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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실습에 나선 한총련 수배자, 100여명의 학생 호위를 받으며 형 결혼식에 참여한 모대학 학생회장, 연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수배자 가족들과의 만남'...
한총련의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수배 생활을 해온 대학생들의 사연이 잇따라 언론에 소개되면서 이 문제가 여론을 타고 있는 가운데, '한총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해 나가겠다'는 정재욱 신임 11기 한총련 의장의 첫 일성(一聲)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총련은 전국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 이상의 학생회 보직에 선출된 사람은 자동적으로 조직의 대의원이 되는 전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학생운동의 내부가 이념적 갈등 구조 속에서 '전학협''학생연대회의'등으로 나누어져 통합적인 힘을 발휘해 오지 못했다는 반성에 근거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총련은 지난 1997년 '이적단체'라는 공식적인 낙인을 얻은 이후, 대중적 활동에 있어 심대한 제약을 받아왔다. '발전적 해체'와 같이 놓여 있는 '한총련 합법화'주장은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나 역시 한총련이 합법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어차피 한총련의 강령만 놓고 보면 2001년도에 이미 '연방제 통일'조항을 삭제하는 등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이적단체 판정에 결정적인 법적 근거가 된 국보법 7조는 이미 13년전에 헌법재판소로부터 '한정합헌'판결을 받은 바 있지 않은가.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심대하게 위협할 때에 한정하여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적판정'받은 이후 위축된 한총련과 수배자로 쫒기는 학생회장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의 극단이다.
그런데 '발전적 해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딘가 찜찜한 인상이 남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발전적 해체'라는 언표의 이면에는 '모든 학생운동을 망라하는 새로운 통합적 조직의 건설'이라는 의미가 그림자처럼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대협이 한총련으로 거듭났듯이 한총련도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인데, 이는 한총련의 '혁신'과 '해체'를 주장하는 새 의장의 언표도 결국은 조직지향적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입증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갈리고 분화하는 요즘 사회에서, 한총련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학생 운동 조직이 이룰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시민사회운동이 정치사회와 국가에 치명적인 영향력과 균열을 안긴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촛불시위'와 '노사모', '반전평화시위'가 모든 이념과 사상을 망라하는 통합적 운동단체에 의해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여중생 범대위와 반전평화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었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시위의 한 부분이었을 뿐, 중심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중심은 정치적으로 사회화된 시민들 개개인이었고 힘을 발휘한 것은 그들의 자발적인 연대였다. 노사모의 성공은 철저히 이러한 원리에 기초했음에 있다.
학생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전대협과 초기 한총련이 좇던 '국가권력의 민주화와 민족 해방'등의 거창한 담론은 여전히 시대적 과제로 남아있긴 하나 이전과 동일한 절박함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의 관심은 거대 담론을 넘어 평화, 인권, 문화, 여성, 환경 등의 미시 담론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들까지 포괄하기 위한 전략은 '모든 것을 망라하는' 거대 조직의 건설보다는 '분야별로 흩어지고 사안별로 연대할 수 있는'느슨한 연결망 구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나는 새 한총련 의장이 말 그대로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를 선도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운동성을 가진 학생들을 엮어내는 것은 '모든 이념을 담는'거대 조직이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운동 과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함께 해야 하는 사안에서는 주저 없이 뭉치는, 이른바 '느슨한 연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학생운동도 소수의 '의식화된'학생들과 그 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전통적 맥락에서 벗어나, '정치적 시력'을 지닌 학생들이 대학 사회에 점차 많아지고 넓게 분포하게 되는 맥락으로 변화할 때 더 역동적인 운동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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