지 강냉이 뻥튀기 하듯이 대량양산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기능사들의 항변이다.

따라서 ‘기능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마구잡이식으로 받을 수 있는 현행 ‘양성수첩제도(또는 인정기능사제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기술자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어야 ‘국가 기능사제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인연대의 한 관계자는 “인정기술자제도나 인정기능사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 밖에 없다” 며 “기술자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기술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조속히 인정기술자제도나 인정기능사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사인 서모(49)씨는 “학력과 경력이 전무해도 3일 교육만 받으면 정식기능사와 동급인 인정기능사가 되는 마당에 중학생들이 굳이 공고로 진학을 해서 기능사 자격을 취득할 필요가 있겠느냐” 며 “정부는 막연하게 시장에서 기술자의 가치가 하락이 되었기 때문에 이공계 기피풍조가 만연한 것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공대 기피현상에 이어 ‘공고 기피현상’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 그 원인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 손방현 기자는 기술사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술인연대' 대표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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