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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길을 정해 놓은 채 움직이며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합석하는 북한과의 회담을 북한에게 할 말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말을 들어보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물음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면 이런 주장이다.

한국 정부의 다자 회담 참여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지만 핵문제 해결의 핵심은 아니며, 이번 3자 회담에서는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을 덜 불안하고 조금은 통제가 가능한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씩 짚어 보자.
지난 18일 밤. 북한이 세상을 또 발칵 뒤집었다. 8천여 개의 핵연료봉 재처리를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선포한 바와 같이 지난해 12월부터 핵활동을 재개한데 따라 그리고 지난 3월 초에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에 중간 통보를 해준바 대로 이제 8천여 대의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4월 1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발표)

북한이 실제로 재처리 작업에 들어가 현재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는 것인지 여부가 핵심 문제로 떠오른 이 발표문은 사실이라면 자칫 어렵게 합의된 3자 회담마저 무산시킬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미국은 한국 시각으로 회담 전날인 22일 새벽에야 공식 발표했다). 다행히 미국은 그 같은 분석 대신 재처리 작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의 마지막 단계에 왔다는 쪽으로 받아 들였다.

물론 이같은 방침으로 정리한 뒤에도 미 행정부 안에서는 3자 회담을 받아 들일 것인지를 놓고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 또 국무부 안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포기 설득에 좋은 기회"라고 밝혀 3자 회담에 예정대로 참석은 하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이에 따라 지난 7일로 예정됐다 무산된 제10차 장관급 회담은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게 된다).

북한의 마지막 카드, '핵연료봉 재처리'

눈 여겨 볼 것은 핵연료봉 재처리라는 카드의 위력이다. 서울대 원자력 정책연구센터의 강정민 박사는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8천여 개의 핵연료봉을 실제로 재처리하면 넉달 반 정도면 전량을 재처리해 4,5기 분량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한달 안에 1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에 따라 분석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없다). 재처리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이 매우 긴장하는 이유다.

핵연료봉 재처리는 이미 지난 2월에 5MWe 원자로의 재가동에 들어갔고, 상당 기간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의 시험 발사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북한으로 볼 때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협상 카드다. 만약 이 카드을 썼는데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북한으로서는 실제 핵무기 보유 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연료봉 재처리 카드는 그만큼 현재의 핵 국면이 불안하다는 구체적인 증거다. 그런데 이 분석은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의 불안정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첫 단추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그리고 이번 3자 회담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3자 회담 1차 회의는 '최소 목표' 이끌어야

북·미·중의 3자 회담 1차 회의에서 한국은 '최소 목표'를 잡아야 한다. 등 떠밀려 나가는 미국처럼 북한이 할 얘기가 있다니까 들어보는 대신 자신이 북한에게 요구하는 사안들을 늘어 놓으며 강요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또 북한같이 오로지 체제 안전 보장과 대북 적대 정책의 포기같은 장기적인 사안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고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현재의 핵 국면을 그래도 조금은 안전하고 조절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최소 목표'로 삼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인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북한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며 미국 역시 기존의 핵폐기 요구를 거둬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과 관련해 취한 일련의 조치와 그 주변 상황을 돌리는 것이 그나마 현재의 핵 위기에 대한 최소한의 제어 장치가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17일 "북한이 농축 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의 발표 뒤 같은 달 북한은 불가침 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미국은 11월 15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공급한 중유를 12월부터 중단시켰고, 북한 역시 12월 12일 동결된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중단했던 핵 발전소 건설 재개를 선언했다. 이어서 12월 말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시설 감시카메라와 봉인을 제거했고, 사찰단원을 추방했다.

올해 들어서도 북·미의 공방은 계속됐다. 지난 1월 6일 IAEA 특별 이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북한은 나흘 뒤 핵확산 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한 달 여 뒤 IAEA는 마침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핵 문제를 넘기기로 결의했고, 북한은 2월 26일 5MWe 원자로의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같은 북한의 전술을 흔히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북한은 미국의 특정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강하게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이 전략을 'tit-for-tat 전략'이라고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최소 목표는 2001년 10월 17일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

북·미·중 3자 회담의 1차 회의는 이같은 현 상황의 해소 내지 복원을 최소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당장 5MWe 원자로의 재가동을 멈추고, IAEA 사찰단을 다시 받아들이며 카메라와 봉인을 재설치해야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단한 중유 공급을 당장 재개하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조금 더 목표치를 높인다면 북한은 핵 연료봉의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고, 대신 미국은 경수로 건설 사업이 계속될 것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2차 목표는 3자 회담 1차 회의에서 당장 타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은 1차 목표를 최소 목표로 설정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최소 목표는 쉽게 말하자면, 지난해 10월 17일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지난 94년의 '북·미 기본합의'(Agreed Framework, AF)에 따라 영변의 핵 시설들에 대한 동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 역시 부시를 비롯한 행정부와 의회 강경파들의 공개적인 대북 혐오 속에서도 중유 공급을 계속하고 있었다. 북·미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험악한 상황을 AF라는 최소의 생명줄로 버티고 있었다.

이런 위태한 상황은 지난해 10월 초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차관보의 북한 방문 기간에 불거진 농축 우라늄 계획으로 인해 폭발했다. 당시에도 미국은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통해 한 번 얘기나 들어보자는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같은 자세는 미국과의 적극적이며 포괄적인 대타결을 준비하던 북한을 실망시켰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오히려 북한에 대해 농축 우라늄 계획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윽박질렀다(이 부분 역시 불분명한 요소가 있다. 그 뒤 켈리 차관보 본인을 포함해 미 행정부의 그 누구도 북한이 농축우라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확실한 물증은 없고 다만 파키스탄과의 연계 의혹만 거론하고 있다. 그 뒤에 전개된 상황은 위에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번 3자 회담 1차 회의에서는 적어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을 북한과 미국이 합의하고, 동시에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2차 합의 - 동결·중유 공급 무기화 포기

지난해 10월 17일 이전 상황 즉 북한은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해 유지하고, 미국은 중유 공급을 재개한다는 최소 목표에 합의하면 이후 3자 회담 2차 회의나 한국ㆍ일본ㆍ러시아 등이 참석하는 다자 회담에서는 2차 목표에 대한 북·미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북한은 핵 연료봉의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은 경수로 건설공사의 지속을 확약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과 미국은 중요한 합의를 해야 한다. 그 합의는 핵 같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폐기, 미사일 개발 중단, 재래식 군사력 후방 배치 등 미국의 대북 요구 사항과 핵을 사용해 선제 공격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 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NSA)을 포함하는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등 북한이 제시하는 의제를 포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 협상을 벌일 동안 미국은 각각 중유 공급과 경수로 공사를 재개한다는 것을,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하고 지난해 처럼 IAEA의 (소극적) 사찰단을 추방하거나 감시카메라를 봉인하는 행위를 않는다는데 합의해야 한다.

이같은 2차 목표에 합의하면 한국은 핵과 관련한 최소한의 안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북한으로서도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으며, 미국도 북한과의 협상에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2차 합의에 그쳐서는 안된다. 2차 합의는 양 날의 칼과 같은 것으로 한쪽 날은 북·미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반대쪽 날은 북·미로 하여금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하는 부정적 요소이다.

즉 현상 유지(status quo)에 대한 유혹이다. 이같은 유혹은 북한보다 미국이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자신의 체제 보장을 확약받아야 경제 재건도 가능하다. 속이 탄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미국은 그같은 절실함이 없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 출범 뒤의 행태를 보면 미국은 북한 위협론을 자신의 전략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대단히 유효적절하게 활용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사일 방어(Missile Defense, MD) 계획의 추진이다. 이 계획은 적대국의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을 지킨다는 것으로, 본질은 중국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포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대상으로 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MD를 추진하기는 어려운 만큼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을 지목하며 MD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 만큼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히 관리하면서 자신의 국익을 극대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유혹을 느끼기 쉽다.

3자 회담서 '포괄 타결' 토대 만들어야

이같은 분석을 기초로 대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베이징 3자 회담 1차 회의에서는 최소 목표를 이끌어 내야 하며, 3자 회담 2차 회의나 다자 회담을 빨리 열어 2차 목표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빠른 시일 안에 다자 회담을 개최해 북·미는 현안에 대한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대타협을 이끌어 낸다는 합의를 하고 한국과 중국 같은 관련국들은 이 합의를 정치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후 북한과 미국은 다자 회담 속의 양자 회담이든, 직접 대화든 형식에 관계없이 핵과 미사일, 재래식 군사력 등의 주요 현안에 대한 부문별 회담을 열어 절충과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같은 부문별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의 동결과 IAEA 사찰을 허용하고, 미국은 중유 공급과 경수로 건설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3자 회담 1차 회의는 이같은 구도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3자 회담 소식이 흘러나온 뒤부터 꾸준히 자신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16일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 맥코맥 대변인은 "(이번 3자 회담에서) 즉각적인 돌파구보다 진전을 기대"하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담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기존 원칙을 되풀이했다.

미 국무부 역시 같은 날"핵 폐기 외 다른 의제도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3자 회담의 목표는 북한의 검증 가능한 영구 핵 폐기"라며 동일한 기조를 밝혔다. 파월 국무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외에 다른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확산, 그리고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분명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같은 방침은 회담을 하루 앞둔 22일 허바드 주한 미 대사가 "북한의 핵 무기 프로그램 제거 시작에 3자 회담의 초점을 맞출 것"이며 "북한의 핵 계획 종결을 목표로 하며 북한의 핵 포기가 있어야 여러 부문 대화가 가능하다"고 거듭 밝혀 방침의 변화가 없음을 확인했다.

더욱이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3자 회담을 승인하기 수 일 전에) 북한 지도부의 축출하기 위해 중국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내용의 비망록을 미 행정부에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온건파가 주도하고 있다는 현 대화 국면이 그야말로 가시밭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재처리' 거론 배경

미국의 반복된 '원칙 불변' 메시지 때문에 북한은 3자 회담의 유용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됐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요구 사항만 그것도 체제 유지의 핵심 카드를 아무 대가 없이 포기할 것을 회담 의제로 삼겠다는 것은 미국의 이전 방침, '선 핵폐기 후 대화'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난 18일 북한이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 가면서 '핵 연료봉의 재처리'를 거론하고 나온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협상을 협상답게, 대화를 대화답게 하자는 것이 북한이 재처리 거론을 통해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대화를 대화가 아
닌 압박과 강압의 자리로 활용한다면 북한 역시 대화가 아닌 역압박과 역강압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2차 핵위기가 불거진 지 반 년 만에 어렵게 열리는 3자 회담은 위에서 언급한 '최소 목표'를 합의하고 2차 회의 일정을 잡기는커녕, 결렬될 것이며 북·미는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 넘기기에 급급할 것이다. 한 마디로 회담을 위한 회담, 극단적으로는 파국을 위한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자회담에 조속히 참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벗어야

상황이 이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다자 회담에 하루 빨리 참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다자 회담은 참여국 모두가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좋은 틀이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다자 회담 참여를 전제로 해야 이번 3자 회담이나 북·미 대화에서의 진전을 인정할 수 있다는 한국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지난 93~94년의 1차 핵위기 때 당시 김영삼 정부가 남북 특사 회담 타결을 조건으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성사를 막았던 우를
되풀이하기 십상이다. 한국은 대화의 형식이나 틀보다는 대화를 통해 핵문제 같은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덧붙여 국내의 일부 언론과 여론, 그리고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해 다자 회담 참여를 구호로 내걸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 북한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일부 국면에서는 한국의 다자 회담 참여를 전략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북한과 미국의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중국과의 적극 협력 - 정책 협의·공동 특사도 검토

두 번째로 중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3자 회담 성사에는 이미 알려진대로 중국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실제 회담에서도 중국이 나름대로 북한과 미국의 날카로운 대립이나 비난 등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은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의 직접 대화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이고, 미국은 중국을 판의 한 가운데 끌어들이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하면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공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한국은 다른 팔로 중국을 붙잡아야 한다. 한·미·중 협력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최소 목표에서 시작하는 '포괄적, 단계적 대타결'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며 결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중심 정책으로 밝히고 있는 중국의 원칙과 이해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면 중국과 정책 협의를 추진해야 하며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한
·중 공동 특사단 파견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3자 회담 1차 회의의 준비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 정부는 미국, 일본과의 고위급 대북 정책 조정만 했을 뿐 중국과의 협의는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두고두고 아쉬움이자 크나큰 실책으로 남을 수 있다.

'강경에는 강경으로, 초강경에는 초강경으로, 선의에는 선의로'는 북한이 대외정책, 특히 미국에 대한 태도를 밝히면서 언급하는 원칙이다. 지난 1차 핵 위기와 현재의 2차 핵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이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3자 회담을 앞두고 터져 나온 북한의 '핵연료봉 재처리 거론' 역시 회담을 대화와 타협이 아닌 일방적인 요구와 압박의 장으로 만들려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3자 회담에서도 북한은 이 원칙대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이 자신의 독점적 이익이 아닌 북·미 쌍방, 더 나아가 한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같은 다자의 이익을 위한 타협과 협상의 자세를 보이면 북한 역시 거기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북한을 압박하고 힘으로 눌러 항복을 받아 내려 한다면 북한은 거기에 결단코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필요한 것은 그 해답을 내기 위한 치밀한 정책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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