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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기념관 입구에 서 있는 형제의 상, 국군이 인민군을 껴안고 있다
ⓒ 김은주
"전쟁이 어떤 색채를 띤다 하더라도 인류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이지요. 삶이란 바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특별한 호의인데, 그것을 스스로 저버린다는 건 정말 말이 안돼요."

베트남 작가 반레의 장편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저자인 반레가 직접 겪은 전쟁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지요. 주인공 빈의 입을 빌어 반레가 말하려는 것은, 전쟁에서는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 이 아이는 자기가 서 있는 것이 무서운 무기란 것을 알고나 있는지...
ⓒ 김은주
그런 전쟁을 '기념'하는 곳이 한국에는 있습니다. 1994년 6월에 개관한 용산구 '전쟁기념관'이 바로 그곳이지요. 주말 오후, 부모님 손을 잡고 봄나들이에 나선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탱크며, 헬리콥터, 끔찍한 살상무기인 미사일 따위를 둘러보는 동안 아이들은 "우와, 신난다!" "굉장하다, 저기 미사일 있다, 뿡야 피쉬 퓨쉬, 꽝!"을 연발하며 좋아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전쟁은 게임이요, 놀이일 뿐 조금의 현실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전시관 안에는 '가상 전투 체험관'을 만들어 아예 게임비를 내고 전쟁 게임을 하도록 배려(?)해 놓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그 곳에서 경건함이나, 숙연함을 느끼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 회랑
ⓒ 김은주
한국전쟁 15만2279명 월남전쟁 4770명

죽어간 이들의 이름 앞에서, 누구도 죽지 않고 평화롭게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사자 명단을 새긴 돌벽을 지나는 동안 경건해지고 엄숙해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그 곳을 찾는 이들이 마냥 신나게 놀다 갈 생각만 했겠는지요?

▲ 빗돌에 새긴 이름들, 저들도 한때는 아름다운 청춘이었거늘...
ⓒ 김은주
전쟁기념관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쟁 때문에 죽어간 민간인에 대한 이야기나, 고엽제 때문에 힘겨워하는 월남 파병 군사의 아픔이나, 평화에 쏟아붓는 돈의 몇 배나 되는 예산을 국방 예산에 쏟아부으면서 아슬아슬한 전시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올곧게 보여 주는 공간은 없어 보입니다.

육군이, 해군이, 공군이 어디서 어떻게 싸워서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을 얼만큼이나 죽였나에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입니다. 전쟁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우리 군인의 용맹함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미 신라 시대 때부터 우리 군을 파병해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적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처음은 신라 현덕왕 때 당에서 일어난 '이사도의 난'을 평정할 목적으로 3만 군사를 보낸 것으로 써놓았더군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일본으로, 후금으로 러시아로 군대를 파병하기도 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들어와서는 월남전에 4만7872명을, 91년 걸프전에는 314명을 보냈었다고요.

그 전쟁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우리는 혹시 소수자를, 약한 자들을 억누르는 강대국의 처지에만 늘 찬성해 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승리자를 위한 들러리 역할을 자청하며 혹시나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 김은주
거창하게 지어 놓은 그 곳 '전쟁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전쟁이란 것을 조금도 기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히기에 참으로 적당한 곳이더군요, 그 곳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기념'이란 말의 의미를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곳은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평화기념관'이 아니겠는지요?

무기를 보여주고, 전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가 치러야 했던 평화의 대가가 어떤 것이었으며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주는 그런 공간을 우리는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일까요?

이번 이라크전 결과가 어찌되든간에 가장 큰 패배자는 평화를 포기하고 전쟁을 선택한 미국일 것이고, 명분 없는 전쟁에 병력을 보내려 하는 우리나라 역시 패배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평화의 대가는 크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요르단에서, 예맨에서, 세계 곳곳에서 반전집회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이젠 우리도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평화기념관'을 가질 때가 되었습니다.

▲ 나이키 미사일
ⓒ 김은주

▲ 저 무기의 끝이 겨누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내일일지도...
ⓒ 김은주

▲ 왼쪽 것이 스커드 미사일이다
ⓒ 김은주

▲ 이 아이들의 미래에 평화를!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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