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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돌담을 따라 난 길이 그렇게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속엔 우리 역사의 슬픈 단면이 응축되어 있다.
경운궁 돌담을 따라 난 길이 그렇게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속엔 우리 역사의 슬픈 단면이 응축되어 있다. ⓒ 권기봉
IMF 구제금융에 대한 우울한 소식을 전하는 신문을 옆구리에 낀 시골 청년, 드디어 서울 고속터미널을 나선다. 대학이라는 구실로 서울에 진출한 젊은이는 상경 첫해의 대부분을 마천루 구경에 사람 구경, ‘지하철 체험’ 하러 다니는 데 보내게 된다. 너무나도 신기한 것들이 많았으니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부모님의 신신당부에 긴장도 여간 긴장을 하지 않고 나선 서울이었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상은 점점 깨져만 갔다. 구경이랍시고 다닌 곳들이 대부분 순대 맛있다는 신림동 골목이거나 생기발랄한 또래들 넘쳐난다는 신촌, 미팅·소개팅을 위한 별천지 강남역 주변, 영화라면 으레 거기서 봐야 한다고 느꼈던 서울극장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이 고작 이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복궁과 종묘에서 보듯 정도(定都) 6백년의 고도(古都)라는 둥, 63빌딩이나 올림픽 경기장 등 거대한 초현대식 건축물들이 으리으리하게 들어선 한국 근대화의 증거라는 둥, 서울이란 도시가 이게 고작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대단하게만 들리는 서울이었다. 복잡한 도심에서 일련 번호로 버스 행선지를 알아야 하고 비용도 비용이지만 택시를 타면 막히기 일쑤여서 결국 지하철이 아니면 이동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때, 서울 토박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라고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 가면 술이 싸고 또 어디는 안주를 많이 준다는 것만 알았지 정작 서울의 역사나 그 이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보라고 할 뿐….

책과 논문이 해결해준 서울에 대한 궁금증

결국은 부족하나마 책과 논문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아직 경험이 일천해서인지 주로 김정동이나 손정목이 쓴 것들만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들의 책과 논문이 재미가 없게 씌어진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관심 자체가 없던 것인지 일반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의 경우 학교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었다.

지은이 중 한명인 강홍빈은 건축과 도시계획 등을 전공한 후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장 및 서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이 중 한명인 강홍빈은 건축과 도시계획 등을 전공한 후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장 및 서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일제유산이나 근현대사 관련 건물들, 거리와 구역의 변천사 등을 다루고 있어 ‘4대문 안 서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서울이 4대문 영역을 벗어난 지는 이미 30년도 더 지나지 않았던가!

실제로 지도상에서 서울 영역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대문 밖’과 ‘한강 이남의 서울’을 다루고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필자의 경우는 도가 지나쳤던 것인지 오기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관련 자료를 일일이 살폈고, 서울시청이나 관할구청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어느 정도는 열람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이 빠듯한 생활 틈틈이 관련 논문을 구하고 서울시청이나 관할구청에 자료를 요청한다는 것이 보통 관심 아니면 힘든 일이 사실이다. 서울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쉽게 풀어줄만한 단행본을 찾기란 창경궁 잔디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 일과 같았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추위가 막 찾아올 무렵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주말마다 본지에 딸려 나오는 신문 책소개 섹션의 한 귀퉁이에 보도된 강홍빈과 주명덕의 <서울 에세이>.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짤막한 보도 내용만으로는 판별하기 힘들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뤘다는 내용만으로도, 특히 강남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다루고 있다는 데 관심이 가고도 남았다.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세 지층’

이 책은 서울 남북을 길을 따라 답사한 후 쓴 것이다. 먼저 글쓴이의 눈은 대한민국 대표 도로 ‘세종로’와 주요 기관이 몰려 있는 ‘태평로’, 개화의 음울함을 짓게 드리우는 ‘정동’ 일대를 본다. 이어 사선으로 난 ‘소공로’를 지나 ‘명동’과 ‘남대문시장’에 잠깐 기웃하고, ‘회현동’에서 잠깐 쉬어가잔다. 도심의 휴경지로 남아 있는 회현동에서 숨을 돌리자마자 남산을 (땅속으로) 통과해 월남민들의 가나안이었던 ‘해방촌’과 우리 땅 아닌 우리 땅 ‘용산 미군부지’ 앞에 잠깐 멈춰 서서 ‘이태원’의 비애를 읽는다. 답답한 마음 겨를 길 없는 글쓴이는 아파트 숲을 마주한 한강을 건너며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모습을 본다. 그는 법원과 검찰청 등이 주변을 내리누르는 신(新)주작대로 ‘반포로’를 거쳐 우면산 아래 ‘예술의 전당’까지 내쳐 달린다.

강홍빈·주명덕 / 서울 에세이 / 열화당 / 2002 / 18,000원
강홍빈·주명덕 / 서울 에세이 / 열화당 / 2002 / 18,000원 ⓒ 열화당
그러나 강홍빈과 주명덕이 포레스트 검프마냥 무작정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멈춰 서서 차분히 그 공간이 갖는 역사적 배경을 되새기고 그 모습이 은연중 투영된 현재의 서울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본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근대 이전의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산업화 시대에 걸쳐 퇴적된 ‘세 지층’이 복합적으로 쌓여있는 서울이라는 한정 공간의 의미에 집중하는 강홍빈은, 이들 세 지층이 서로 어긋나 있음에 안타까워한다. 즉 그동안 서울이라는 것이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부정(否定)하려는 시도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마치 뚜렷하게 선이 살아 있는 지층처럼.

글쓴이의 말을 들어 보면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조선 왕조의 위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경복궁 일부를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남대문역으로 통하는 길로서 태평로를 내고, 왕이 머무르는 경운궁을 둘로 나누기 위해 정동길을 내고, 경제 침탈과 통치의 편의를 위해 소공로를 냈다는 것이다. 또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과 ‘불도저 시장’ 김현옥은 정통성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번 바꿔보겠다는 듯 세종로에 거대한 정부종합청사와 커다란 비천상만 있을 뿐이지 전혀 문화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 건물 세종문화회관을 짓고, 강남을 개발해 재벌경제라는 기형적 경제구조로 가는 시금석을 놓는 등 전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의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한다. 물론 이는 그의 정치적 양자라 할 수 있는 전두환 정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좀더 많은 이들이 읽고 느낄 수 있도록

글쓴이는 이와 같은 단절과 무계획의 극치, 부족한 공공영역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정부나 기업 등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집단이고 또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기에 당연한 이야기로 들린다. 실제로 글쓴이는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이 한창이던 때 남산 턱 포 사격장이었던 군인아파트 부지에 주택조합이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여론이 이를 막았다”며 “만약 시민들의 이 같은 참여가 없었더라면 남산마저도 한강처럼 아파트 병풍으로 둘러쳐졌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책의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이 갖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보인다. 이를 테면 다소 비싼 느낌을 주는 책값이나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나온 칼라 사진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읽기 편할지 모르지만 다소 넓은 행간과 좁은 여백, 도입부분에 있어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자주 인용되는 석학들의 발언은 읽기를 수월하게 한다기보다 산만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들은 지엽적이고도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의 수지타산도 중요하겠지만 점점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마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을 만들었다면 할 말 없지만, 책 내용이나 글쓴이의 문제의식을 보건대 이건 분명 일반 서울시민과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은 독자를 위한 책이었지 단순히 연구가나 마니아를 위한 책은 아니었다. 차라리 사진 크기를 조금 줄이거나 종이 질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책값을 좀 낮게 매겨 좀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 느낄 수 있게 했으면 글쓴이가 뜻하는 바를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화로운 서울, 그리고 청계천을 기대한다

그런데 꼭 조화라는 것이 건물과 공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자연 환경 역시 우리네 생활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텐데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주요 이슈로 부상했던 청계천 복원공사를 보자.

지난 2월 11일 청계천복원 기본계획(안)이 나왔다. 그런데 논의되는 양상을 보면 ‘자연 하천으로의 복원’이라는 애초의 계획에서 상당 부분 물러선 모양이다. 과연 2009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난 다음의 모습이 관악산에서 발원하는 도림천과 어떤 차이를 보일까? 도림천 역시 청계천처럼 완전 복개되어 영영 빛을 볼 수 없는 지하세계로 빠져들 뻔 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로 완전 복개가 아닌 부분 복개된 상태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부분 복개된 도림천이라 하더라도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가로 다가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천 양쪽으로 자동차들이 그리 넓지도 않은 길을 쌩쌩 내달리고 있어 일단 보도에서 물가로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힘들여 물가로 내려가 봤자 여름 장마 때가 아닌 바에야 악취만 코를 찌를 뿐이다. 결국 물이 흐르기는 하지만 일부러 다가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반신불수 하천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때 악취라면 저리 가라던 양재천에는 물고기가 돌아오고 있고 올 여름이면 또 동네 아이들의 물놀이로 시끌벅적할 것이라 한다. 각종 식물들이 자라고 있음은 물론이요, 달 밝은 밤이면 가가호호 돗자리를 들고 나와 별보며 담소를 나눈다 한다. 아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이 따로 없고 도시인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데 이만한 사치가 더 있을까? 상황이 이럴진대 과연 청계천복원공사는 반신불수의 도림천을 닮고자 함인가, 아니면 생명력 넘치는 양재천을 닮고자 함인가?

지금껏 개개의 건물이나 장소들이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부정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져 온 서울. 인간적으로 걷고 싶은 길보다는 빨리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내기 위해 지름길만을 걸어온 서울의 길. 생명을 느낄 수 있는 녹지와 하천, 강을 보존하기 보다는 베어내고 메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날. 어디를 가든 서로 “나 잘났다”는 식의 건물들이 숲을 이룬 서울에서 조화로운 모습을 상상해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한낱 꿈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산 관통 도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나 정동에 들어서기로 한 미국 대사관의 신축문제에 대한 여론의 환기, 청계천 복원 공사를 둘러싸고 ‘청계천을 복원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하는 데 중심이 맞춰지는 공감대 등 서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이전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비록 서울 출신은 아닐지언정 지금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가 더 인간의 모습을 한 곳으로 변해간다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아직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월악산을 잊지 못하는 청년은 지금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서울 에세이 - 근대화의 도시풍경, 강홍빈과 주명덕이 함께하는 서울 기행

강홍빈 지음, 주명덕 사진, 열화당(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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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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