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성. 1600여년 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한 제국의 수도. 화려했던 전성기의 유물보다 전란의 상흔을 더 많이 간직한 부여로 가는 길 내내 라디오에서는 이라크 전황이 흘러나왔고 나는 차마 라디오를 끄지 못했다.
민간투자로 만들어졌다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예상보다 30여분 일찍 도착한 부여에서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이 부소산성인 것도 그런 때문인지 모른다. 해발 106m밖에 안 되는 얕은 언덕에 지어진 이 산성은 북쪽으로 백마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부여가 한 눈에 보인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백제 유적을 볼 수 있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풍경 좋은 오솔길로 변해버린 성벽이다. 세월은 성을 길로 바꾸었다고 해야 하나.
산성을 따라 올라가면 백제 멸망의 애수를 담고 있는 낙화암을 만날 수 있다. 의자왕의 향락과 사치를 강조하기 위해 '삼천궁녀'로 각색되었다는 설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낙화암을 보면 새삼 전쟁의 참화 가운데 진실을 찾아가기 힘든 것이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낙화암 바로 밑에는 백마강이 흐르고 유람선이 떠 있다. 불과 30여분의 뱃놀이지만, 내내 현철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유람객들에 무심할 수만 있다면 백마강에서 낙화암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타 볼 만하다.
또 한 가지 백마강 유람에서의 볼거리는 조룡대다. 백마강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의자왕의 아버지이자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은 용이 되어 백제를 지키던 중 소정방이 백마강을 거슬러 침략하자 저항을 하지만 결국 백마 한 마리에 낚여버렸고 소정방은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마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용은 백제의 마지막 수군 민병대쯤 아니었을까.
부여에서 공주로 가는 길에 또 하나의 전란지를 만나게 된다. 갑오농민전쟁 당시 관군과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우금치가 바로 그곳. '동학군 위령탑'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에서 10월이 되면 백제 문화제와 함께 우금치 예술제가 열린다고 하니 천년을 건너뛰는 역사의 만남을 기대해도 좋겠다.
우금치를 뒤로 하고 서둘러 목적지인 갑사로 발길을 옮겼다. 갑사와 동학사는 계룡산 국립공원에 있는 사찰인데 특히 여승들의 도량으로 알려진 동학사는 봄철 진입로의 벚꽃 터널과 가을의 갑사 단풍이 볼 만하다.
물론 아직 여기까지 벚꽃이 북상하지는 않아 동학사는 한산하지만 진입로 벚꽃 나무들들만 봐도 4월 초입을 지나면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주변 상인들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총 5시간쯤 걸리는 갑사까지의 등산코스 또한 준비만 잘 한다면 별 어려움 없는 봄철 산행이 될 만하다.
갑사에서 내려와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한 시인을 생각한다. 부여가 낳은, 아니 금강이 낳은 시인 신동엽. 시인은 어느 봄날에 깨달은 듯 봄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한 편의 시를 남겼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관악주민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