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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철학과 윤평중 교수가 5월 8일자 <조선일보>에 '친북 인사와 조폭 신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윤 교수는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우리 사회 공론장의 취약함을 자명하게 드러내었다고 지적했다.
원론적으로 보면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의 취지에 맞추어 국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맞겠으나, '대북 문제에 탄력적 입장을 가진' 인사를 '친북 좌익인사'로 규정짓는 일각의 행태는 공론장의 이성적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른바 '조폭 신문'에까지 연결된다. 윤 교수는 언론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몇몇 보수신문을 '조폭 신문'으로 칭하는 것 역시 우리 공론장의 언박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주 일가가 장악한 언론사는 족벌 언론이고, 과거의 잔재가 있고 지금도 왜곡보도를 가끔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나 이를 백해무익한 사회악인 '조폭'으로 비유한다는 것은 이성적 언론개혁을 되레 어렵게 하는 또다른 폭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윤 교수의 칼럼을 읽으면서 2001년도 4월호 <월간조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커버스토리로 <한겨레신문 종합분석 : 한겨레신문은 親北 성향 보도 및 좌익세력 지원으로 '로동신문 서울지국'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보고서를 인용한 바로 그 과월호였다.
2년도 더 지나간 이야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으나 해당 과월호에서 다룬 그 보고서도 1997년에 작성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필자가 그다지 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어차피 조폭신문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그맘때였다)
물론 당시 그 보고서의 진실성을 신뢰한다고 가정하면 '로동신문 서울지국'이라는 딱지는 월간조선이 아닌 안기부에서 붙인 것이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해당 보고서에 대한 어떠한 사실 확인도, 당사자(한겨레)의 반응에 대한 취재도 없이 그대로 보고서를 인용했다는 점에서 안기부가 붙인 '딱지'에 상당 부분 동의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보고서의 양이 상당했을텐데, 그 많은 문구 중 유독 '로동신문 서울지국'이라는 문구를 따내 잡지의 겉표지에 표기한 것을 순수하게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조폭'과 '로동신문' 중 어떠한 비유가 더 언론사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지에 대한 판단은 각각의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음모와 배신, 철저한 살육행위만이 판치는' 횡포를 보이는 조폭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론지로 볼 수 없고 안보 위주의 억압적인 국가주의를 주입시키는 관제 언론에 지나지 않는(박노자)' 로동신문이 한 언론사를 비유하는 소재로 보다 온건한 것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폭에 비하면 로동신문이 '언론'과 공통분모를 많이 보유한다는 점에서 '정론지'를 표방하는 언론사에게 훨씬 직접적인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조폭신문'이라는 표현에 일정의 폭력성이 내재해 있다는 윤 교수의 지적에 동감한다. 그러한 언어가 건강한 토론을 장려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공론장을 성숙시키는데 방해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공론장의 성숙을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윤 교수가, 권력과 결탁하여 정치권과 언론, 학계 내부의 소수 세력에 대해 냉전적 이념의 잣대를 무분별하게 들이대어 공론장의 질서를 훼손해 온 '원조'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하신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조폭신문'은 안되고, '로동신문 서울지국'은 괜찮은가?
윤 교수는 이른바 '공론장 만능론'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정확하고 격조높은 언어와 담론이 사용될 때 공론장이 성숙되며 공론장의 성숙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그러나 현재의 공론장이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한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 점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다면, 예외 없이 모든 업체에 대해 동일하게 법 적용을 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가 반영된 '신문고시 개정'을 일관되게 '언론탄압'으로 몰아붙이며 공론장을 훼손하는 언론의 공간을 빌어 '이성적 언론개혁' 운운하는 말씀 따위는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격조높은 언어와 담론'도 각 세력이 어느 정도 비슷한 사회적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사회적 소수세력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무조건 옹호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규정함에 있어 채택한 언어를 비판할 때는 집단간의 힘의 균형 정도와 함께 그 집단들이 존재하는 공론장의 왜곡이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인가라는 지점 정도는 섬세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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