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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당시 6개월여동안의 진상규명 투쟁, 의문사진상위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89년 당시 6개월여동안의 진상규명 투쟁, 의문사진상위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철규 열사는 지난 89년 조선대학교 민주조선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그러던 중 89년 5월 3일 행적을 마지막으로 5월 10일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인을 익사로 단정 발표하고 검찰은 사체부검결과를 토대로 실족해 추락, 익사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에 대해 전국의 학생들과 사회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애국학생 고 이철규고문살인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를 발족, 사인 진상규명과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수많은 타살 의혹과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결국 89년 11월 4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되었다.

한편 2002년 10월 활동 기간이 종료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 불능'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철규열사추모사업회(회장 문병란)'는 "의문사진상위를 통해 정보기관의 자료제출 요구 및 관련자 소환조사를 시도했으나 관계기관의 비협조와 자료제출 거부 등을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판단아래 오는 5월 의문사진상위 할동 재개를 앞두고 있다"며 "진상규명 활동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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