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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평론가 심영섭이라는 이름이 그닥 낯설지 않을게다. 하지만 그가 생명공학과 심리학뿐만 아니라 신경정신과를 거쳐 영화로 입문했고, 대학 시절 유일한 여자 야구 선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 그의 본명이 김수지라는 것과 심영섭이라는 이름이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 또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책의 서두에 쓰여진 지은이 소개부터 관심을 끈다.

이러한 다채롭고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심영섭씨가 자신의 주특기를 십분 살려 심리학과 영화와의 만남을 주선한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펴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은 '이미 심리학이라는 조강지처가 있는 그에게 영화가 다가와 삼각연애로 진행된 결과물'인 셈이다.

'성과 사랑의 이중심리', '상징의 메시지 탐구', '인간관계 속 불안과 절망의 심리'등 총 네 부분으로 나눠진 책은 특히 '상징의 메시지 탐구'에서 영화 속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소재들이 가지는 상징성을 분석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다리'. 자살 소동이 유난히 많이 벌어지는 곳 중 하나로 단연 다리를 꼽을 수 있다. <애수>의 마이라(비비안 리 분)도 워털루 다리에서 생을 마감하고, <멋진 인생>의 조지(제임스 스튜어트 분)도 다리 위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것이 좋은 예가 돼 준다. 또 <걸 온 더 브릿지>에서는 창녀 아델(바네사 빠라디 분)이 쎄느강의 다리 위에서 자살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왜 다리 위로 달려가는 것일까? 지은이는 “다리는 천계와 이승, 인간과 신의 결합을 통한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상징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비유한다. 다리는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거짓의 세계에서 참된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다”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한편 '인간 관계 속 불안과 절망의 심리'에서는 '성격 장애'를 언급한다. 이는 '진짜 성격적인 문제를 가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자그마치 13가지의 종류로 나뉜다. 그 중 <파이란>의 강재(최민식 분)로 대표되는 '수동 공격적 성격'을 집중 분석한다.

아이들에게 금지된 비디오 테잎을 팔거나 일수 돈을 받으러 다니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멸시해도 제대로 대꾸 한번 하지 못한다. 이러한 증상을 지은이는 현실을 투명하게 지각하기 힘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이 같은 증상을 이겨 낼 수 있다는 충고를 전한다.

또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빠질 수 없는 소재인 '자살'에 대해서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이는 자살에 대한 방대한 연구가인 사회학자 뒤르캠의 <자살론>을 빌려 설명해 준다. 이 책은 인간의 자살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등 세 가지로 나누는데, 특히 정세의 변화와 사회 환경의 차이 또는 도덕적 통제의 결여에 의한 자살인 아노미 자살의 대표로 <박하사탕>의 영호(설경구 분)를 꼽는다. 이는 광주라는 역사적 상흔과 물질 만능의 사회에서 패자가 된 한 인간의 자화상으로 그의 자살은 사회와 개인의 합작품으로 본다.

한편 자살을 예방하고 도움을 주는 자살 신호를 감지를 소재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죽음을 의미하는 자살과 즐거움의 상징인 관광을 짝지어 삶과 죽음을 담은 <자살관광버스>도 소개한다.

그외에도 책은 공통된 소재를 담고 있는 국내외의 영화를 짧막하게나마 소개해 주고, 영화와 심리학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두루 겸비한 전문가다운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일찌감치 현대인에게는 필수가 돼 버린 영화. 그만큼 영화는 우리 삶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는 영화를 단지 웃고 즐기는 것에서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이해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초석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다른우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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