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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쑥국 끓여드세요
쑥국 끓여드세요 ⓒ 김규환
1. 봄나물이 사람에게

<쑥>

숫제 쑥은 왜 쑥쑥 자라는 겁니까? 지구가 멸망해도 마지막까지 쑥은 살아남을지도 모르는 끈덕진 식물입니다. '쑥대밭'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황량한 들에 쑥 밖에 자라지 못할 폐허에 가까운 땅쯤으로 여깁니다.

"아따 이 사람아, 뭔 소리여! 다 우리도 쓸모가 있응께 그런 소리 하덜 말더라고."

쑥대님 들으셨군요? 저 혼자서 해본 소리를 가지고 너무 과민반응 하시네요. 말씀해 보시죠.

"시장에 한 번 가보소. 봄 내음이 나지 않은가? 자네부터 맨날 입맛이 쓰다고 투정이잖은가? 내 그 마음 알겄네만 집안에만 있지 말고 봄기운을 취하게. 입 속이 쓰면 쓴 걸로 다스려 보게나. 금방 입맛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이시~"

어르신 근데 쑥을 캐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지금 남부지방은 섬이든 어디든 지천일세. 도로변만 피해서 논둑이고 밭둑이고 간에 양지바른 곳이면 쉬 만날 수 있어. 달래도 몇 개 보이더만…. 땅덩어리가 작은께 이번 주말이면 아쉬운대로 캘 수 있을 거야."

알겠구요. 쑥을 캐와도 씁쓸한 맛에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할미가 몇가지 가르쳐 주지. 된장국 끓일 때는 무를 쳐서 넣거나 요즘 철인 제주 감자를 넣고 먼저 국을 끓여. 다음에 막판 파 넣기 1분전에 적당한 양을 넣어서 먹어봐. 그러면 씹히는 맛도 있고 향도 대단하다네."

"아참 빠뜨릴 뻔 했구만. 진달래꽃이 곧 나오니 화전(花煎) 붙일 때 같이 모양도 내고 한 번 넣어 봐 괜찮을 거야."

가르침 감사합니다. 부탁하나 드리겠습니다. 아이 소풍 갈 때까지 그 보드라운 맘씨 변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해강이 솔강이 흰떡에 쑥물들이고 팥고물 넣어 '반달떡' 만들어 주거든요.

"염려 말게나. 내 비록 쓰다고 고약한 사람 취급받고 따돌림당하지만 자네 말은 들어 줄 거구만. 정 못 믿겠거든 냉동실에 잘 싸서 넣어두게나. 그럼 1년 내내 긴요하게 쓸 수 있어."

달래장 한 종지면 밥 한 그릇 뚝딱
달래장 한 종지면 밥 한 그릇 뚝딱 ⓒ 김규환
<달래>

봄이면 같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달래와 나를 두고 사람들은 '냉이달래'하며 한 통속으로 여긴다. 그게 일단 맘에 들지 않는다. 그 큼직한 뿌리를 가진 냉이는 짐짝 취급해도 몸이 부서질 염려가 없어 괜찮다. 그런데 왜 나까지 짐짝 취급을 넘어 짐짝 사이에 봉지를 둘둘 말아 쑤셔 넣느냔 말이다.

연약한 내 몸을 사람들은 알기나 하는가? 개미허리 반에 반도 안 되는 내 가녀린 다리를 보기나 했는가? 내가 이 바늘만큼 가는 몸을 간신히 추스려 돌 틈에서 고개를 들어 세상 구경하기까지 얼마나 고난의 연속인지 알기나 하는가? 추위는 그래도 견딜 만 했다. 내 발을 땅 속에 넣어 뒀으니 말이다.

그나마 농부나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은 내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걸로 믿었다. 하지만 웬걸? 농부는 내 작은 꿈을 짓밟아 밭 가는데 지구만큼 큰 흙덩이로 나를 덮어놓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물 캐러 와서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 드물고 밟고 다니기 일쑤다.

어디 이뿐인가? 하우스에서 기른 가지런하고 늘씬하게 빠진 도시 친구들은 잘도 팔려나가는데 나같이 볼품없는 짙푸른 깡순이는 시골 장터에나 가야 노릇을 할까 말까 하는데 누군들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봄에 내를 못 먹어 안달이라고 들었다. 그 맛 잊고 산다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대파, 쪽파, 솔(부추의 전라도 말)은 알아도 내 이름 기억하는 사람 드물다. '달룽개'(달래의 방언)를 기억하라고 강권하지는 않겠다. 다만 내가 소개한 음식 한 번 해 먹어보고 나를 잊지 마시라고 간청드린다.

(추신)시골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을 전화 연락을 해서 쑥과 달래를 캐러 간다고 말씀하십시오. 다음에 쑥을 캐고 냉이를 캐다가 보면 우연히 높은 언덕 돌틈과 돌밭에 자잘하고 파란 싹이 돋아납니다. 그걸 뿌리까지 조심조심 몇 개 캐서 집으로 가져와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을 반반 비율로 섞은 후 볶은 참깨 넣고 고춧가루 조금만 치십시오. 여기에 참기름 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다음에 뜨끈한 밥에 한 번 비벼서 드셔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생 '달래'라는 이쁜이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달래 장이 남거든 김에 싸서 드셔보세요.

-2003년 봄. 이쁜 달래가-

머위는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서 양념을 만들면 더 맛 있지요
머위는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서 양념을 만들면 더 맛 있지요 ⓒ 김규환
<머위>

"쑥이 쓰다면 '머위'는 씁쓸합니다. 그래서 우리 염소들도 잘 뜯어먹지 않습니다."

"아하 그거요? '머구'? 뭐 머굴게 있다고 덤비겠습니까? 진딧물도 달라붙지 않는답니다."

"느그작~느그작~. 난~ 지렁이~인데요. 머귀 옆에 가면~ 내 귀가 멍멍할 정도로 톡 쏘는 맛이 쥑~입니다. 가끔 소독할 때 한 번씩 놀러 가지요. 물가에 잘 자라기 때문에 몸 축일 때도 찾는답니다. 하여튼 향긋하지요."

"(개굴개굴) 옛날에는 토란을 밭가에 심어서 비오면 토란잎 아래 가서 비를 피했는데요 (개굴) (또 개굴) 요즘은 사람들이 게을러져서 토란 심는 사람 없어요. 10년 전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머위대 밑에 가서 편히 노닥거린답니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요. (훌쩍훌쩍) 그날 엄마 산소가 떠내려가고 말았답니다. (엉엉. 개굴개굴)"

"사람들은 왜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좋아라 몇 달 따라 다녀봤자 개취급 당합니다. 양력 7월 15일 경이 되면 복날이 있습니다. 복(伏)날이면 저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무지막지한 더위에 혀를 다 빼서 길게 내놓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이 때 아이스크림 하나 갖다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매정하더이다.

그리고 다음부턴 옥편에서 이 복(伏) 자 좀 없애 주세요. 꼴사납게 사람 밑 그늘이라도 찾아 쉬고 싶은 게 우리네 심정인데, 사람들은 살살 꼬셔 개를 인간 발 아래에 넙죽 엎드리게 하고는 질질 끌고 갑니다. 사실 그 글자의 원형은 개 끈이 있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요 그 글자 좀 없애 주세요.

그 다음에 어떻게 하시는 줄 압니까? 지금 부터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도록 무식하게 다리 난간에 걸어두고 패 댑니다. 우리 형제들 몸에 칼집을 대고는 된장 풀고 들깨 갈아넣고 양념을 하여 나중엔 '머위대'도 넣어 잘도 먹어대니 대명천지에 이런 볼 쌍 사나운 일이 어디 또 있답니까?"

참나리싹
참나리싹 ⓒ 김규환
2. 나머지 꽃들과의 대화

<참나리>

참, 나리도 뭐 그리 바쁘십니까? 잠시 쉬셨으니 얼른 꽃바람 맞으러 나가시겠다구요?

"야, 이사람아! 여긴 겨울이랄 것도 없어. 이제 나가봐야 쓰지 않겄나? 좋은 시절 보냈네."

나리께선 그 혹들은 다 어디다 두고 작년까지 있던 식솔들만 거느리고 나가시렵니까?

"잘 보아두게. 머잖아 그 까무잡잡한 내 손주녀석들이 달팽이 촉수처럼 하얗게 몇 개 뿌리가 나."
"그 녀석들이 걸음마를 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도 못 말린단 말이시!"

그런데요, 봄바람 마중 나가시면 언제나 나리를 뵈올 수 있을까요?

"걱정 말게. 이르면 6월 말에도 내 상기된 얼굴에 이젠 세월을 말할 수 있을 걸세!"
영감나리도 연로하셔서 그런지 해마다 얼굴에 까만 꽃점이 늘어납디다. 만수무강하소서.

들국화 싹
들국화 싹 ⓒ 김규환
<감국>

감국 선생님은 해마다 가을이면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여름 그 긴 해를 머금어서 지친 것일 수도 있는 게야. 그 불덩이를 서늘한 가을에 내뿜어 내 몸 식히는 것으로 보면 될 걸세! 어느 해고 나는 그 때만 되면 노랗지 않은가? 향도 마찬가질세. 내 알기로 자넨 나를 따다가 술에 담가 먹더구만. 차로도 먹는단 소릴 들었네."

감국 선생님의 가족관계를 좀 말씀해 주세요.

"그래 국화도 여러 가지지. 취나물 종류는 모두 국화고 내 사촌뻘 되지. 나도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들 한 살림씩 차려 나갔응께 지들 사느라고 바쁜 게지."

들에 나가도 영 찾아 뵙기 힘들던데요?

"그럴 수밖에. 어디 내 얼굴이 멀리서 보면 보이던가? 가까이 오면 달라지거든….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마음을 열고 다가와 보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자네도 알겠지만 요새 서양에서 들어온 국화는 크고 화려하긴 하더만 향은 나 같지 않거든…. 취향이야 다 다르니 뭐라하지는 않겠네만 예전 내 증조부 때는 한 집안이었네. 늦가을에 벌이 찾아오기는 우리 집안을 따라 올 자가 없네. 향은 말해 뭐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 뉴스비전21에 송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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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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