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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자격을 둘러싸고, 교수와 변호사 두 단체가 맞서 있다. 법학교수들은,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법역별로 전문화된 변호사가 부족해서 국내시장이 외국 로펌에 잠식당할 우려가 있으니 자신들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 달라는 주장이고, 변호사들은 법률전반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하고, 실무경험도 없는 법학교수들에게 예외를 인정하여 변호사 자격을 주는 것은 평등권에 위배가 되므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공계의 꽃, 이공계의 변호사로 불리는 기술사들은 요즘, 법학교수와 변호사간의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이라고 한다. 과학기술계에는 이미 지난 95년부터 ‘인정기술사제도’가 도입이 되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정기술사의 한 영역인 ‘특급기술자’ 의 경우 일정한 학력이나 경력(대졸12년, 전문대졸14년, 고졸18년)만 있으면 정부가 기술사와 똑같은 자격을 공짜로 부여하고 있다.
또 기술사조차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주어지는 자격인 ‘수석감리사’의 경우도 일정한 학력이나 경력(대졸22년, 전문대졸25년, 고졸28년)만 있으면 자격이 공짜로 주어진다.
이 때문에 2만 5천여 명에 불과하던 기술사수는 현재 10만여 명(4배나 증가)까지 늘어나 ‘기술사 과잉공급시대’를 맞고 있다. 이렇게 학력과 경력서류 몇 장만으로 기술사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은 인정기술사들이 월급을 덤핑치고, 기술용역가를 덤핑치는 바람에, 기술사시험에 합격한 상당수 정통기술사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끼니조차 걱정을 하는 신세로까지 전락이 되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고위관료 중에 엔지니어 출신이 별로 없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 힘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기술사들이라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정부당국자들은 기술인연대나 기술사회 등 엔지니어 단체가 강력히 항의를 해도 반응조차 없다고 한다.
기술사들은 요즘 변호사 자격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 새삼 변호사 두 단체의 정부에 대한 영향력에 부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 95년 ‘인정기술사제도’를 만들 당시에 정부는, 기술사 단체(한국기술사회 등)에게 의견조차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정부가 변호사 단체에게는 의견도 수렴을 하고, 또한 그들의 뜻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인정기술사’도 있는데, ‘인정변호사’는 왜 안 되나?
‘기술사제도'의 역사는 지금부터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지난 1963년, 국가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사법이 제정, 공포가 되면서부터다.
제도가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배출된 기술사는 25000여명. 기계, 전자, 전기, 화학, 건축, 토목, 자동차, 항공, 조선, 환경 등 총 97개 분야의 기술사들이 거의 해마다 배출이 되고 있다.
이들 기술사들은 한때 산업현장의 꽃으로 불리며 관련 분야 최고의 연봉으로 스카웃 될 만큼 인기가 높은 선택된 직업이었다. 그리고 공무원 서기관특채, 대학부교수 초빙 등 대우를 받았었다. 시험이 어려운 만큼 자격증 취득자들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주었던 셈이다.
일례로 2002년 4월 18일 발표된 제66회 기술사시험의 경우 합격자는 전체 응시자의 3% 미만에 불과했다. 이는 사법고시(8%), 행정고시(8%) 등 다른 시험과 비교해도 월등히 낮은 합격률로, 기술사시험을 이공계의 변호사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때문에 ‘인정기술사제도’가 도입되기 전만 해도, 공대출신들의 최종 목표는 국가고시인 기술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법대출신들의 최종목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정기술사제도로 시험은커녕 ‘이공계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술사들은 기술사와 변호사는 똑같은 ‘전문 자격사’인데, 왜 기술사에게만 ‘인정제도’를 적용 시키냐며 항변을 한다. 정부가 힘 있고, 권력 있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막강한 변호사들에게는 ‘인정제도’ 적용을 감히 엄두도 못 내면서, 이러한 특권을 가지지 못한 기술사들에게만 ‘인정제도’를 버젓이 적용을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변호사자격의 경우, 기술사들은 한국법학교수회가 건의한 4년제 대학에서 10년 이상 재직한 법학교수나 부교수 등 340여명에게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할게 아니라 ‘인정기술사 자격’처럼 그 범위를 대폭 확대하자고 주장을 한다.
예컨대 대졸 12년 경력자에게 경력서류 몇 장만으로 ‘기술사 자격’을 공짜로 주듯이, 12년 이상 된 변호사 사무장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돼야 정부가, 힘과 권력이 없는 기술사들에게만 ‘인정제도’를 적용시켰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정제도’는 모든 전문가에게 적용 가능한 제도, 그러나 적용 시 나라가 흔들릴 것
정부당국자들에 의하면 ‘인정기술사제도’는, 지난 95년도에 기술사가 부족해서 만든 제도라고 한다. 기술사가 부족하면 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방식으로 충원을 할 일이지, 강냉이 뻥튀기 하듯이 대량양산해서야 되겠냐는 것이 기술사들의 지적이다.
‘인정기술사제도’는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를 하고 있는 희한한 제도다. 기술사들은 정부당국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인정제도’를 변호사 외에 다른 전문가에게도 적용을 시킬 수가 있다고 주장을 한다.
가령 의약분업으로 의료재정이 바닥이 나서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는 전문의 수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인정제도’를 적용시켜서, 일반의, 간호원, 물리치료사 등 병원근무 12년 경력자에게 ‘인정전문의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전문의 수가 늘어나서 진료비가 대 폭락을 할 것이므로 의료재정은 1년 이내에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인회계사 사무실 근무 12년 경력자에게 ‘인정공인회계사 자격’을, 약국 12년 근무자에게 ‘인정약사 자격’을 주는 방식으로, 인정제도를 모든 ‘전문 자격사’에게 확대적용을 시킨다면 전문가들에 대한 이용료가 저렴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대적용을 시키면, ‘인정기술사제도’가 ‘기술사제도’를 붕괴 시켰듯이 변호사제도, 전문의제도, 공인회계사제도, 약사제도 등 모든 제도는 붕괴가 될 것이고, ‘이공계 기피현상’처럼 법대 기피현상, 의대 기피현상, 상대 기피현상, 약대 기피현상 등이 일어나서 나라전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을 한다.
이럴 정도로 나라에 큰 재앙을 가져오는 제도가 ‘인정제도’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자들이 ‘인정기술사제도’를 끝까지 고수를 하고 있기에, 기술사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분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인정기술사제도’를 세계최초로 만든 건교부에게 한 수 배워야
기술사들은, ‘인정기술사제도’는 건교부가 세계최초로 창안을 해 낸 제도로서, 법무부가 법학교수들에게 인정변호사 자격을 주려거든 건교부에 가서 한 수 배우라고 조언을 한다.
위헌소지가 있든지 말든지 간에, 그리고 기술사제도가 붕괴가 되든지 말든지 간에, 또한 이공계 기피현상이 발생 되든지 말든지 간에 기술사의 수급논리를 앞세워서 탁상행정 식으로 밀어붙이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주장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건교부, 산자부, 정통부 등이 ‘인정기술사제도’가 몰고 올 파장이나 부작용은 전혀 검토도 없이 건설기술관리법, 전력기술관리법, 정보통신사업법,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 등에 도입을 함으로서 이공계의 꽃이라는 기술사가 ‘1인 연평균 전문가 소득’에서 순위에도 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국세청 자료인용 2003. 1. 9일자 중앙일보, -> 1위 변리사: 5억7천890만원, 2위 관세사: 3억4천650만원, 3위 변호사 : 3억1천390만원, 4위 회계사: 2억4천100만원, 5위 세무사: 1억9천730만원, 6위 법무사: 1억1천120만원, 7위 건축사 8천980만원)
기술사들은 정부가 ‘인정제도’를 기술사에게만 적용을 시키는 행위는,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을 한다. 변호사나 의사들처럼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다고 ‘기술사 천대정책’을 써서야 되겠냐는 항변이다. ‘기술사 천대정책’이 아니라면 다른 전문가에게도 인정제도를 똑같이 적용을 시키던지 아니면 현행 ‘인정기술사제도’를 즉각 폐지하라고 주장을 한다.
지난해 11월 WEF(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1위로 아시아 4룡 중 꼴찌를 기록했다. 기술경쟁력은 세계 9위에서 18위로 추락을 했다. 미국의 ‘더 사이언스’는, 한국은 기술력의 추락과 함께 이공계 기피풍조가 만연함으로 앞날은 뻔하다고 지적을 했다.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정부의 ‘기술사 천대정책’ 때문이다. 이공계의 최고봉이라는 기술사가 사회적으로 돈 잘 벌고, 대접을 받았다면, 이공계 기피현상이나 기술력의 추락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이러하기에 이공계 기피현상의 중심에는 ‘인정기술사’ 문제가 있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공계 기피현상 또한 해결 될 수 없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기술사들은 정부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고 한다. 진정으로 이공계 문제를 해결 할 의지가 있는가? 진정으로 이 나라에 경쟁력이 있는 기술자의 씨가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가? 진정으로 이 나라의 미래가 과학기술발전에 달려있다고 믿는가?
덧붙이는 글 | 손방현 기자는 기술사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술인연대' 대표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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