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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연설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연설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2일 국회연설에서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를 좌우하고 있다"며 국민의 운명이 달린 사안인 만큼 파병에 협조해 달라고 국민과 국회의원에게 간곡히 호소했다...<편집자주>

존경하는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이 자리를 지켜보고 계신 국민 여러분!

이 곳 민의의 전당에서 국민의 대표이신 국회의원 여러분을 모시고 국정운영에 관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이라크전 파병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의원님들과 국민들이 파병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전쟁이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번 전쟁에 우리가 파병을 할 경우 장차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 할 때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명분론을 전제로 한 현실론입니다.

그렇습니다. 명분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세계질서도 힘이 아닌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국내정치에서도 명분론보다는 현실론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저는 명분을 중시해 온 정치인입니다. 정치역정의 중요한 고비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명분을 선택해 왔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이상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90년 '3당 합당' 때도 그랬고, 95년 통합민주당이 분당될 때도 그랬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 이후, 정 후보는 공동정부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 당시 저를 돕던 많은 분들은 그 제안을 수용하라고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명분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저는 패배의 길을 택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명분을 선택한 대가로 여러 차례 선거에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또 목전에 승패가 갈라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명분을 지켰습니다.

그런 제가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저의 결정에 나라와 국민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전쟁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는 것은 제 개인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지금 저의 선택은 제 개인의 선택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즈음, 미국의 책임있는 인사들은 대북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북 공격에 반대하면 한미공조가 흔들리고, 한미공조를 위하여 대북 공격을 찬성하면 곧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전쟁만은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한미간에는 이견과 갈등이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이를 회복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도 이견은 해소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행히 이견은 해소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책임있는 당국자 그 누구도 대북 공격 가능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9일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북한과 이라크는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북핵 문제도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이제 겨우 발등의 불을 껐을 뿐입니다. 아직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

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습니다.

명분을 앞세워 한미관계를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것보다 오랜 동안의 우호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하여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는 어떤 전쟁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와의 없는 한, 미국은 북핵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저는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나 대등한 한미관계는 국민의 생존이 안전하게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대등한 한미관계를 위하여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 북핵 해결, 후 SOFA 개정을 말해 왔습니다.

이라크 사태에서 보았듯이, 북핵 문제에 관해서도 미국은 명분에 따라 태도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굳건한 한미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어려운 우리 경제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국의 대북 공격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없을 것임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본 결과, 그들은 제 생각과는 달리, 전쟁의 위험보다는 한미관계의 갈등을 더 큰 불안요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파병 결정은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 저를 믿고, 제게 힘을 모아주십시오.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반드시 성공시켜 내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선택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대통령의 성의를 보고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국민의 대표로서 당당하게 소신을 가지고 국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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