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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한 마디가 또 일파만파(一波萬波)를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은 17일 오전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도·감청 의혹 등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선 전에 제기한 이른바 '3대 의혹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와 관련된 노 대통령의 발언이 "도청사건 어물쩡 넘겨선 안돼"라는 제목으로 실린 청와대 일일 홍보물인 '청와대 브리핑'이 기자실에 배포된 것은 이날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곧 이어 이 '청와대 브리핑'은 오후 3시 19분에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실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제기한 이른바 3대 의혹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분명하게 밝혀줄 것을 법무부에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도청문제 수사상황 개요를 보고 받고 '이 사건은 국가기관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준 문제로 도청했으면 한 것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하고,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했으면 그것도 처벌해야 한다. 단호하고도 명명백백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과 한나라당 중 한쪽은 치명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언론은 선거 때면 불거지는 국가정보원에 대한 도·감청 의혹이 이번에는 양단간에 결단이 날 것처럼 보도했다. 그리고 당연히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국정원과 한나라당 중의 어느 한쪽은 치명타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정원은 그간 "도청 사실이 없으며, 야당이 폭로한 문건은 국정원 내부 문건이 아니다"는 논리로 일관되게 도·감청 의혹을 부인해온 반면에 한나라당은 "상당수 관련자들이 도청 내용을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만큼 국정원이 도청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국정원과 한나라당의 어느 한쪽은 '치명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치명타'를 뛰어넘는 사법처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7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도·감청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수사 불응 상황'에 대해 보고했고,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여야 타협 상황'을 보고했다.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화답은 "여야가 타협해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국민들이 납득하는 수준의 예의를 갖춰 어디서든 조사해서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감청 수사는 정계개편 야당 압박용?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18일 새벽 국정원 현직 과장 등 3명이 긴급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언론은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보도하면서 마치 '사정'(司正)이나 '정계개편'을 예고하는 식으로 춤을 췄다.

"한나라당은 18일 검찰이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과 관련, 국정원 전·현 직원 3명을 긴급 체포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자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도 정계개편을 위한 야당 압박용이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중략)…한나라당은 이번 검찰 수사가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정계개편을 위한 야당 탄압용 수사로 흐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일보> 3월 18일자 "국정원 도감청 수사 한나라 정계개편 '압박용' 긴장")

"정치권에 돌연 사정바람이 불고 있다. 국정원 도청의혹 공방, 나라종금 로비의혹, 세풍 사건에 대한 수사가 갑자기 재개되거나 탄력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에 정치적 의도가 담겼느냐다. 의구심을 표시하는 쪽은 새 정부가 임기 초반의 개혁 추진과 총선을 앞둔 정계개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고 경계심을 보인다." (<중앙일보> 3월 19일자 "정치 의혹사건 수사 재개 '사정 시작됐나' 정계 긴장")


대통령의 말이 검찰의 중립성 해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이런 인식과 긴장을 부추긴 것은 검찰이 국정원 현직 과장 1명을 포함한 3명을 긴급체포한 사건에 대한 언론의 추측보도가 난무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부 언론은 다음과 같이 검찰 수사가 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진행되었으며 수사 방향까지 바꾼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이 조사중인 사건의 수사방향과 처리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우려를 낳고 있다.…(중략)…실제로 검찰의 수사는 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이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은 18일 국정원 현직 과장과 관련된 민간인 2명을 긴급 체포하는 등 수사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동아일보> 3월 19일자 "대통령 '말'에 검찰 중립성 해친다")

"국가정보원의 도감청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행보가 매우 수상쩍다. 검찰은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철저수사' 언급이 떨어지자 바로 다음날인 18일 현직 국정원 과장 등 3명을 기밀누설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없던 혐의자가 나타난 듯한 모양새다. …(중략)… 검찰이 국정원 상대 수사에 부담을 느껴 수사를 적당히 매듭지으려다 노 대통령이 '국정원이든 한나라당이든 철저히 조사해 실체를 가리라'고 지시하자 갑자기 수사 방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한겨레> 3월 19일자 "대통령 말 한마디에…검찰 '쏜살' 수사")


공안2부 "체포 예정일 3월초에서 인사 때문에 미뤄져"

그러나 이런 추정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공안2부 수사팀이 국정원 내부 감찰정보 유출 혐의가 있는 현직 과장 등 3명을 긴급 체포하려던 날짜는 원래 3월초였다. 그런데 이들을 동시에 덮쳐야 하는데 3인 중 한 명이 지방에 내려가는 바람에 차질이 생겨 계획을 미루다가 검찰 인사가 나는 바람에 또 늦춰져 '거사일'을 18일 새벽으로 잡은 것이 지난주였다는 것이다. 물론 체포계획은 상부에도 보고되었다. 다음은 공안2부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사 전날인 17일 오후에 노 대통령의 '도감청 의혹 철저수사 지시'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우리도 오비이락(烏飛梨落)이 될 것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 발언 때문에 '거사'를 미루는 것도 모양이 우스웠다. 또 '거사'에 필요한 수사인력을 동원해 이미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다시 연기하면 보안유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따라서 예정대로 '고'(Go)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따라 쏜살같이 움직이는 '정치 검찰'이라는 덧칠을 했다.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하자마자 그만한 수사인력을 동원해 체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냐."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 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대통령에게 '깨진' 이후로 검찰총장이 중도 사퇴하는 등 조직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언론의 추측보도는 만신창이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대통령 말이 검찰의 중립성을 해친다'기 보다는 '언론의 추측보도가 검찰의 중립성을 해친다'고 해야 적절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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