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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날 나로도 바닷가에서(오른 쪽이 수지)
소풍날 나로도 바닷가에서(오른 쪽이 수지) ⓒ 안준철
'선생님 메일 잘 읽어보았어요,,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될 듯 싶어요,, 그것까지는 아직 생각을 못 해봤어요. 아직 그 꿈이 제게 맞는 건지 엄마가 원하는 건지 아님 제가 원하는 건지,,,제가 큰딸이어서 그런지 엄마에게 부담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구요^-^ 제가 원하는 꿈은 간호사예요,,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픈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저만의 생각이기도 하구요.(…)'

'너의 꿈이 간호사라니 왠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간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구나. 선생님은 두 분 부모님을 모두 일찍 여의었단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다음 해 아버지가 당뇨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셨을 때 아는 분이 아버지를 간호를 해주셨는데 그분 하신 말씀이 이랬어. 간호사라는 직업이 참 깨끗하고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지저분하고 힘든 직업일 수가 없다고 말이야. 누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고.

난 생각이 달랐단다. 사람들이 간호사를 일컬어 백의의 천사니 순결한 나이팅게일이니 하고 겉모습만 보고 칭송을 할 때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위대해 보이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단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난 뒤에는 병원에서 만나는 간호사들이 달리 보이는 거야. 내가 깨끗하고 내가 편한 것보다는 나의 노동으로 인해 누군가 깨끗해지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더 값지고 위대한 삶이 아니겠니? 간호사의 손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물론 직업이란 우선 경제적인 수단인 것만은 무시할 수 없을 거야. 선생님도 그렇지.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치는 것이 사랑 때문만은 아니야.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정을 꾸리고 그래야지. 그래서 직업이 소중하기도 한 거지. 하지만 거기에 사랑이 더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행복한 거지.(…)'

지금 수지는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시간이 조금 줄긴 했지만 이제는 막연히 하는 공부가 아니라서 그런지 실상 머리 속에 들어온 것은 더 많다고 했습니다. 기초만 부족하지 않으면 혼자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수지에게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빡할 때가 많습니다. 그늘 한 점 없는 수지 특유의 해맑음 때문입니다. 수지는 자청해서 임시반장을 하겠다고 나설 만큼 당찬 구석이 있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수지는 열심히 사는 아이입니다. 제가 한 일은 그 열심의 방향을 바로 잡아준 것뿐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교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지의 생일날 저는 새벽같이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수지에게 전해줄 생일 축하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두세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었을 수지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수지

새벽 1시 26분 4초
너의 세 번째 편지와 함께
찍혀온 시간

제가 원하는 꿈은 간호사예요,,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8시간
학원에서 4시간
독서실에서 2시간

그리고는
밤이 이슥해서야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
내가 보낸 편지를 읽었겠지

답장 쓰느라 더 피곤하면 어쩌나
편지를 쓰지 말까 하다가도
밤늦은 시간 들어온 너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처럼
세상에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그 위에 한 가지 더
세상을 향해, 너의 영혼을 향해
왜냐고 물어보는 것

그리하여
눈처럼 흰 가운을 입은
청아한 모습의 나이팅게일보다는

목마르고 가난한 사람들
찢긴 몸과 마음 함께 꿰매주는
아름다운 수지가 되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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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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