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도념은 애기 스님. 절 마당 깨끗이 쓸고, 물 길어다 항아리에 붓고, 쌀 씻고, 그 사이사이에 토끼 잡고, 마을에 놀러 내려가고…바쁘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엄마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절에서 일하는 초부 아저씨가 단풍나무에 금을 그어주고는 이만큼 키가 자라면 엄마가 올 거라고 하지만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눈이 내려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도념과 한 방을 쓰는 정심 스님은 말 그대로 피끓는 청춘이다. 포경 수술을 하고 싶어서 입만 열면 '스님, 저 돈 좀 주세요'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한 사람, 바로 큰 스님이 계신다. 큰 스님은 정심에게도 도념에게도 무섭다. 마을 친구들이 절에 찾아와 "도념아, 노∼올자" 소리쳐 부르면 호통을 쳐서 쫓아보내고, 단풍나무에 새겨진 금에 키를 맞춰보는 도념을 보시고는 다시는 단풍나무 있는 데 가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신다.
절 아랫 마을 아이들은 도념을 따돌리며 마을에 내려 오지 말라고 하고, 큰 스님은 단풍나무 있는 데도 가지 말라고 하시니 도념은 갈 곳이 없다. 속상하다. 큰 스님에게 종아리를 맞고 단풍나무 아래 서서 '엄마'를 부르며 우는 도념, 몇 자리 건너 앉으신 스님도 코를 훌쩍이신다. 그러니 내가 운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영화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어나가면서 젊은 정심 스님의 갈등을 보여 주고, 또 도념을 양자로 들이려는 예쁜 보살님과 양자로 가고 싶어 하는 도념, 도념을 보내지 않으려는 큰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는 일의 얽히고 설킨 실타래들을 슬며시 풀어 놓는다.
그 모든 이야기 속에 큰 스님이 보인다. 엄격하고 무서운 얼굴 사이로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모두 웃음짓게 만들면서 말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애기 스님과 피끓는 청년 스님을 때론 호되게 야단치기도 하고 때론 편안하게 감싸안기도 하면서 큰 스님의 일상은 그 발걸음만큼이나 천천히 흘러간다.
애기 스님의 마음도, 정심 스님의 마음도 큰 스님에게는 모두 자신이 겪어온 시간과 지나온 길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평생 승복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신 스님에게 어찌 그만한 아픔과 어려움이 없었을까. 뼈에 새겨져 영영 지워지지 않을 기억인들 없을까. 그 모든 고비를 넘겨 여기에 이르셨을 것이다. 그러니 애기 스님의 눈물을 모른 척 하면서도 눈빛이 흔들리고, 정심 스님에게 도념이 데리고 세상 구경하고 오라고 봉투를 내미셨을 것이다.
'아무리 그리워하고 그리워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정심의 말이나, '찾는 게 있어서 너는 행복하다'는 초부 아저씨의 말 모두 도념에게는 생을 걸고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랑 하나 메고 절 문을 나서는 어린 도념의 모습은 큰 스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평생 길을 찾으며 걸어와 이제 여기에 이른 큰 스님 역시 찾아 헤맨 그 무언가가 있어 행복하셨을까.
예쁜 보살님은 도념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을 어머니로 생각하라는 말을 하고, 도념은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역시 우리는 길을 찾는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이다. 길의 끝자락에 이른 큰 스님은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애기 스님의 모습에 얼마나 가슴 조리며 애가 탈까. 그래도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지 않고 그저 바라보신다.
눈물 겨운 애기 스님의 이야기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넘쳐 흐르는 청년 스님의 이야기 사이에 큰 스님이 자리 잡고 있어, 우리는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을 볼 수 있으며 문득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된다. 세상을 살아본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서계신 큰 스님은 이렇게 또 영화 속에서 노년의 엄격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