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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생활 중에서 오후에 백화산을 오르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시간에 한가롭게 등산을 하는 내 소행이 여전히 무안하고 죄스럽긴 하지만, 나의 이 휘늘어진 팔자는 정말이지 하느님의 은총일 법도 하다.
당뇨라는 심각한 질병 때문에 하루도 등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당뇨는 대전 보훈병원의 정밀 검진 결과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판정을 받았을 만큼 확실하고도 깊다. 그러나 아직은 약물과 내 노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금산에 직장을 두고 사는 막냇동생이 계속적으로 대주는 홍삼액을 매일 아침 공복에 한 봉지씩 마신다. 콩팥 보호를 겸하는 혈당강하제 한 알씩을 매일 아침 식사 전에 복용한다. 그리고 인내와 극기로 최대한 음식을 조절한다. 그러고도 매일같이 오후에는 산을 오른다.
혈당강하제를 복용해도 홍삼액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는 혈당 수치가 다르다. 당뇨병 환자로서 홍삼액의 효능을 실감하니, 계속적으로 홍삼액을 사서 보내 주는 동생이 여간 고맙고 미안하지 않다.
혈당강하제와 홍삼액을 복용하고 음식 조절을 하면서도 오후에는 반드시 등산을 해야 한다. 등산을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혈당 수치가 판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등산을 하고 나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 2시간 후 혈당 체크를 해보면 완전히 정상으로 나온다. 그러니 등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뇨 관리를 하는데 있어서 규칙적인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당뇨 관리를 위해 매일같이 등산을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오로지 전적으로 운동만을 위해서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당뇨 관리를 위해서 하는 등산으로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것들을 함께 추구한다. 일단 '부수적인 것'이라고 썼지만, 그것들은 참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산을 오르고 내리며 기도를 한다. 산행을 하며 기도를 하는 것이야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사순절인 요즘에는, 그리고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로는, 또 이라크 전쟁 상황을 지켜보며 살아야 하는 요즘에는 더욱 많이 열심히 기도한다.
요즘엔 하루 30단씩 묵주기도를 하는데, 산을 오르고 내리며 할 수 있는 '묵주기도'라는 것이 천주교회에 있는 것에서 큰 다행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튼 당뇨 관리를 위해 등산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그것으로 우선 일거양득을 이룩한다.
사람들은 대개 건강만을 위해서 등산을 한다. 천천히 걸어도 4,50분 정도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백화산 등산에 무슨 거창한 목적이나 성취감 따위가 결부되지는 않을 것 같다. 모처럼 소풍을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건강이 주목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도 짧다. 잠시 쉬지도 않고, 백화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 쪽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냥 금세 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시간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 풍광과 잠시 동안의 '감상' 따위를 쉬이 사절하고 그냥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고 뭔가가 아쉬워지기도 한다. 나는 백화산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천천히 정상의 가장자리를 거닐며 사면 팔방의 풍광에 취하면서 다시금 감상에 빠져들곤 한다. 수없이 오르고 접한 풍광이건만, 보고 또 보아도 도무지 싫증이 나질 않고, 날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상을 안겨 주니, 그 끊일 줄 모르는 감상의 나래가 나는 한없이 좋다.
내 가슴을 정갈하게도 하고 질척하게도 만드는 신선한 감상의 물결 속에서 여러 가지 상념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글감도 얻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니, 백화산 정상은 그야말로 내겐 '사색의 장소'인 셈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신선한 감상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니, 그것으로써 나의 백화산 등산은 당뇨 관리, 기도와 함께 확실하게 '일거삼득'을 이룩하는 셈이다.
또 한가지가 남았다. 실은 그 남은 한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글의 주제다.
나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또 잠시 머무는 산의 정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아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야 당연하고, 저쪽에서 먼저 내게 인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꼭꼭 인사를 한다. 묵주기도에 열중하다가도 저만치에서 오는 사람을 보면 잠시 기도를 멈추고 인사를 한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는 것이 참 즐겁다.
인사말은 간단하다. 주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때로는 "수고하십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백화산 동편 가장 어려운 코스로 오른 나이든 사람이나 여성을 정상에서 만났을 때는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어려운 코스로 오르셨습니까"라고 칭송과 격려를 드린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고 나서는 그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되새기는 때도 있다.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인 인사말이지만, 그 인사말에는 역사적 민족적 사연이 함축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었다.
갖가지 내우외환을 겪으며 하루하루 어렵게 살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에게는 밤을 무사히 넘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밤새 안녕'은 모두에게 밝은 아침의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밤새'라는 말이 떨어져 나가고 '안녕하세요'로 간단 명료해진 인사말은 그만큼 무거운 사연의 기운이 가시고 탄력적이고 발랄한 정감만 남게 되었다.
옛날에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아침 먹었남?"등의 끼니 해결 여부를 묻는 인사말도 많았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 인사말이 '밤새 안녕'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끼니 관련 인사도 언젠가부터 우리 삶의 현장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산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면서 더러 재미있는 반응을 접하기도 한다. 방긋 웃으면서 같은 인사말로 기분 좋게 화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왜 인사를 하느냐는 식으로 아무 대꾸 없이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언제 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알아보려는 듯이 나를 살펴보며 마지못해 대꾸하는 사람도 있고, 말없이 피식 웃는 사람도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이 먼저 인사를 했는데도 그냥 대꾸 없이 지나치는 젊은 사람을 보면 섭섭한 마음과 함께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또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에 얼마나 인색하고 익숙지 못한가를 체감하는 듯한 기분에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산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꼭꼭 인사를 한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인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좁은 등산로, 공기 좋은 오솔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냥 무심히 지날 수 있는가.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고마워하는 화답이라도 듣게 되면 나는 더욱 기분이 좋다. 내가 먼저 건넨 인사로 상대방이 한 순간이나마 기분 좋은 느낌을 가졌다면, 나는 그것으로 큰일을 한 셈이다. 남에게 좋은 마음이나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나는 현실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아무에게나 인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군의원 한 자리라도 하기 위한 마음으로, 그 현실적인 목표와 계산으로 부지런히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나는 산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하늘에 선업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하늘에 선업을 쌓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즐겁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 산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여 하늘에 선업을 쌓는 것으로써 나의 백화산 등산은 당뇨 관리, 기도, 사색과 함께 '일거사득'을 이룩하는 셈이다. 또 그러므로 당뇨라는 나의 심각한 질병은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특별한 은총, 값진 선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저 이라크라는 나라에서 울려 퍼지는 가장 비극적이고 무서운 파열음들이 온 지구를 음울하게 뒤덮고 있다. 최근에 읽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충격적으로 접한 얘기인데, 저 이라크 땅의 폭음은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물(지하수)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길어와서 여러 이웃들과 나누어 마시는 '해미성지'의 물도 최소 분자들이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파괴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웃끼리, 모르는 사람끼리도 더욱 열심히 인사를 잘해야 한다.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고 화답을 하면서 진정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어야 한다. 서로서로 안녕을 빌고 나누려는 마음, 그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서 꽃피어날 때 우리는 좀더 평안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가톨릭 굿 뉴스>, <창비디지털>, 태안군 홈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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