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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매스컴은 참가자가 3000여명으로 보도했으나 집회측은 4000명이 넘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매스컴은 참가자가 3000여명으로 보도했으나 집회측은 4000명이 넘었다고 주장했다. ⓒ 안호진
동경의 훗싸시(福生市)에 거주하는 한 여학생이 자신이 사는 바로 옆에 미군 공군기지가 있다고 하며 매일 요란스럽게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이라크 시민과 어린이를 죽인다고 생각하니 도처히 참고 있을 수 없어 작사 작곡한 `바람이 부는 곳`이란 곳을 연주하였다. "지금 바람이 방향이 바뀌고 있다. 바뀌고 있다. 여기 여기에서 전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우리들의 사는 일상의 주변에서 전쟁의 바람이 불고있다고 열창했다.

"주여! 나를 평화에 도구로 써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에 도구로 써주소서" ⓒ 안호진
또한 집회 주최측은 미국의 중요한 반전시민단체인 `ANSWER`의 니콜라스 사르트씨가 보내는 "부시가 지금 이라크의 시민들을 죽이고있다. 지금도 늦지않았다. 모두가 연대하여 전쟁을 저지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낭독하였다. 또 지금의 집회준비에 나이 어린 학생들이 준비하는 과정에 많은 적자가 발생했다며 전쟁반대 평화모금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주최측인 `worldaction`집행위원이 미국의 반전운동 단체 `ANSWER`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의 주최측인 `worldaction`집행위원이 미국의 반전운동 단체 `ANSWER`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안호진
오늘 참가자는 각종 직업을 가진 일반인이 참가하였다. 간호 전문학교 선생을 한다는 현직 간호원은 "전쟁이 일어나면 간호원들은 국가의 법에 의해 강제로 징집됩니다. 지금 우리 간호원들은 환자들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 본분인데 전쟁이 나면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간호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전쟁에 고이즈미 수상은 일본인 1인당 3만8000엔의 전쟁 부담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으로 병원을 증설하고 돈없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할 수 있도록 세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하였다.

전쟁 반대 연설은 6시경 시가지 시위로 접어들었다. 시가지 시위는 1진과 2진으로 크게 나뉘어져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출발하여 시부야 시내를 관통하여 시부야 역을 지나 7시10분경 공원에 돌아왔다.

한 간호전문학교 교사가 "인간이 절망에 빠진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있기 때문"이라는 환자의 말을 소개하며 아직도 반전운동은 늦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간호전문학교 교사가 "인간이 절망에 빠진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있기 때문"이라는 환자의 말을 소개하며 아직도 반전운동은 늦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안호진

이날 집회의 특징중 하나인 반전평화 피켓은 자신의 주장을 담은 내용으로 즉석에서 준비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날 집회의 특징중 하나인 반전평화 피켓은 자신의 주장을 담은 내용으로 즉석에서 준비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 안호진

22일 오후 4시부터 시부야역 앞.
22일 오후 4시부터 시부야역 앞. ⓒ 안호진

촛불시위는 세계 반전 평화운동의 흐름.
촛불시위는 세계 반전 평화운동의 흐름. ⓒ 안호진

애인과 같이 시부야에 놀러 나왔다가 남자 친구의 반전에 대한 과격한 표현에 놀라는 모습.
애인과 같이 시부야에 놀러 나왔다가 남자 친구의 반전에 대한 과격한 표현에 놀라는 모습. ⓒ 안호진

시부야 역을 지나 철다리를 빠져 나오는 시위대.
시부야 역을 지나 철다리를 빠져 나오는 시위대. ⓒ 안호진

시위대는 두 개로 나뉘어져 시가지 행진을 하였다. 시위를 끝내고 미야시타 공원으로 가고있는 시위대.
시위대는 두 개로 나뉘어져 시가지 행진을 하였다. 시위를 끝내고 미야시타 공원으로 가고있는 시위대. ⓒ 안호진


방송국 등에서는 이날 참가자가 3천명이라 하였으나 주최측은 도중 참가자가 늘어 4000여명이나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오는 29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집회를 다시 갖기로 약속하고 7시 20분경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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