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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아름다움>은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는 필립 시먼스의 생각과 느낌을 담은 책이다. 한 마디로 '죽음의 아름다움.'

죽음이 어디가 아름다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기름기와 물기가 다 빠져나간 시신은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아름다울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된 사건을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한 여유가 우리에겐 사실상 없는 것 같다.

장례 예식은 안타깝거나 혹은 서럽거나, 한없이 길거나 지루하다. 장지로 떠나가기 전 관이 놓여있는 곳으로 조문하러 온 문상객들은 서로의 먹거리를 챙겨주는 데에 온 신경을 다 써버리기 일쑤다.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는 느긋함이 우리에게 과연 있을까?

시먼스는 '사건사고'로서의 죽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 나 자신의 죽음을 성찰하는 바로 그 순간 곧 나의 삶을 통찰하게 되는 그 역설적인 진리가 <소멸의 아름다움>에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시먼스는 서른다섯 살에 루게릭 병에 걸렸다. 야구선수 루게릭이 걸렸다는 불치의 병,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화요일마다 제자를 만나던 모리 교수가 걸렸던 그 병,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는 병이다. 차례차례 근육의 마비가 오면서 마지막에는 온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렇게 나무토막 같이 되어서 죽는 병.

"한 번에 찻숟가락으로 하나씩 생명력을 덜어내는" 듯한 고통, 날마다 그 "느리고 성가신 폭력"을 겪어나가는 시먼스. 꼼짝없이 죽음의 덫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그는 기어코(!), 자신의 불완전한 삶이 곧 축복이라는 생각을 발설하고야 만다.

불완전한 삶이 곧 축복이다…? '이 빠진 동그라미'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기에게서 떨어져나간 조각을 찾아서 그렇게 산지사방을 헤매더니만, 애써 찾은 그 한 조각을 찾으니까 정작 그것을 내려놓고 길을 떠나는 '이 빠진 동그라미.' 불완전한 삶의 축복. 비슷한 얘기일까….

시먼스는 늘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기에 <소멸의 아름다움>을 쓰는 순간 '생기 있게' 존재하고 있었다. 생존.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한국에 그의 책이 발간된 이 시점에도 그가 살아있을까 하는 것. 그리고, 지금은…?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모두 높은 곳에서 떨어져 깊은 곳을 향해 한창 하강하고 있는 중이다. 그 높은 곳은 이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고, 어른거리는 수면 아래에 언뜻 보이는 심연이 어떤 곳인지는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도 추락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즐거움과 강력함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삶을 향해서도 떨어지자.<소멸의 아름다움> p. 41."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죽는다. 죽지 않고 버틴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므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내 안에 받아들이자. 막상 받아들이고 나면 무섭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이상스럽지도 않다. 왜냐고? 죽음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삶이 강렬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다른 별칭인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하나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소멸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죽음을 즐겁게 명상하고 느끼려는 독자에게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다가갈 것이라는 것 정도.

덧붙이는 글 | 필립 시먼스 저/ 김석희 역 | 나무심는사람 | 2002년 02월 출간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지음, 김석희 옮김, 나무심는사람(이레)(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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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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