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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연수생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 봄맞이 체육대회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외국인 체육대회 현장인터뷰 / 정동헌 PD


스리랑카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다.
스리랑카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난 13일 대구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대운동장에서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언어들이 대형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검은 피부의 '이방인'들이 운동장과 스탠드를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대구에 거주하고 있거나 서울, 안산, 부산 등지에서 몰려든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 이날 모인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은 대략 500여 명.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크리켓 경기.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크리켓 경기. ⓒ 오마이뉴스 이승욱
매년 4월 13일부터 14일까지는 한국의 설날과 같은 스리랑카의 고유 명절이다. 고향의 명절을 맞아 전국 곳곳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은 1년에 1번씩 이렇게 모여 체육대회를 벌이는 것으로 먼 이국 땅에서의 향수를 달래는 것이다.

스리랑카 명절 맞아 체육대회 열고 향수 달래

이날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크리켓 경기를 벌였다. 산업연수생 3년째를 맞고 있는 삼바(26)씨는 고향에서나 즐기던 크리켓 경기에 빠져 있었다. 삼바씨는 "만약 고향에 있었다면 명절을 맞아 크리켓 경기를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라며 "아침 일찍 고향의 부모님들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고, 고향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크리켓 경기를 할 수 있어 즐겁다"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삼바씨는 대구 칠곡에서 고가 사다리를 타고 전기전선 공사를 하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삼바씨는 "한국에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놈'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장님도 좋은 분이고 월급도 예전보다 많이 받는 편이라 괜찮다"며 웃음을 지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운동장 한 가운데서 크리켓 경기가 쉴새 없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운동장 곳곳에서는 배구경기, 100m 달리기 등 다양한 경기가 벌어졌다. 또 스탠드 위에 옹기종기 모여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장구와 흡사하지만 그보다는 작은 민속악기 '노올키'를 두드리며 흥겨운 노래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은 크리켓과, 배구경기 외에도 각종 민속놀이, 줄다리기, 노래자랑, '미스 스리랑카' 뽑기 등 행사를 벌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 외에도 이날 봄맞이 체육대회에서는 다른 국가의 이주노동자들도 참여했다. 그중 '백미'는 중국과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벌였던 축구경기. 국가 대표는 아니지만 자국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축구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예의 국가대표 경기와 진배없었다.

계명대 캠퍼스 인근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이날 중국 대 베트남의 경기는 해당 국가의 이주노동자 100여 명의 열띤 응원전과 함께 벌어졌다. 하지만 경기 내내 빨간색 유니폼까지 챙겨 입고 경기에 임했던 베트남 선수들에게 시종일관 중국팀은 수세에 몰렸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전통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전통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결국 전반 1점을 내줬던 중국팀은 후반전 초반에 내리 2점을 내주고, 경기종료를 앞두고 베트남팀의 절묘한 세트 플레이에 밀려 한 점을 더 내주고 말았다. 결국 베트남팀은 스코어 '4:0'으로 중국팀에게 '대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가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이유는 '내기' 축구였기 때문. 경기가 끝나자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20만원을 벌었다며 환호했다.

중국 VS 베트남 이주노동자 경기…"이기든 지든 즐겁다"

하지만 중국팀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애써 태연해 했다. 중국팀을 응원하던 한 조선족 이주노동자는 "힘들게 일을 하다 휴일에 한 때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을 달랬다.

베트남 VS 중국 축구경기...이날 경기는 4:0으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압승이었다.
베트남 VS 중국 축구경기...이날 경기는 4:0으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압승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그러나 이날 축구경기는 다시 농구 대항전으로 이어졌다. 중국팀이 자존심을 회복할 요량으로 농구경기를 치르자고 제안했기 때문. 이주노동자들의 즐거운 봄맞이 체육대회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대구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봄맞이 체육대회를 벌인 것은 이번이 6번째이다. 대부분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업종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1년에 1번 꼴로만 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체육대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최근 들어 정부와 국회에서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에 대한 중소기업협동중앙회(중기협) 등 사용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이날 봄맞이 체육대회는 이런 분위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의지'를 하나로 모으자는 의미도 있었다.

축구경기가 끝난 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축구경기가 끝난 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장 김경태 목사는 "그 동안 집회 형식을 빌어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를 높였다면 고용허가제가 국회입법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체육대회 형식을 빌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지지를 해 달라는 의미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김 목사는 또 "국내에서도 생산에 종사할 노동력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고된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력은 갈수록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이주노동자 문제는 계속 풀어가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노동허가제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성격이 강한 만큼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이라며 "중기협 등에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는 것이고 완전한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에는 부족하지만 고용허가제를 도입해 노동자로서 대우를 해주면서 그에 적합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해야

이날 체육대회에 참석했던 이주노동자들 역시 산업연수생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 정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봄맞이 행사는 단순한 체육대회가 아니라 산업연수생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날 봄맞이 행사는 단순한 체육대회가 아니라 산업연수생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중국 이주노동자 공동체 회장인 이성수(39. 조선족)씨는 "이리저리 많은 돈을 빌려 한국으로 들어와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너무 안타깝다"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제 고향으로 쫓겨 갈지 몰라 불안하다는 이씨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이주노동자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도 불법체류자로 살아가야 하다보니 거리를 다니는 것도,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조차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공동체의 윈딩 하이(33)씨도 "이주노동자에게도 세금을 거둘 필요가 있다면 낼 의사도 있다"면서 "한국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공평하게 일하며 살아가고 불법을 안 저지를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해 정부는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국인연수업체협의회는 지난 11일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반대 집회를 갖고 입법 철회를 요구했다. 중기협 등에서도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뜻한 봄날에 열렸던 이주노동자 체육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내년에도 '따뜻한 햇볕'을 한국에서 맞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불법체류자 아닌 합법노동자로 일하게 해주세요"
[인터뷰]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세나씨

▲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세나(31)씨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지 6년째가 됐다는 세나(31)씨는 경북 왜관에서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스리랑카인 아내와 함께 먼 이국 땅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세나씨는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공동체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세나씨는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12시간 일해도 4-50만원밖에 못 받는다"면서 "그나마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바로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이주노동자들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불법이라도 일을 해 월급을 받으며 살 수 있지만, 출입국 관리소나 공무원들이 오면 그 공장에서도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주노동자들이 명절 때나 자유롭게 고향에 갈 수 있다면 한국 비행기표를 사서 고향에 들렀다 돌아오면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며 "불법체류자로 있다 잡히면 벌금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도 없게 되고 나쁜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세나씨는 "우리나라(스리랑카)는 지금 가난하다. 그래서 우린 돈을 벌기 위해 먼 나라로 왔다. 우린 한국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일을 대신한다. 우리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힘들게 일을 한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일을 계속하고 싶을 뿐이다"고 바램을 밝혔다.

한국으로 올 당시 한국돈 300만원을 친구들에게 빌려 연수생으로 입국했다는 세나씨는 다행히 빚진 돈은 그나마 모두 갚았다고 방긋 웃음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옛날 한국사람들도 어려울 때 사우디아라비아나 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나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한국을 찾은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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