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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화일군(侵華日軍) 제731부대 죄증진열관(罪證陳列館)’ 표지석
‘침화일군(侵華日軍) 제731부대 죄증진열관(罪證陳列館)’ 표지석 ⓒ 박도
마루타 부대

하얼빈을 떠나면서 서 회장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지 대접도 못해서 점심 값으로 금 일봉을 드렸더니, 오히려 당신이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기어히 차 안으로 던지셨다.

동행 김 선생님은 "서명훈 씨나 김우종 씨 같은 분은 자긍심이 대단한 분"들이라고 했다. 하얼빈 시가지를 벗어나 다시 남쪽으로 달려서 ‘침화일군(侵華日軍) 제731부대 죄증진열관(罪證陳列館)’ - 그 소름끼치는 마루타 부대로 갔다.

진열관 로비에는 “前事不忘後事之師”(전사불망후사지사)라고 새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는 뜻인가 보다.

나는 1988년 첫 산문집 <비어 있는 자리>를 펴낼 때 마침 그 출판사가 <마루타>라는 소설을 펴내 당시 백만 부 이상 판매한 작품이라 사장으로부터 전질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작품 제1권을 읽다가 곧장 책장을 덮어버리고 다른 이에게 줘 버렸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로 꾸민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작품의 내용은 너무나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 작가 정현웅 씨가 상업주의에 빠져 황당하고 과장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나쁘더라도 그렇게 인간 이하의 짓을 할 수 있느냐고 과장이 심한 픽션이라고 책장을 덮었다.

이곳은 특별군사구역으로  접근하면 치안보호법으로 처벌한다는 경고문
이곳은 특별군사구역으로 접근하면 치안보호법으로 처벌한다는 경고문 ⓒ 박도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일군 제731부대의 잔해와 진열된 사진, 인체 실험용 기구, 여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해골더미를 보면서 <마루타>라는 소설은 황당한 얘기가 아닌 사실에 바탕 둔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한 마디로 ‘땅 위의 지옥’이었다. 여기 수용된 사람들은 사람이라 여기지 않고, ‘마루타’, 곧 통나무로 여겼다고 한다.

이 부대에서 하루에 생체 실험용으로 죽어간 사람이 많을 때는 20여 명으로, 1933년부터 일제 패망 때까지 적어도 3000여 명이 이곳에서 묵숨을 읽었다. 그때 행해졌던 인간 생체 실험에 대한 사진과 증언 기록들이 일부 전시된 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어느 실험 대상자는 발가벗겨져 동상 실험을 받아 근육은 다 파열되어 뼈만 남은 팔을 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개구리처럼 수술대에 놓여져 일제 군의관들이 해부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기둥에 묶여 단지 팬티만을 걸치고 그네들이 만든 세균탄의 폭발을 참아내야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비대하게 살찌워진 후, 모종의 병균에 감염돼 죽을 때까지 실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나는 진열관에서 그 당시의 여러 가지 기구와 모형 -산 사람을 해부할 때 쓰던 수술용 메스, 유리기구, 방독면, 세균포탄조각, 해골더미, 실험용 동물 우리- 들과 기록물을 보는 순간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게 싫어졌고 이 사실을 짐승들이 알까 두려웠다.

진열관에 게시된 세균전 자료
진열관에 게시된 세균전 자료 ⓒ 박도
이것은 인간의 짓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흉악한 사람을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하는데, 어디 짐승들도 같은 무리를 난도질하는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짐승 보기가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인간이 싫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웠다. 강대국은 약소민족을 이렇게 실험용 흰쥐처럼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당시 이 731부대 안에서는 3000명의 부대원들이 근무했다고 한다. 그들은 수만 마리의 쥐를 기르며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우(石井四郞)의 이름을 본뜬 이른바, 이시이식 배양기 4500개를 갖추고서 쥐의 피로 천문학적 숫자의 벼룩을 번식시키며 매일 이질 병균 300kg을 생산했다고 한다.

만일 일본이 망하지 않고 이 부대가 개발한 세균탄이 무기로 사용됐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때 일본군 수뇌부는 이 부대에서 만든 세균탄의 위력은 그 어떤 무기보다 성능이 뛰어나서 한꺼번에 1억의 인구도 죽일 수 있다고 자만했다고 한다.

인간 생체 실험을 재현한 모형
인간 생체 실험을 재현한 모형 ⓒ 박도
원래 이 부대는 일본 동경에 있었는데 동북 하얼빈으로 옮겨왔다. 그 이유는 산 사람을 실험용으로 쉽게 구해 쓰기 위해서였다. 산 사람의 몸에 세균 배양 실험하여 사람이 죽어 가는 모든 과정을 관찰하거나, 사람 몸에 전류를 흘려 관찰하거나, 밀폐된 유리 상자에 사람을 넣고 공기를 빼 질식시키는 실험 등, 차마 필설로 옮길 수 없는 별별 실험을 다하였다.

여기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주로 항일연군 포로들이었다. 이들은 때로는 죄 없는 백성, 몽고인, 러시아인, 네덜란드인 등 외국인들도 실험 대상으로 쓰는 데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항일연군에는 조선족도 다수 포함돼 있었으니 우리 조상도 희생되었음은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1945년 8월 소련 군대가 하얼빈으로 진격해 오자 이 부대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남아있던 실험 대상자 수백 명을 독살하여 불태워 재로 만들어 구덩이에 묻으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소련의 진공이 예상보다 빨라서 이들 살인마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그때까지 반쯤 불에 탄 시체를 구덩이로부터 꺼내서 뼈와 살을 골라서 살은 태워버리고 뼈는 분쇄기로 갈아버렸다.

제731부대 잔해인 보일러 굴뚝
제731부대 잔해인 보일러 굴뚝 ⓒ 박도
그런 후 731부대 주된 건물은 폭파시켰다. 하지만 완전히 증거를 없애지는 못하고 아직도 건물의 일부 잔해가 남아 있었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진열관 한쪽에는 항미원조 전쟁(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투하했다는 세균탄 탄피도 세워져 있었다.

그 새 오후 3시가 넘었다. 기사 왕빙과 두 분이 늦은 점심을 들기 위해 부근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731부대 잔해인 보일러 굴뚝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질퍽한 일대를 비를 쫄딱 맞으면서 헤매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투하했다는 세균탄 탄피
한국전쟁 때 미군이 투하했다는 세균탄 탄피 ⓒ 박도
마침내 한 공장 마당에서 간신히 앵글을 잡을 수 있었다. 촬영을 미치고 식당에 갔으나 음식이 느끼한 탓인지, 조금 전에 보았던 731부대 전시물이 떠오른 탓인지, 탕수육 두어 점과 배갈 한 잔만 마셨다.

하얼빈 답사를 마치고 창춘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내 마음은 어두웠다. 온 종일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이 싫었다. 사람이 두려웠다. 인간의 탐욕이 무섭다. 전쟁이 증오스럽다. 전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한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해야 할 사람은 이런 전쟁을 도발하는 제국주의자들이요, 극우 극좌의 전쟁 광란자들이다.

우리 일행은 창춘의 빈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짐을 꾸려 곧장 창춘 역으로 갔다. 밤 열차를 타고 연길(延吉) 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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