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밭 관리 등 주말에 농사 돕기로
나는 토요일마다 농사일을 한다. 전번 토요일엔 나무 심은 뒷자리를 정리하고 지난 토요일에는 나무밭 사이에 고구마와 고추 몇 포기를 심었다. 주말이면 친구 어머니 일을 해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인천 계양산 자락 밭으로 약속 시간에 나갔다. 친구도 어머니와 같이 나왔다. 바로 앞이 인천공항 가는 고속도로다.
100여 평밖에 안된 좁은 밭. 이달 초 작업을 해서 산이었던 곳을 밭으로 만들어 600여 평으로 늘어나 있었다. 친구 어머니는 영산홍, 황금측백, 단풍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 무궁화를 촘촘히 심어 놓으신 뒤에 관리를 나에게 맡기신다는 거다. 그런데 이 나무 밭 관리를 맡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1주일 여 고민한 끝에 '나무밭 풀을 잡기 위해 농약통을 지고 제초제를 뿌린다는 것은 못할 일이다'고 결론 짓고 다른 작물을 심어 잡초보다 먼저 땅을 점령해 풀이 자라는 걸 억제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콩과 고구마였다. 뿌리혹박테리아를 보유 공기 중 질소를 땅으로 불러들이는 힘을 가진 콩을 대부분의 나무밭 사이에 심고 50여 평엔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산벚나무 심은 곳을 고구마 밭으로
친구 어머니가 사오신 것은 고구마 싹 300개에 고추 모종 50포기였다. 전날 회사에서 과음했다는 친구는 점심때가 지난 시각이었는데도 차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1시가 넘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년 봄 기계톱으로 나무 자르는 일은 내가 했다. 그 곳이 이렇게 바뀔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곳을 굴착기를 동원하여 나무밭을 만들다니! 추진력은 정주영 회장 다음가라면 서러워 할 친구 어머니! 이런 맨땅이나 다름없는 곳에 고구마를 심어야 한다. 벚나무 사이사이에 고랑을 만들어 고구마를 부치기로 하고 지난 주 미리 퇴비를 사다가 뿌려 놓고 복합비료를 슬슬 뿌려 놓았다.
봄비가 줄곧 내렸으므로 땅을 파지 않고 흙만 긁어모아 이랑을 만든 뒤 갖고 있던 비닐을 씌우고 고구마를 심을 작정이었으나 막상 손을 대 보니 맨땅이다. 삽으로 흙을 파서 까뒤집는 수밖에. 일이 일단 커졌다. 이러기를 세 시간 남짓 흘렀다. 나무를 심느라 밟아 놓아서 딱딱해진 땅을 삽으로 파고 산도꾸와 쇠스랑으로 흙을 잘게 부수고 흙을 가운데로 모으니 제법 이랑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까만 비닐을 씌웠다.
고구마 부치기
물에 담가둔 고구마 싹을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 200개만 사오시라는 내 청을 무시하고 300개를 사왔으므로 땅이 좁을 것 같았다. 거기다 고추까지 사오셨으니 난감했으나 기색을 하지 않고 일단 심어 보기로 했다.
고구마는 '심는다'는 말이 어색하다. 뿌리가 없고 뿌리 채 심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걸 땅 속에 깊게 묻어서 뿌리가 되게 만들므로 어른들은 '붙이다'는 말을 써왔을 것이다. 땅에 묻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잘 다독여 주면 그 마디마디 마다 뿌리가 나서 제 맘대로 줄기를 뻗어가 그 곳에 대갈통 만한 고구마가 생기게 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인가. 알고 보면 이렇게 간단한 것을 일본에서 고구마가 도입되었던 초기에는 10년 가량 재배법을 몰라 매년 실패를 맛봤던 작물이 고구마요, 배고픔을 달래 주었던 보배로운 농산물이 고구마다.
농활 때 생김새부터 촌놈이라고 오해받을 성싶게 생긴 친구는 서울 태생이어도 농사일은 농민 못지 않게 잘 한다. 어떤 일이고 이런 보조자 한 명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싶을 정도로 병훈이는 잘도 거들어줬다.
이런 친구도 고구마를 부치는 일은 처음 해보아선지 서툴기 짝이 없다. 한참 심어가다가 한마디했다.
"야 병훈아! 너는 고구마 싹을 20cm 간격으로 차례대로 놓아라. 심는 것은 내가 할게"
"알았어."
다시 일이 시작되었다.
"근데 병훈아! 너무 배다야."
아무 반응이 없었다.
"병훈아, 너무 배다니까…."
두어 번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를 못했다. 엄연히 국어 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돼 있는데도 살아왔던 과정이 달라서 그런지 바로 알아듣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뭐라고?"
"응 너무 촘촘해. 조금 듬성듬성 놓았으면 좋겠어…."
"아, 이제 뭔 말인지 알겠다."
낱말 공부도 해가며 고구마 도입 초기 재배의 어려움, 어릴 적 한 해 15가마를 수확한 일, 물고구마와 밤고구마 등 품종 이야기 등 작업 중 대화주제는 고구마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줄기 색깔부터 다르다
작업 중 꿀맛 같은 휴식은 일 하는 대장 마음이다. 담배 한 모금에 물 한잔이었지만 휴식과정 중 작업 설명과 평가도 잠시 있을 수 있다.
"병훈아, 줄기와 잎이 모두 파란 것은 밤고구마야. 지금 어머니께서 두 가지를 갖고 오셨잖아."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방금 두 묶음은 온통 파란 것이고 다음 할 것은 줄기와 잎이 조금 붉으스름한 기운이 도는 호박고구마라는 것이 거든."
"그렇구나! 그리고 규환아 5월 1일날 동기모임 하기로 했거든?"
"안암동에서 할건가?"
"6시 신설동 개성집에서 하기로 했다나봐."
"알았어 가능하면 참석하지."
고구마 순을 붙이는 작업은 단순하다. 땅을 깊게 푹 찔러 파고 그 속에 줄기를 쏘옥 비스듬히 밀어 넣고 다독다독 해주고 위에 흙 한 줌으로 막아주면 끝이다. 이런 반복 활동 마치고 물을 붓고 고추모종을 몇 개 심고 나니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퇴비 듬뿍 넣었고 개간 첫 해이며 붉은 황토라 올 가을에는 고구마 깨나 먹게 생겼다. 구워 먹고 삶아먹고 튀겨먹고 날것으로 깎아 먹을 생각을 하니 하루 힘든 농사일도 기쁘기만 하다. 도시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행운까지 얻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린 고구마 순과 잎을 따다가 멸치 넣고 조림을 해 먹는 맛도 좋고 줄기만 벗겨 조림에 볶음 해 먹어도 여름 보내기에는 딱 좋다. 벌써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