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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다지가 어울려 이루는 한 세상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다지가 어울려 이루는 한 세상 ⓒ 최성수
서울에는 벚꽃이 다 지고 파릇파릇 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정원의 목련들도 다 지고 연초록 잎새를 틔우고 있습니다. 목련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목련들이 처참하게 짓물러 터진 모습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필 때는 아름답고 향기롭던 목련이 질 때는 저렇게 온 몸에 상처만 입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한 낮에는 긴 팔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더운 서울 날씨와는 달리 강원도 산골은 아직도 겨울의 뒷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주말, 고향집에는 아침에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감자를 갈아 체로 걸러 물에 담아 내놓은 작은댁 마당의 함지박에는 얼음이 제법 두텁게 얼어 있었습니다.

한 밤중, 멋모르고 외투도 없이 마당에 나가 있다가 추위에 오한이 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진달래는 아직 꽃망울을 매단 채, 제 꽃잎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제서야 앵두나무가 병아리 오줌만큼 꽃눈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심어놓은 산수유도, 집 뒤 언덕의 개나리도 그저 머지 않아 피긴 필 거라는 듯, 부풀은 꽃망울만 내놓은 채, 추위에 잔뜩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봄의 한 가운데인 서울에서 갑자기 겨울로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습니다.

집과 꽃이 어울려 아름다운 봄이 세상에 피어난다
집과 꽃이 어울려 아름다운 봄이 세상에 피어난다 ⓒ 최성수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이미 다른 곳은 다 지나가 버린 봄이지만, 늦게라도 봄은 오는 법이니까요.

마을 어귀 묵밭에는 지천으로 노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지나가다 들러보니, 온통 꽃다지입니다. 저렇게 많은 꽃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한 세상의 아름다움이 바로 봄 세상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꽃들은 대개가 꽃이 작습니다. 어떤 꽃들은 꽃송이를 찾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꽃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 작은 꽃다지의 꽃송이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저렇게 순결하고 고운 노란빛 세상이 말입니다.

아직 찬바람이 거센 숲 속에도 어김없이 봄꽃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개별꽃이 잡초 속에 숨어 여리고 가는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광대나물도 흰 제비꽃도 봄이 왔다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골짜기 집에서 나오고, 전재를 넘어서면 그곳에는 진달래가 무리 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봄이 거기까지 온 것이지요.

남녘에서 시작된 봄은 제 몸을 한껏 부풀어 올려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꽃 소식을 알려주며 달려와 마침내는 이 땅을 온통 봄 세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다른 끝자락은 여름에게 넘겨주고, 이렇게 아직도 겨울이 남아있는 강원도 외진 골짜기로도 슬금슬금 다가와, 마침내는 우리네 땅 곳곳을 디디며 봄의 향기를 전해 주는가봅니다.

논 물 모여있는 곁에 산수유는 피어 있네
논 물 모여있는 곁에 산수유는 피어 있네 ⓒ 최성수
국도를 따라 온통 꽃길입니다. 양지 바른 곳의 산벚나무도 분분히 꽃잎을 날리며 봄이라고 소리치고 있고, 개복숭아도 붉은 꽃을 피워내며 나도 봄꽃이라고, 한 번쯤 눈길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 길, 강원도 서원면 유천리의 한 곳에 누구보다도 먼저 봄을 온 몸에 매달고 있는 산수유가 서 있습니다. 아름드리 산수유가 온 몸에 노오란 봄을 매달고 있는 것은 보기만 해도 푸근합니다. 나무 앞의 푸르른 호밀밭도 싱그럽습니다.

이렇게 봄은 이제 우리 땅 곳곳에 비로소 다 찾아온 셈입니다. 아니, 아직도 봄은 북녘의 곳곳을 더 찾아다니며, 세상이 이렇게 환하다고, 삶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제 몸의 향기를 전해주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한 곳이 이미 한여름인 계절, 저 백두산의 산주름에 온갖 야생화를 피워내며, 이제야 비로소 봄이 완성되었다고 우리에게 속삭일 지도 모릅니다.

푸르른 호밀밭과 노오란 산수유가 마주보고 있는 봄
푸르른 호밀밭과 노오란 산수유가 마주보고 있는 봄 ⓒ 최성수
논 물 그득히 고여있는 마을, 꽃다지 지천으로 피어 비로소 봄인 마을, 산수유 꽃나무 가지 휘어져 그 가지 끝에 봄을 매달고 있는 마을을 지나치며, 괜히 마음 나직해지는 것은, 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지에 봄을 매달고, 이웃 나무에게 흔들리는...
가지에 봄을 매달고, 이웃 나무에게 흔들리는...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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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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