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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한 마을에는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모여 서로 외로움을 나누고 계신다. 이미 많은 젊은이가 떠나버린 그곳엔 탄광과 함께 잊혀진 갈 곳없는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다.
서울이 고향이신 정춘자 할머니(76)는 두 살에 부모님을 여의며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남의 손을 전전하며 성장한 정 할머니는 십년 전 사별한 할아버지와 결혼하며 사북으로 들어오게 됐다.
일가 친척도 친 형제도 없다. 혹시 살아계신다 한들 정 할머니는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라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모가 원망스럽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사북으로 들어온 후 차멀미 때문에 단 한 번도 십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정 할머니는 소액의 국가 보조금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의 온기가 끊긴 두 개의 방이 황량하다. 홀로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정 할머니는 위염, 고혈압, 허리 디스크 등에 시달리며 여러 종류의 약을 드신다.
정 할머니의 방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가지런히 붙어 있다. 그간 자식을 대신해 이름 모를 사람이 달아준 그 꽃들을 쉬이 버리지 않고 소중히 모은 것이다. 며칠 전 경로당에서는 카네이션 백 송이를 주문해 할머니들에게 나눠드렸다. 그러나 예년보다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카네이션이 부족한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좋죠. 자식조차 못 해주는 어려운 걸 남이 대신 해주는 데 고맙죠. 그저 너무 고맙죠."
벽에 달린 카네이션을 보자 정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훔친다. 정 할머니에게는 현재 연락이 끊긴 몇 명의 자녀들이 있다. 그러나 정 할머니는 자녀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있어도 있는 게 아니고 기냥 없는 기죠. 명절이 되면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몰라요. 즈그들도 각자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깐... 뭐... 내가 빨리 죽어 버려야 하는긴데. 조용히 살다가 내 홀로 떠나면 그만인기라."
행여 자녀들에게 폐가 될까 염려하는지 정 할머니는 "내가 살아서 뭐래요? 빨리 죽어야 할긴데"라는 말씀만 연신 되풀이 하시며 끝내 자녀들에 관한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할머니는 엄연히 봉양자(자녀)가 있는 걸로 국가에 등록되어 있기에 국가의 기초 생활 보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에 살아 있는 자녀들로 인해 정 할머니는 국가에게 노인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뺐긴 것이다.
현재 정 할머니는 전기세와 물세를 지불할 만한 최저 생계비를(20만원)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그밖에 정 할머니는 후원 받은 기타 생필품과 옷, 도시락 등의 물품을 아끼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한다. 할머니는 세탁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기세를 아끼느라 일일이 손 빨래를 하고, 티브이와 전등을 절대 같이 켜놓치 않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머니의 집은 고장난 수도꼭지로 변한다. 천정을 비롯한 부엌 바닥 구석 곳곳에서 물이 새어나와 연탄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날이면 차갑게 식어버린 방에서 쑤신 몸을 달래며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천정에 신문을 붙이고 부엌에 난로를 설치해 놓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비가 올 때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젖은 이불 속을 헤매야 한다.
술 담배를 전혀 못해 친구들이 많지 않다는 정 할머니의 유일한 행복은 꽃을 친 자식처럼 키우는 일이다. 방문 앞 작은 마당엔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이 서로의 매력을 뽐내며 할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그 중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는 이몽령과 사랑에 빠진 춘향이의 고운 홍조를 빼닮았다.
"내래 문 열면 밤 낮으로 저것들 보며 항상 웃어요. 내 자식인기라. 이것들이 정말 아프지 않고 잘 자랐으면 좋겠는데. 특히 참꽃(진달래)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이것들이 아프면 나도 같이 아픈기라요."
빗방울 맺힌 진달래에 볼을 비비는 정 할머니가 모처럼 환히 웃으신다. 흙을 고르며 벌레를 잡아주고 꽃을 매만지는 할머니의 손길따라 꽃들이 미묘하게 반응한다. 며칠 전 할머니는 티브이에서 고아원에 있는 어린이들을 우연히 보았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참 슬퍼요. 어린 것들이 무신 죄가 있다고... 나도 불쌍하지만 애들도 참 불쌍해. 내가 뭐라도 보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어린 고아들을 말하는 정 할머니가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소"라며 무언가 힘이 되지 못함에 미안해 한다. 가끔 부자 집 할머니가 정 할머니에게 "나랏돈 좀먹는 버러지가 살아 뭣하노?"라며 심술을 부린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 할머니는 속으로 "살아 있는 내가 병신이제. 와 이리 안 죽노"라며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정 할머니는 '가난'을 몹시도 싫어했다. "내가 조금만 더 배우고 부자였다면 자식이 날 이리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며 다음 세상엔 꼭 부잣집에서 태어나 원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한다.
언제 감기가 걸렸는지 모른다. 한 번 걸린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정 할머니는 병원에서 준 물약을 먹을 때마다 계속 입이 마르고 잠이 온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이젠 독한 약에 위가 상해 약도 쉬이 먹을 수 없다. 밥이라도 꼬박꼬박 챙겨 드셔야 하는데 약에 취해 입맛을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부터 단 한 번도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 보지 못했다는 정 할머니는 그저 "잠자다가 자연스레 아프지 않게 편안히 가고 싶다"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 말씀하신다.
그나마 남아 있던 광산이 사라지고 나면 사북엔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버린 고즈넉한 도시에 자식에게 소외된 노인들이 소리 없이 찾아들고 있다.
기자의 방문 요청에 곱게 머리를 단장하며, 가장 이쁜 옷을 꺼내 입었다던 정춘자 할머니가 기자의 손을 꼭 쥐며 정성스레 당부한다.
"그리 먼 곳에서 바쁜데 오늘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리 고마워서 어찌 하믄 좋은지 몰라요. 점심은 드셨는겨? 다음에 꼭 다시 놀러 와요. 꼭 다시 와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