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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반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반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싼 초기의 논점이 대체로 '명분'과 '국익'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파병과 국익의 상관관계로 좁혀지고 있다. 여전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명분있는 전쟁이라며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부당하고 명분없는 전쟁이라고 보는 여론이 70-80%에 달하는 것은 이를 국민들의 반전 여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라크전 파병이 '정당성'은 없지만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인식은 파병 반대 여론 못지 않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 한미관계, 경제 문제 등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전 여론의, 다른 한편으로는 파병 찬성 여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전략적 실수

그러나 정부와 보수 언론, 그리고 여야의 상당수 의원들이 파병의 불가피론의 근거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연계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침략전쟁에 파병을 할 경우, 미국이 이라크 다음에 북한을 같은 명분과 논리로 공격하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상실하게 된다"는 지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논리적으로 관계가 없는' 이라크전 파병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연계시킬 경우, 뜻하지 않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일단 두 가지 문제를 연계시켜 놓은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전 파병을 '대가'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만큼 미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등식'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전략 차원에서 대 이라크, 대북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은 '고마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즉, 노무현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전 파병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사이에 '거래의 등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의 등가성이 없는 문제들을 무리하게 연계해 주고받기식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이는 곧 파병의 규모와 성격, 그리고 전비(戰費)를 점차 부시 행정부의 구미에 맞게 늘려나가야 한다는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남부의 항구도시 움카스르에서 미 제15 해병원정대 대원들이 23일(현지시간) 이라크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남부의 항구도시 움카스르에서 미 제15 해병원정대 대원들이 23일(현지시간) 이라크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다. ⓒ 로이터 뉴시스
노무현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파병을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시키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수정함으로써 치르게 되는 비용을 상쇄시킬 만큼, 이라크전 파병을 통해 부시의 전략적 이익을 충족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군의 파병이 미국의 전쟁 수행에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당초 예상과는 달리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미국과 영국군의 희생이 늘어남에 따라, 전투병 파병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미국이 공병대와 의료 지원단에 이어 포로 관리병까지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은, '다음'은 전투병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12만명의 지상군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한 것이나, 부시의 기대와는 달리 이라크 국민들의 저항이 전후에도 지속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전망은 결코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의료지원단으로 시작한 베트남전 파병이 결국 대규모 전투병 파병으로 이어졌던 교훈도 다시 한번 떠올려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라크전 파병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연계시킨 노무현 정부의 전략적 선택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 이라크전을 지원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레 겁먹기식 태도'를 갖게 되면, 미국이 전투병 파병을 요구할 경우 똑같은 우려 때문에 전투병 파병도 거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한미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것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한미간에는 대북정책 및 미사일방어체제(MD) 등을 둘러싼 만만치 않은 갈등이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수평적인 한미관계를 추구하는 우리와 북한 정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서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군비증강을 꾀하려는 부시 행정부 사이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한미간의 갈등은 단순히 오해나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의 상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한국군 장병들이 1966년 7월 '태극깃발 소총'을 든 보초병을 세워둔 채 전투준비를 하고 있다.
파월 한국군 장병들이 1966년 7월 '태극깃발 소총'을 든 보초병을 세워둔 채 전투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이유로 갈등을 단순히 오해나 불신 차원으로 해석하면서 이라크전 파병이라는 비정상적인 수단을 통해 무마시키려는 노무현 정부의 '전략적 선택'은 중대한 오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이라크 파병을 통해 갈등을 풀려고 할 경우 이는 올바른 처방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략적 선택론'의 가장 큰 근거가 되고 있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수단으로서의 이라크 파병이 갖는 '오류'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갈등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 여부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이라는 지렛대는 부시 행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며칠 전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라크전 파병이라는 '선물'을 들고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 성과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의 미사일 부품 거래를 이유로 양국 회사에 제재를 부여하기로 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는 씁쓸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안을 빨리 통과시켜주지 않아 미국의 대북한 추가 제재를 불러온 것이 아니냐는 판단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잘못 끼운 첫 단추를 풀지 않으면, 이러한 끊임없는 그리고 근거없는 자기 검열은 계속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에 대한 한국군 파병말고도 '한미동맹'을 앞세워 한국에 내밀 카드를 여전히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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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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