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을 춥고 배고프게 보냈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송호윤씨 역시 그 때를 '지겹도록 춥고 배고팠던 시절'로 회상한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송호윤씨는 전후(戰後) 피폐했던 60년도에 12살의 나이로 온 가족과 상경했다. 아현동 38번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주소는 그 당시 달동네로 더 많이 불렸다. 연탄 살 돈이 없어 한 두 장씩 사들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기억, 사납금을 내지 못해 시험도 못보고 쫓겨오던 서럽던 학창시절.
그러나 그나마 따뜻한 내복을 입을 수 있었고, 한달에 20달러(3,000원)이라는 거금(?)을 받았기에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 수 있었다. '양친회(養親會)'를 통해 외국인으로부터 생활비와 생필품을 원조 받았던 것.
양친회는 1953년 국제아동보호기구인 플랜 인터내셔널이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세운 한국지부로 외국 가정과 우리나라 어린이를 1:1로 맺어 생활비와 생필품은 물론, 편지와 선물을 전해주는 고마운 단체였다.
한 달에 한 번 옷가지들과 생필품들이 오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송호윤씨. 시골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게 꿈이었던 그는 당시 "제가 나중에 커서 큰 농장 주인이 되면 '양친님'을 꼭 초대하겠다"는 편지를 썼고, 양친이었던 미국의 '수지 프랑켈'이란 이름을 가슴 속 깊이 새겨두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꿈을 간직해왔던 탓일까. 19살에 익산으로 귀향해 3000평으로 시작한 농원은 현재 3만평이나 되는 '늘푸른 농원(현재 늘푸른 수목원)'이 되었으며,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
지난 97년, '플랜 코리아'를 알게 된 송호윤씨는 수소문한 끝에 미주리주 캔사스시티에 살고 있는 '수지 프랑켈' 여사를 드디어 찾게 되었다.
양부모였던 수지 여사는 송호윤씨와 동갑내기로 4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아줌마였다. 중학생 때 학급반장을 하며 성금을 모아 한국에 전달했던 것으로 당시를 기억하는 수지 여사에게도 자신을 기억하는 뜻밖의 한국인은 '기적과 같은 귀중한 선물'로 다가왔다.
송호윤씨는 40년 전 약속대로 2001년 8월 수지여사를 그의 농원으로 초청, 뜻깊은 시간을 보냈으며, 지난 3월에는 수지여사가 살고있는 미국으로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송호윤씨와 수지여사의 특별한 인연은 미국 NBC 뉴스에 소개되었으며, 미주리주 신문에도 특집으로 실렸다.
받은 사랑 되돌려주기 위한 양친회 모임, '내리사랑 양친회'
2001년 2월, 양친회의 도움을 받아 장성한 그 시절 아이들이 모여 '내리사랑 양친회'를 결성했다. 말 그대로 이국의 수양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자 나선 이들은 세월이 흘러 자신이 양친이 되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리사랑 양친회 전북지부 회장인 송호윤씨는 97년부터 7년째 에티오피아의 쉴리 마트(13) 양을 돕고 있다. 수지여사가 다녀간 직후인 2001년 9월, 이번에는 송호윤씨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했다. 당시 KBS추석특집 '어떤 인연'이란 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갔는데 쉴리 양과 에디오피아인들의 사는 모습에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송호윤씨는 "아이의 모습은 40여 년 전 내 모습 그대로였다"며, "사는 모습도 40년전 우리나라가 수혜국일 때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고 회상한다. 또한 "3만원의 작은 돈이 그들에게는 한 가족이 한 달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돈이 된다"며 많은 사람들의 후원을 아쉬워했다.
현재 내리사랑 양친회 전북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송호윤씨는 "처음엔 몇 안되는 인원으로 시작한 내리사랑 양친회가 지금은 전북지부 회원만 40여명에 이른다"며, "한달에 3만원의 돈으로 굶주리는 지구촌 어린이를 돕는다는 생각에 요즘은 젊은이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전, 상처받는 아이들 보면 가슴아파
연일 계속되는 이라크전의 보도가 송호윤씨에게는 더더욱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겁먹은 눈망울과 피범벅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 샌가 눈가가 젖어들곤 한다.
"'전쟁 끝에는 상처받는 아이들이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는 송씨의 바램은 그 어떤 반전구호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 | 양친회와 플랜코리아 | | | | 플랜인터내셔널은 제3세계 국가의 어린이들을 양자로 삼아 후원하는 단체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협력 비정부기구(NGO)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때 고아들을 돕기 위해 영국에서 출범했으며 현재 15개 나라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전쟁직후 우리나라에서 구호활동을 펼쳤던 플랜인터내셔널의 한국지부 이름이 바로 '양친회'. 이들은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던 1953년부터 1979년까지 한해 2만 5000여명씩 26년간 수십만 명의 어린이를 도왔다.
1996년부터는 한국이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지위가 바뀌어 플랜인터내셔널 코리아(www.plankorea.or.kr)로 새롭게 태어났다. 플랜코리아는 현재 국내 3800여명의 회원이 베트남,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등 20여개 후진국 어린이 4000여명을 돕고 있다.
이는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된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로 플랜본부는 한국지부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나라보다 훨씬 늦게 후원국으로 참여한 스페인의 경우, 현재 3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30여년 전, 우리 나라가 수혜국일 때 1년에 2만 5,000명씩 도움을 받던 것과 비교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후원상황이 얼마나 뒤쳐진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플랜코리아의 김소희 과장은 "우리 국민은 수해나 연말에 반짝하는 일회성 기부에는 참여도가 높지만, 꾸준히 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선진기부문화의 인식은 부족하다"며 "플랜코리아가 선진기부문화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