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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주위는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 졌다. 의연하게 아무 표정 변화가 없는 이는 금와왕뿐이었다.

"믿지 않는다면 믿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너무나 태연한 금와왕의 말에 산하들은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즉시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대소는 금와왕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고구려가 지금 상승기로에 있지만 아직 우리 부여의 적수는 되지 못하옵니다. 군사를 일으켜 저들을 치면 사흘 안으로 결판 지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오히려 금와왕은 웃음까지 띄며 얘기했다.

"왜들이리 싸우지 못해 안달인가. 전쟁이 나면 백성은 피폐해지고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고래로부터 많은 왕들이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전쟁을 일으켜 오지 않았나. 난 그 대열에 끼기 싫네."

"그렇다면 앉아서 저들을 기다리자는 말씀입니까!"

대소는 어떻게든 금와왕을 설득해 보려 했지만 금와왕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뢰오! 고구려왕 주몽이 일만 군사를 이끌고 개사수로 진격해오고 있다 하옵니다!"

대소는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자칫하면 자신이 판 함정에 자신이 빠질 지경이었다.

"왕이 친히 왔다는데 직접 마중을 나가야 할 것 아닌가?"

금와왕의 말이 출전을 뜻하는 것이라 여긴 무장들은 저마다 출전을 자원하고 나섰다. 금와왕은 손을 저으며 그들을 만류했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경들은 신경 쓰지 마시오. 고구려왕은 내가 잘 알고 있소."

금와왕은 불과 수십 기의 병사들만 이끌고 왕성을 빠져나와 주몽이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는 개사수로 향했다. 주몽은 개사수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진격하지 않은 채 진을 치고 망설이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그리 좋지 않소. 폐하의 복수를 위해 병사를 동원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제 곧 추수가 있지 않소. 게다가 부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오."

마리의 염려에 모두들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고 주몽도 잠시 화를 가라앉히며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것이 아닌가 아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개사수 건너편에서 금와왕이 수 십 명만을 이끌고 배를 탄 채 주몽 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주몽은 점점 가까워 오는 금와왕의 모습을 보고선 놀라워하며 만약의 경우를 위해 활을 겨누고 있는 사수들에게 뒤로 물러설 것을 명했다.

"정말 오래간만이오. 그간 잘 지내셨소?"

금와왕의 인사에 주몽도 가볍게 응대했다.

"이젠 말먹이는 일도 없으니 잘 지낼 수밖에 없지 않소."

주몽의 가시 돋친 말에 금와왕은 침울해 하며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건 다 고구려왕의 그릇을 몰라본 내 잘못이오. 자, 어디 들어가서 얘기할 수는 없겠소?"

주몽의 막사로 자리를 옮긴 금와왕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이렇게 군사를 끌고 온 데에 대해 유감이지만 그 연유가 오해에서 비롯되는 사실을 알리려 뭇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직접 오게 되었소. 만약 마음에 차지 않거든 내 목을 베어들고 부여로 진격하고 그렇지 않다면 병사를 물리기 바라오. 어차피 내 뒤는 태자가 물려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참이오."

주몽은 금와왕의 당당하고도 과감한 태도에 깊은 연륜과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난 고구려왕의 어머니인 유화부인를 아껴왔고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해줬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해주지 못했소. 그로 인해 난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고 그 화를 오늘날에 이르러 당하는 것일지도 모르오."

금와왕이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란 주몽을 이른 말임에 틀림없었다. 주몽은 자신이 성급했음을 후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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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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