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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어서 내 주변에는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친구들과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대화하다 보면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언쟁을 시작하게 되는데 대체로 그들이 주장하는 전쟁의 이유와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1. 사담 후세인이 9ㆍ11 테러를 일으켰다. 아니면 사담 후세인이 제2의 9ㆍ11 테러를 일으킬 것이다. 최소한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살상 무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방 차원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
(나의 반론)
사담 후세인이 9ㆍ11 테러를 일으켰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부시나 파월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CNN을 비롯한 이곳의 언론도 이 점에서는 행정부 편을 많이 들어주지 않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그렇게 믿는다. 예방론에 대해서도 내 생각에 이라크 전쟁이 오히려 테러리스트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량살상 무기에 대해서는 위험한 것은 테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지 무기가 아니다. 9ㆍ11 테러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들고 온 무기는 상자 자르는 칼에 불과했다고 설득해 보지만 미국인들에게 9ㆍ11 테러는 일종의 성역이어서 그에 조금이라도 관계된 것은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2.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이므로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
(나의 반론)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좀 답답하다. 그런데 방송매체에선 이런 얘기가 자주 나온다. 전쟁의 공식명칭도 이라크 해방 작전이다. 미국인들의 목숨을 테러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전쟁의 이유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타국 국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자국민을 전쟁터로 몰아 넣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이런 논리를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이라크 국민들이 미군을 환영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미국은 정의의 나라이고 이라크 전쟁이 미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3.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국익 (안보와 경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영향력 확대) 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세계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
(나의 반론)
미 국방부 장ㆍ차관을 비롯한 소위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클린턴 정부 때부터 이라크를 쳐야한다고 주장했고 9ㆍ11 테러 이후 약간 이성을 잃은 미국인들이 이런 사람들을 지지하여 이라크 전쟁이 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미국의 처지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커다란 도박이다. 내 개인 의견으로는 이라크 전쟁을 이긴다 해도 결국 미국이 손해를 보고 국력이 더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라크 전쟁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불안정한 중동 지역을 미국의 직접 통제하에 놓고 중동 나라들을 미국식 민주주의로 바꾸어보겠다는 논리인데 백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UN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 앞으로 중국이 대만에 쳐들어가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고 주장하면 미국은 뭐라고 하겠는가?
이렇게 논쟁을 하다보면 나는 좌절감을 느낀다. 내 공화당 친구들은 나만큼이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한다. 논쟁을 하면서 든 또 다른 느낌은 미국의 오만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대미 테러의 이유를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기 때문에 질투가 나서라고 보고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내가 가르치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인과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까지 시켰다. 본토에서 외국의 공격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에게 9ㆍ11 테러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9ㆍ11 테러 직후 집집마다 차창마다 붙어있는 미국기를 보면서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국가주의(Nationalism)는 약소국에겐 자기 방어수단일 수 있지만 미국 같은 강대국에는 제국주의가 되므로 잘못하면 큰일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뉴욕타임즈>에 9ㆍ11 테러에 미국의 책임도 있으니 반성해야 하며 미국인은 다른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초강대국이므로 자국의 이익 뿐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를 고려할 책임이 있다는 식의 글을 써서 투고했는데 '다행히' 실리지 않았다. 나는 더는 내 의견을 미국 신문사에 보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요새 같은 분위기에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국보다 미국이 좋아서 이민 온 사람이 아니고 직장 때문에 미국에 자리 잡고 살게 된 사람이지만 미국이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전쟁을 일으키고 지지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사실 전쟁 개시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이 비슷했는데 일단 시작해 놓고 나니 70% 이상이 전쟁 지지로 돌아섰다. 어찌되었든 시작했으니 일단 이기고 봐야겠다는 심리와 참전하고 있는 자국 군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지지와 전쟁지지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양심적인 미국 사람들은 반전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미군이 많이 죽어 전쟁에서 져서라도 제국주의 망령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미국 대학교수도 있다. 전쟁 발발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독자 투고를 인용한다. "나는 오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자라난 '정의와 양심의 나라' 미국은 이제 죽어버렸다." 나는 미국의 양심은 아직 죽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양심이 9ㆍ11 테러의 충격을 극복하고 미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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