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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천안 복자여고로 진학한 딸아이는 가톨릭 '생활성가' 쪽에도 관심이 많다. 생활성가 CD와 테이프들을 한 보따리나 가지고 있다. 그것의 일부를 내게도 주어서 나는 요즘 차를 운전하며 인순이와 신상옥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

우리 성당 (대전교구 태안교회) 성가대는 봉헌 특송이나 성체 특송으로 신상옥씨가 작곡한 노래들을 많이 부른다. 지지난 주 교중미사 때는 성체 특송으로 '임 쓰신 가시관'을 다시 불렀고, '주님 수난 성지주일' 교중미사 때는 역시 성체 특송으로 '그 밤에'를 일년만에 다시 불렀다.

길고 어려운 노래들을 비교적 쉽게 배워서 나도 제법 베이스 조장 구실을 잘 할 수 있는 것에는 딸 덕분도 크다고 생각한다. 딸아이는 교회 내의 생활성가 작곡가나 가수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입수한 것인지 그들에 대한 갖가지 정보 사항들을 소상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내게도 열심히 전해 주곤 하는데, 나도 듣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며칠 전에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4월 13일(성지주일) 오후 3시에 천안시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오룡동교회가 주최하는 '성전건립을 위한 감사음악회'가 열리는데 초대장을 여덟 장이나 구입했다고 가족 모두 올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딸아이는 내가 신상옥씨의 노래들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나머지 천안 음악회에 신상옥씨도 온다는 말을 강조했다.

나는 일단 할머니까지 모시고 가족 모두 가마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도 많이 하고 두어 번 계획 변경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갈 수가 있었다. 다른 주일보다 길었던 교중미사가 끝나자마자 형제 자매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점심도 먹지 못하고 서둘러 천안으로 달렸다.

(요즘은 먼길 운전이 힘들지만은 않다. 간혹 벚꽃 터널을 지나는 경우도 있고, 만발한 진달래로 불바다를 이룬 산을 보며 가슴 미어지게 감탄을 하는 재미도 있다.)

여유 있게 천안에 도착한 다음 일단 딸아이가 사는 집에 들러 딸아이와 함께 천안시 학생회관으로 갔다. 홀로 떨어져 사는 처지에서 가족과 다시 만나 음악회 관람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 그저 좋은지 딸아이는 싱글벙글하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엄마보다도 아이 걱정을 더 많이 하시고 이번에도 손수 여러 가지 음식들을 장만해 오신 어머니는 여전히 손녀를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보시며 이것저것 살펴 주시기에 바빴다.

'하상회'라는 단체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 형제님들이 주차 안내부터 친절하게 봉사를 해주고 있었다. 보기 좋게 잘 만들어진 8면에 달하는 팜플렛에는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 형제"라는 타이틀이 큼지막하게 찍혀 있었다. '피플 엔터테인먼트'가 주관하고 오룡동교회 사목회와 하상회가 후원하는 '성전건립을 위한 감사음악회'의 출연진은 우리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권성일, FOR(연광흠 신부), The story, 아모르데이, 장환진, 신상옥, 오룡동 성당의 기쁜 소리 성가대 등의 프로필이 팜플렛에 자세히 나와 있었다.

제3회 'PBC 창작생활성가제'에서 '사랑의 빛과 샘물로'라는 곡으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춘천교구 장환진씨의 재치 있고 웃음을 많이 자아내는 사회로 음악회는 시작되었다. 음악회의 막을 여는 인사말에서 오룡동교회 주임 김병재 바오로 신부님은 "성가는 두 배의 기도"라는 말씀을 강조했다. 성가 봉헌의 의미에 관한 그 말씀을 들으며, 본당에서의 성가대 봉사를 참으로 기쁘고 중요한 일로 여기는 나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러워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학생회관 대강당을 꽉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관객 수는 많은 편이었다. 오룡동 성당 사목회장이 "이렇게 자리가 비좁을 줄 알았으면 더 큰 장소를 얻을 걸 그랬다"고 하는 조크에 모두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가장 멀리에서 온 관객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내 모친이 모든 관객들 중에서 가장 연로하신 분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컸다.

소박하면서도 색다른 무대 분위기, 적절한 조명과 음향 속에서 음악회는 조촐하면서도 풍성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내 나이도 잊고 딸아이 아들녀석과 함께 두 팔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 여러 번 앵콜이라는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생활성가들은 대개가 경쾌하고 신나는 곡들이지만, 애조를 띤, 그래서 더욱 간절한 느낌을 주는 노래들도 많다. 좋은 무대 분위기 속에서 가수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듣는 생활성가들은 내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줄곧 절감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신상옥씨는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부르고, '찬양하여라', '호산나 헤이', '주님 안에서' 등을 관객들의 합창을 유도하며 불렀다. 나는 신상옥씨는 물론이고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젊은 생활성가 가수들, 그리고 노래하는 사제 연광흠 바오로 신부님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에 대한 가없는 감사와 애정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기도 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음색, 타고난 노래 능력은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일 터였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그들은 그것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요 찬미일 터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의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노래는 그들과 관객 모두를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 형제'가 되게 하면서 최대한 풍성하게 '함께 하고 나누는' 것일 터였다.

하느님께 대한 깊고 지순한 신앙으로 그들이 노래를 부르리라는 것, 그들이 그런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그들은 알게 모르게 더욱 깊고 지순한 신앙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리라는 것, 그들의 노래 덕에 우리의 신앙도 알게 모르게 좋은 자극을 받으리라는 생각들이 내 뇌리를 간질이듯 피어올라서 나는 더없이 감미로운 기분이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맑은 영혼, 뜨거운 신앙의 샘에서 우러나는 것이고, 관객들 모두에게 기쁘고 즐거운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어주는 일이라는 생각 또한 나로 하여금 더욱 그들을 정겨운 신뢰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매번 가장 열렬하고 오래 손뼉을 치게 만들었다. 손바닥이 얼얼한 것을 느낄 때는 내 건강이 그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언뜻 들곤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비록 먼길을 왕래했지만, 덕분에 가족 품을 떨어져 객지에서 살고 있는 어린 딸아이도 볼 수 있었고, 가족 모두 함께 한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로 하여금 그 음악회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도운 사람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들, 그리고 관객들 모두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주님 안의 모든 형제 자매'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축복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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