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인터뷰한 결과, 입장은 판이하게 갈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차의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출신 배경일 것이다. 한 사람은 쿠르드족 출신으로 한국에서 무역을 하는 신코(남, 37세)씨. 다른 한 사람은 바그다드 출신의 이라크인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현재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에서 강의를 하는 모나(여, 47세)씨다.
쿠르드족 출신의 신코씨는 "CNN에 비춰진 바그다드 시민의 환호가 이라크 사람들의 진정한 심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나씨는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기뻐하지도 약탈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TV에 나온 바그다드 현지 표정을 "믿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CNN과 <알자지라>만큼 뚜렷한 시각의 차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에게도 공통분모는 있었다. 그것은 이제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관여도 없는 상태에서 이라크 국민들이 조국 이라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오직 이라크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10일 오후 2시 약 40분 가량 전화로 인터뷰한 신코씨의 반응을 먼저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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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환영하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모습이 진실이다"
[인터뷰 1] 쿠르드족 출신 이라크인 신코씨
"Dream comes true(꿈이 이뤄어진 것...편집자 역)입니다. 어제 방송에 나온 바그다드 시민들의 모습이 바로 true feeling(진심...편집자 역)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이라크는 쿠르드 피플, 이라키 피플 간에 차별도 없고 시아파, 수니파라는 종교적 차이도 넘어서 진정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가 될 것입니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사람이 아닌 밖에서 조국의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한 이라크인이 바그다드가 함락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신코씨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기쁘다", "이제 자유다"라고 연호했다. 그는 지난 95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어느 정도 한국말에 능통하면서도,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토해내기엔 한국말이 답답했던지 대화 도중에 핵심적인 문구는 영어로 말했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계속 쏟아냈다.
"35년간 후세인이 독재를 해오면서 계속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아무런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쿠르드족, 이라크 사람 똑같이 대우받고 인권이 보장되는 이라크가 될 겁니다. 진짜 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현재 신코씨의 5명의 형제와 3명의 누나는 바그다드에서 170km 떨어진 칸나킨(khanaqin)과 60km 떨어진 사마라에서 살고 있다. 며칠 전 누나와의 전화통화에서 "집안에서 안전하게 기다리며 대피해 있고, 내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그는 바그다드의 함락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코씨는 이라크에 있는 가족들과 현재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라크의 민주화를 원한다"
쿠르드족이라는 그의 출신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바그다드의 함락을 환호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진정한 이라크 사람들의 감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은 다소 의외다. 전쟁의 참상보다는 앞으로 이라크 사람들이 누리게 될 자유가 훨씬 소중하다는 입장이다.
그의 이런 심정은 전후 이라크 재건을 묻는 질문에서도 묻어난다. '미국과 영국이 실시할 군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코씨는 "사이코 같은 후세인만 제거되면 이라크는 이라크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것이다. 진짜 민주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해 이라크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신코씨는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세계인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전 세계 공동체와 NGO, 미디어가 이라크 사람들을 지지해주길 바랍니다. 병원에는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언론은 이라크의 진실에 포커스를 맞춰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바그다드 함락을 믿을 수 없다"
[인터뷰 2] 바그다드 출신 모나씨 가족
하지만 같은 날 저녁 경기도 분당 자택으로 찾아가 만난 모나씨는 '바그다드 함락'에 대해 정면으로 부인했다. 더군다나 TV 화면에 비친 이라크 시민들의 환호에 대해서는 "조작극"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이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특종인데요, 사람들이 후세인 동상을 무너뜨리고 나서 흔들었던 국기는 진짜 이라크 국기가 아니에요. 가운데 아랍어로 쓰여져 있어야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는 문구가 없어요. 지금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옛날 국기를 누군가 외부에서 들고 들어왔다는 거죠. 그리고 '나는 미국편이다'고 아랍어로 외치는 사람의 억양은 이라크 사람의 것이기보다는 쿠웨이트 사람에 가까워요. 한 마디로 바그다드 함락은 아직 믿을 수 없다는 거죠."
모나씨의 둘째 아들 박신우(16세)군의 설명이다. 신우군 뿐만 아니라 모나씨와 그녀의 한국인 남편 박효중(49세)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들은 방송에서 비춰지는 바그다드의 현재 모습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후세인이 아무리 독재자였다 하더라도 미군의 바그다드 입성 이틀만에 거리에서 그렇게 환호할 이라크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주미 이라크 대사마저 미국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이들은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자신의 조국이 이렇게 쉽사리 미국에 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심정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있다.
"미국은 의도는 CNN만 보라는 거다"
10일 저녁 7시 분당에 있는 모나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위성으로 알자지라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죽은 알자지라 방송의 기자의 이야기였다.
"CNN은 이라크 침략 전부터 '미국은 정확한 첨단무기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이라 했지만 실제로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CNN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 기자도 미국이 고의적으로 조준사격으로 죽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직 CNN을 통해서만 이번 침략을 바라보라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난 사건이다."
박효중씨도 "이라크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미군이 군중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미국이 애초에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를 못 찾아도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이 해방군인 것처럼 보이게 해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후세인 싫어해도 미국은 더 싫어한다"
그는 또 "이라크 시민 중에 군인 가족이 아닌 사람이 없고 그래서 모두가 가족 때문이라도 국가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며 "마치 언론에서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되고 군인들의 저항이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성급한 판단이다. 티크리트에는 사담 충성파도 아직 남아있고 여기가 끝나도 다시 바그다드에서 싸울 것이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사실들이 진실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모나 가족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마침 TV에서 방송되는 이라크전을 보던 모나씨는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후세인의 영상이 비춰질 때는 애증이 교차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아들의 설명에 따르면 아무리 미워도 남의 손에 생사를 넘나드는 그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방송에 보도되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조국이 결코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모나씨는 '이라크는 이제 자유다'라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벌써부터 전후 재건을 논의하는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미국이 범한 범죄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있는 한 이라크는 두 번째 팔레스타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운가. 차라리 이라크는 이라크에 잡혀있는 것이 낫다. 이라크 땅에서 미국이 어서 나가고 이라크 국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아서 민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바그다드에 걸려있던 '고맙지만 이제는 나가달라'라는 현수막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라크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을 뽑는 것처럼 자유투표에 의한 선거가 이뤄졌으면 한다."
아들 박신우군은 "비록 지금은 무너지지만 다시 살아나 적들을 이길 것이다"면서 이라크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는 코란의 예언을 들려주기도 했다.
허탈한 심정, 그러나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친구다"
박효중씨는 쉽사리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환호하는 일부 시민들을 보자 허탈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분명 진실이 아니라도 믿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걸 왜 지금까지 반전운동을 해 왔는지 모르겠다"는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거론해 왔던 쿠르드족 문제나 종교적 갈등에 대한 이방인들의 우려에 대해서도 이들은 지나친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우리 옆집도, 나의 조카 부인도 다 쿠르드족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함께 살아온 친구들이고 다 같은 이라크 국민이다. 수니파니 시아파니 하는 종교적 차이도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 단지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하는 정치인들이나 이런 차이를 말할 뿐이다."
그녀는 어서 빨리 이라크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혹 이라크로 들어가는 팀이 있으면 같이 가자는 제안도 했다. 자신과 함께 가면 이라크로 들어가는 비자를 받기 쉬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바그다드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도 모르는 그녀는 뉴스에 나오는 이라크의 참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제 친구도 사담 페다인이에요" | | | 중동 건설붐 때 만나 이룬 모나씨 가정 | | | |
| | | ▲ 모나씨가 가족들과 함께 TV의 전황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 ⓒ류종수 기자 | "2주전에 언니와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는데 언니가 있는 도라(바그다드 남부지역)에서 큰 폭발소리가 들리고 집과 유리가 흔들려 잠을 정원에서 잤다고 했다. 주요시설도 아니고 작은 거주지일 뿐인데도 폭격이 있었던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정말 인샬라, 신의 뜻에 맞길 뿐이다."
바그다드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는 모나씨의 간절한 심정이다. 현재 그녀의 언니 2명과 오빠 1명 남동생 1명은 바그다드에 살고 있고 힐라라는 작은 도시에 또 한명의 언니가 살고 있다.
81년 모 건설회사 직원으로 이라크에 파견근무를 나갔던 박효중씨는 당시 같은 회사 직원이면서 이라크 건설부 현장 감독관이기도 했던 모나씨를 만나 84년도에 결혼을 했다.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고 있다.
94년까지 근무하던 박효중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다 97년에 온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현재 첫째 아들은 사우디에서 유학을 하고있고 둘째와 셋째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한국말을 원어민처럼 할 수 있어 취재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의 전속 통역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뉴스를 보던 모나씨의 가족은 바그다드 시 곳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후세인 동상을 무너뜨린 사람들을 보고선 사담시티에 격리되다시피 하며 살았던 전과 전력이 있는 "더러운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 아들 신우군은 자신이 친구 중에도 2명이 사담페다인이라며 아무래도 이들이 죽었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거실에는 MBC 이진숙 기자와 함께 찍은 사진도 걸려있었는데 걸프전 때부터 알아온 사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는 데로 온 가족이 다시 이라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 류종수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