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정년퇴임으로 교단을 떠난 이상선(66) 전 성남 은행초등학교 교장은 빠르면 내년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가 새로 만날 학생들은 탈북 청소년. 아직 법인 등록과 시설 구입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내년 3월부터 교문이 활짝 열릴 것으로 보이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늘푸른학교' 교장으로 다시 교단으로 설 예정이다.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는 남북문화통합연구원 대표인 정병호 한양대 교수가 "탈북청소년을 위한 학교를 맡아주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됐다. 이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꼭 해보고 싶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선 전 교장의 눈에 비친 탈북청소년은 대부분 함경도 출신으로 북한 사회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아이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국경을 넘고 중국을 헤매는 '꽃제비' 생활로 기초학력조차 제대로 다지지 못했다. 이때문에 '늘푸른 학교'는 탈북청소년의 심리치료와 기초학력 및 기술 습득에 중점을 두고 운영될 방침이다.
이상선 전 교장은 현직에 있을 때에도 자치적으로 1주일간 평화통일 교육을 실시했다. 북한인민학교와의 자매결연을 꿈꾸었는데 여의치 않아 일본 조총련계 학교와의 자매결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언론보도를 통해 자매결연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조총련 본부가 "그 교장이 프락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며 반대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현직 교장시절, 그의 통일교육은 "교사 초년시절에 뭣 모르고 했던 반공교육에 대한 속죄"였다. 하지만 그는 교육운동에 뛰어든 뒤 줄곧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교사시절 장학사가 찾아와 저보고 빨갱이라고, '내 자식은 당신같은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고 합디다. 그래도 빨갱이란 소리 들으니까 무섭대요. 지금 그 장학사는 교육장이 됐어요.
얼마전 TV 토론프로그램에 나간 다음에 후배들에게 전화가 왔습디다. '그럴 줄 몰랐다. 어떻게 빨갱이 편에 섰냐'고, '선배가 걱정된다'고 하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나는 네가 더 걱정된다. 세상은 이미 달라졌다'고..."
애국조회·교무회의 폐지, 소년신문 구독중단
"오죽 교장이 못났으면..." 비난도 받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찾아간 이상선 전 교장의 집은 조그만 아파트였다. 지은 지 10년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 전 교장은 강원도에서 사왔다는 고르쇠 수액과 몇 가지 음료수를 손수 내놓았다.
그는 최근 파장을 불러온 '서 교장 자살 사건'이 떠오른 듯 교장으로 재직했을 때의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학교에 있을 때도 직접 차를 타먹었어요. 나는 물론, 교장실 손님과 교사 티타임까지 직접 내가 차를 탔지요. 부임 첫날 행정실 여직원이 차를 내오면서 '제가 차 담당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이 차가 마지막입니다. 앞으로는 제가 차를 타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이상선 전 교장은 학교에서 애국조회도 없앴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나란히'를 해가며 줄을 세운 뒤에야 교장이 나가서 경례를 받고 훈화를 하는 조회는 일제시대의 잔재이며 권위주의 산물"이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대신 '발표조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노래, 웅변 등을 들었다.
'상명하달식 통제수단'이라고 교무회의를 없앤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교사들은 교실로 출퇴근했다. 필요한 경우에만 토론시간을 가졌다.
전국 최초로 소년신문 구독을 끊은 것도 유명하다. 학부모와 교사들을 모아 찬반토론을 벌였고 자신이 직접 '소년신문의 폐해'에 대해서 발제했다.
물론, 이러한 '파격'에 반발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애국조회를 안 하니까 사상이 이상한 '비애국적' 교장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고, "신문은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팽배했다고 한다.
"교장이 오죽 못났으면 직원에게 차대접도 못 받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조그만 개혁' 작업 와중에 큰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학부모나 교사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했기 때문이란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은 죄가 많은 교사
해직 동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상선 전 교장이 원래부터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87년 6월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유신헌법을 좋은 법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교사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평범한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퇴임사를 통해 당시의 잘못을 '참회'한 바 있다.
"용의검사해서 더럽다고 아이 기죽인 것, 운동장에서 조회하면서 아이들 줄 세운 것, 3·15부정선거 때 소극적이지만 참여한 것, 박 정권 때 유신헌법을 찬양한 교과서로 교육한 것, 동족을 적으로 보는 6·25 노래 가르친 것, 1등과 꼴찌를 발표한 것."
그가 '참회사'에서 열거한 '죄'다.
"내가 역사를 잘못 알고 살았다"고 자각한 뒤, 이상선 전 교장은 교육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승진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저히 교장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다고 한다.
"한 교장은 나를 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맨입으로는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어요. 돈 줄 생각도 없었고 줄 돈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승진을 포기하고 교육운동에 나섰다. 전교조의 전신이었던 경기교사협의회 회장을 맡았고 전교조 결성을 주도했다. 형사들이 학교에 드나들었고 아내의 건강이 악화됐지만, 그는 "해직된 동료들 생각하면 내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자신의 '투쟁담'을 줄였다. 가족 때문에 해직의 길을 택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이상선 교장은 44년 5개월동안 교직생활을 했다. 평교사 생활이 32년 5개월이었고 교감과 교장직을 각각 7년 6개월, 4년 6개월 동안 맡았다.
승진을 포기했던 교사가 어떻게 교장이 됐을까? 그는 시험을 치르면서 면접을 볼 때에도 붙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한다. 면접관 앞에서 한국의 교육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면 합격시켜준다"는 통보가 왔다.
"1주일 뒤에 발표하는데 3주를 버텼어요. 고민이 많았어요. 교감이 되면 전교조 조합원 자격이 없으니까. 그 때 이수호 선생(전 전교조 위원장)한테 '교감 갈까요'라고 물어봤는데, '교감으로 가더라도 변절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있는데 합격통지가 날아왔어요. 교장과 다른 교육청 관계자가 책임각서를 쓰고 대신 탈퇴서를 접수시켰더군요."
이수호 전 위원장의 말대로 그는 변절하지 않았다. 대신 '전교조 출신' 경력 때문에 교장 승진이 늦었고 동료 교장들로부터 소외됐다. 이 전 교장은 "교육위원에 출마했는데 철저히 배제당했다. 전교조 활동을 안했다면 지원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교장들이 도와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보성초 파문, 교장 불만 폭발된 현상
국가-교장 중심 교육 벗어나야"
이상선 전 교장은 지금도 일부 교장들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는 특히 최근 서 교장 자살 사건을 둘러싸고 교장들이 결집하는 분위기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는 "교장들이 교육을 크게 내다보지 않고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한다"며 "한심한 모습"이라고 일갈했다. 이 전 교장은 인터뷰 내내 "국가중심, 교장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가야한다"는 교육철학을 강조했다.
"보성초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해방 이후 노태우 정권까지 교직권력은 독재와 밀월관계를 맺었어요. 3.15 부정선거 때나 유신헌법 나올 때에도 교사들이 앞장서서 정당화했죠.
김영삼 정권 이후 교장들이 불만을 갖기 시작한 거예요. 학교운영위원회가 생겼고, '빨갱이 집단' 전교조가 합법화됐고, 교원정년이 3년 단축됐거든요. 한나라당에서 정년 연장을 약속했는데, 교총을 중심으로 드러내놓고 지지했던 이회창 후보까지 낙선되니까 상실감이 컸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쌓인 불만이 터진 거예요. 딱 울고싶은데 서교장 사건이 뺨 때려준 셈이죠."
그렇다고, 현재의 전교조가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상선 전 교장은 "교육부가 합법단체인 전교조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세게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전교조도 오해받지 않도록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다"고 충고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는 이 전 교장에게 "교단에서 물러나니까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퇴임하고 나서 지금까지 낮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늘푸른 학교 설립 준비가 바쁠뿐더러,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실현연대'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고 개혁국민정당의 고문도 하고 있다. 틈틈히 글도 쓰고 강의도 나간다고 한다.
퇴임사에서 밝힌 이상선 전 교장의 참회와 속죄는 교단을 떠난 지금도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교단을 꾸리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 | "교사·교감 입 막는 현행 승진제도 '감오백 장일천'은 교육계 오랜 '관행" | | | [이상선 교장이 바라본 교장 인사비리 의혹] | | | | 이상선 전 교장은 '교장선출보직제를 주장한 교장'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도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민주화 연대'의 상임위원장이다.
"지금같은 제도에서는 교감들이 할 말 제대로 못합니다. 교장과 교육청에서 점수 매기는데 교장 편 안 들면 좋게 보겠어요? 교감으로서는 불안감을 갖고 있죠. 평교사로 아이들만 가르치다 퇴직하면 다른 교사들이나 가족, 친지로부터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요. 사기가 저하되죠.
그래도 승진은 포기할 수 있죠. '교포 교사'라고 있어요. '교장을 포기한 교사'. 그런데 전보는 어떻게 합니까? 가고싶은 학교로 발령받으려면 바른 소리 못하는 거죠."
마침 이상선 전 교장이 '교장 노릇'을 한 4년여 동안 경기도에서는 두 번의 교장 인사비리 사건이 불거졌다.
2001년에는 조성윤 경기도 교육감의 처남 방모씨가 교감들에게 인사청탁을 받은 사건이 터졌고, 최근에는 조 전 교육감과 윤옥기 현 교육감이 교장 승진 점수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러나 지난해 이같은 의혹을 접한 감사원은 실무자를 경징계했을 뿐,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았고, 사건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
"구체적인 소문은 듣지 못했지만 (교장인사비리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죠. 수십년동안 이어진 '관행'입니다. '감오백장일천'이라는 말이 있어요. 교장이 되려면 1000만원, 교감이 되려면 5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거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는 분이 자신의 인맥에게 인사 특혜를 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예요. 점수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하도록 도와줘서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높이는 겁니다."
교직사회의 인맥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동문끼리, 동향끼리 만나면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승진욕구가 강한 사람은 그 인맥을 타고 들어간다. / 권박효원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