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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용 포크레인이 취재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다
공사용 포크레인이 취재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다 ⓒ 류종수
말쑥한 산을 파헤쳐 만든 황톳길 위에서 먼지바람이 날리는 가운데 푸른 눈의 한 외국인과 나눈 대화다. 그는 갑작스런 취재진의 출현이 당혹스런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자들이 자신들의 '성스러운' 건설현장을 방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한 외국인 신자는 "당신들(취재진)의 이런 행동의 동기는 통일교에 대한 반대 때문인가"라며 따져 묻기도 했다.

경기도 가평군 송산리 일대의 난개발과 관련, 14일 오후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현장을 찾았을 때 취재진은 현장 관계자와 사진촬영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또 잠시 후 인근 청평연수원에서 온 이국의 통일교 신자들과도 맞닥뜨려야 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성원건설 측은 이미 포크레인을 동원해 취재차량이 공사현장으로 진입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성원건설 관계자는 건설주로부터 아무도 공사현장으로 드려보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막무가내로 촬영을 막아섰다. 그리고 나선 취재에 응하던 외국인들에게 "이곳에 성전을 짓는다는 등의 공사와 관련된 일체의 언급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잠시 취재진과 공사 관계자간에 험악한 말이 오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 인근 마을의 한 노인이 공사 인부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저 산 위에서 2년 전부터 공사를 해왔는데 그 동안 먼지가 많아 날렸다"며 "오늘 아침까지에도 수십 대의 덤프트럭이 올라갔다"고 폭로했다. 그 노인은 공사중단 명령이 내려진 현장에 아직까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증언해 주었던 셈이다.

공사중단 명령에도 계속되는 먼지바람

취재진과 공사관계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자 수련원의 워크샵에 참석했다는 외국인 신자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취재진과 공사관계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자 수련원의 워크샵에 참석했다는 외국인 신자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 류종수
문제의 현장은 가평군 송산리 내 총 16만㎡의 산지로 통일교 산하 학교법인 청심학원이 신학대학원과 박물관 건립을 위해 기반공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문화재보호법 제74조 2항에 따르면, 3만㎡ 이상인 대지에는 공사에 앞서 사전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도록 의무화 해놓고 있다. 그러나 관할 당국인 가평군은 지표조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심학원 측에 건축허가를 내 준 것으로 드러나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는 이와 관련, 지난 9일 문화재청에 문제제기를 하였고, 문화재청은 이날짜로 공문을 통해 청심학원측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미 건립이 완공된 청심수련원과 준공을 앞둔  청심병원
이미 건립이 완공된 청심수련원과 준공을 앞둔 청심병원 ⓒ 류종수
한편 문화연대측은 가평군청이 청심학원의 대학원, 박물관 건축허가를 내준 것과 관련, 군청 관계자들의 직무유기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진 건축허가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민단체 관계자 및 취재진이 가평군청을 방문했을 때 이훈구 국토기획담당관은 "(건축)허가를 하는데 있어 미처 지표조사가 시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혀 청심학원측에 내려진 건축허가에 잘못임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14일 환경운동연합과 문화개혁시민연대 소속 간사들과 함께 송산리 대학원 및 박물관 공사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입구에서부터 진입 자체가 막혔음에도 여러 대의 덤프트럭이 현장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의 공사중단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가평군은 96년부터 허가가 나기 시작한 12건의 송산리 일대 건축허가 현황을 공개했다. 이 현황표에 나타난 건축주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이훈구 담당관은 12건의 건축허가가 모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와 관련된 단체나 개인에게 내려졌음을 확인해 주었다.

가평군청이 작성한 송산리 일대의 통일교 건축현황 지도. 초록색 부분이 통일교측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이다.
가평군청이 작성한 송산리 일대의 통일교 건축현황 지도. 초록색 부분이 통일교측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이다. ⓒ 류종수
12건의 공사 가운데는 현재 진행중인 청심신학대학원과 박물관을 비롯해 청평수련원, 500병상 규모의 청심병원, 노인복지시설, 청소원수련원, 전원주택단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가평군이 파악한 통일교 측의 송산리 건축허가 현황에는 약 25만㎡에 달하는 규모의 부지에서 공사가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화연대는 지난 9일 입수한 가평군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지도를 공개했는데 이 지도에는 현재 진행중이거나 완공된 통일교 관련 시설이 표시돼 있었다. 이는 군청차원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통일교가 시행하는 대규모 난개발 사업의 진행상황을 파악해 왔음을 시사해 준다.

자연보전구역에 대규모 인구유발단지 조성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문제는 단순한 지표조사 누락에만 머물지 않는다. 송산리 일대에 벌어지는 통일교 측의 공사 면적이 20만㎡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환경영향평가를 모두 비켜갔다는 점이 환경파괴의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산림의 형질변경 면적이 20만㎡이상'인 경우에는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이곳 공사현장은 모두 20만㎡ 이하의 규모로 서로 근접한 거리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가평군은 "토지를 쪼개서 법에 맞게끔 공사 신청이 들어와 건축허가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버타운(노인복지시설)의 공사현장
실버타운(노인복지시설)의 공사현장 ⓒ 류종수
더욱 문제인 것은 이 일대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는 자연보전권역에서 3만㎡ 이상의 택지, 관광지, 도시개발 및 학교, 연수시설, 기타 인구집중 유발시설을 건축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건축주인 청심학원측은 대학원 부지를 지난 2001년 경기도로부터 국토이용계획변경 승인을 받아 자연보전 권역임에도 이같은 대규모 사업을 시행할 수가 있었다.

가평군 측은 2002년 7월에 수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는 토지변경 불가항목에 대학원이라고 명시가 돼있지만 당시에는 학교의 부속 항목으로 대학교만 명시돼 있어 경기도에 국토변경승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수정되기 이전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가평군이 소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지금은 명백히 국토이용계획변경 불가한 땅에 3만㎡이상의 거대한 건축물의 공사가 가능하게 된 셈이다.

가평군의 무책임한 건축 허가

가평군청을 방문한 취재진과 시민단체 간사들이 군청관계자에게 송산리 대학원 공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항의하고 있다
가평군청을 방문한 취재진과 시민단체 간사들이 군청관계자에게 송산리 대학원 공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항의하고 있다 ⓒ 류종수
환경운동연합 양장일 처장은 "비록 송산리 대학원 부지가 이상한 법 해석으로 국토이용변경 승인을 받았지만 송산리 일대에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사업은 명백한 난개발"이라며 "이는 결국에 상수도 보호구역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고 삵과 담비가 발견되고 있는 인근 야산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해 가평군 측의 무책임한 건축허가를 비난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송산리 대학원 부지 공사를 진행하는 청심학원측은 명백히 문화재법을 위반하면서 공사를 시작했다는 법적 책임과 자연보전 권역의 환경파괴라는 도덕적 비난을 파하기 힘들게 됐다.

통일교의 한 관계자는 15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현재 송산리 일대의 건축은 모두 법적인 하자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환경영향평가도 받을 필요가 없는 규모들이다"며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순 없지만 우리는 종교단체인 만큼 완벽하게 오폐수 처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은 지표조사도 없이 내려진 송산리 대학원 부지의 건축허가를 취소하기 위한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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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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