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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를 목욕시키다 보니 무릎 피부색이 검게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가 치매에 걸려 목욕을 내 손으로 씻기기 시작한 지 3년이 넘었건만 빨리 씻기는 것이 목적이었던 난 엄마의 몸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묵은 때가 아닌가 싶어 이태리 타올로 아무리 박박 밀어 대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자국이 무엇인지, 왜 그리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무릎을 꿇고 온 집안을 빡빡 문질러 대며 집안 대청소를 하고 난 후 내 무릎에 붉은 자국이 며칠 동안 계속된 후에야 아이 6명을 키우며 평생 무릎을 꿇고 집안 청소며 살림을 했을 엄마의 무릎이 그리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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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에는 눈 밑에서 볼의 광대뼈를 타고 세로로 5cm 정도의 깊은 흉터가 있다. 엄마가 33살쯤 못이 박힌 각목에 넘어졌는데, 당시 돈이 없어 병원에 한번 가서 주사 한번 맞고는 그냥 두어 그리 흉한 흉터로 남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흉터 역시 얼굴에 생긴 삶의 주름에 조금은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여자로서 그 젊고 예쁜 30대의 젊은 나이에, 얼굴에 그렇게 길고 깊은 흉터를 지니고 살아야 했을 엄마의 지난 수십년 세월에 아픔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월남에서 10여년을 계시는 동안 우리 6남매를 혼자 키우며, 3-40대를 보냈던 엄마, 이후 월남에서 병을 얻어 돌아오신 아버지의 병수발로 50대를 또 그렇게 혼자 보내야먄 했던 엄마는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당신만의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생 하지 않으시던 관광도 다니고, 화장과 옷으로 외양을 치장하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생기기까지 하더니만 엄마는 문득 얼굴의 흉을 수술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얼굴의 주름으로 얼굴의 흉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던 터라 나이와 휴유증을 감안해 자식들은 이를 주저하여 결국 수술은 진행되지 않게 되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자식과 남편의 뒷바라지에 자신의 평생의 한이었을지도 모를 얼굴의 그 큰 흉을 한번도 고치려는 마음도 가져보지 못한 채 70평생을 사신 엄마의 성형수술 의지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렸던 것이다.
60대라는 젊은 나이 때부터 엄마는 보청기를 끼기 시작하였는데, 일제시절 일본 순사에게 뺨을 맞으면서 그리 되었다 한다. 엄마가 잘 듣지 못하기 시작하며 맞은 엄마의 노년은 참으로 우울해져야만 했다. 먹고 사는 것이 늘 빠듯하여 귀를 수술한다거나 고치려고 맘을 먹는 것은 생각도 못한 채 가족과 친구들의 대화에 끼일 수 없는 소외감과 외로움은 엄마를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
머리에 쌀을 서너말씩이나 이고, 서울시내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걸어다니며 팔았다는 엄마의 젊은 시절은 이제 그녀에게 퇴행성 관절념, 골다공증 등이 훈장처럼 남아 그녀는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다리는 0자로 휘어져 있을 뿐 아니라 허리는 늘 구부정하게 굽어져 있다.
혼자서는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엄마가 움직일 때면 몸의 에너지가 모두 빠져버린 고장난 장난감의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하다.
허리 34에서 38까지를 넘나드는 엄마의 배는 늘 볼록하여 임신 8개월쯤 되어 보인다. 어린시절 우리가 어디서 나왔냐고 궁금해하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너희들 다 이 뱃속에서 나왔지"라며 자랑스레 엄마는 배를 두드리곤 하였다. 또 "엄마, 이 배 좀봐, 살찌면 건강에 안 좋아. 살 좀 빼야지"라는 말이라도 하면 "아니, 배가 이만큼도 안나오면 어디다 써, 다 이 뱃심으로 사는거야"라며 나의 건강론을 일축해 버리기도 하였다.
노인의 몸이란 젊은 시절 그네가 산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엄마의 삶 역시 지금 엄마의 몸이 말해주듯 그렇게 고난의 시간들을 살았으며, 그 고난의 삶을 산 대가로 또 고난의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6형제를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의 삶으로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나의 어머니, 그녀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녀의 고장난 몸은 바로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뿌리일 것이다.
17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 50kg 24인치라는 잘룩한 허리의 미스코리아라는 상업적 미인보다 147cm의 작은키에 몸무게 58kg 허리 34인치인의 병들고 고장난 몸을 가진 나의 엄마가 더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며 위풍당당한 엄마의 똥배에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