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3월 어느 바람 좋은 날 오후였다..
백화산에 올랐다가 거의 내려왔을 때였다.

중봉재 에움길을, 샘골 쪽에서 향교말 쪽으로 넘어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혼부부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양복에 코트를 입은 신랑이 길을 잘 아는 듯한 모습으로 앞서 걷고, 곱게 한복을 입은 신부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신랑의 손에는 술병이, 신부의 손에는 보자기로 싼 작은 쟁반 같은 것이 들려져 있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성장을 한 차림으로 어디 묘소를 다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앞을 먼저 가로질러 가고 싶지 않았다. 신부의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서 잠시 눈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발을 멈추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며 신부가 내 앞을 지날 때 한마디했다.

"참, 예쁘십니다."
그러자 신부가 생긋 웃으며 답례했다.
"고맙습니다."

그 순간 나는 신랑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음씨 좋게 생긴 얼굴에 함빡 피어난 그 웃음꽃은 그대로 행복 자체일 것 같았다.

그들은 두 가지로 고마운 마음일 터였다. 그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내가 잠시 걸음을 멈춘 것에서는 미안한 마음도 가질 터였다.

백화산 기슭을 내려오는 나는 참 기분이 좋았다.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에 찬탄을 했던 나의 그 인사가 괜히 내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내 인사에 생긋 웃으며 답례했던 신부의 모습, 얼굴이 온통 웃음으로 뒤덮이던 신랑의 모습도 오래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묵주를 잠시 가슴에 대며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지난 월초 한국소설가협회 행사 참석 관계로 서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모처럼 만에 다시 타보는 전동차 안은 서서 가는 승객들이 다소 많은 상태였다. 내 옆에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이 있었다. 아가씨는 좌석에 앉아 있었고 청년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다정한 소리로 대화를 하는데, 아가씨는 청년을 올려다보는 자세여서 아무래도 조금은 불편할 터였다. 가끔 상체를 숙이곤 하는 청년도 다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한 역에서 전동차가 멈추자 아가씨의 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내 앞자리였다. 누가 보더라도 당연히 내가 앉아야 할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냉큼 앉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가 싫었다. 나는 그대로 서서 옆 청년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청년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청년에게 눈으로 내 앞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씽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년은 내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씽긋 미소로 답례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가씨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아가씨에게도 씽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서로 손을 잡고 이제는 불편하지 않게 말을 주고받는 그 연인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지는 마음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이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빌었다.

엊그제도 백화산에서 두 연인을 보았다. 태을암의 샘에서 물을 떠 마시고 있는데 두 젊은 남녀가 다가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아가씨의 손에는 작은 패트병이 들려져 있었다.
"물을 좀 떠 드릴까요?"
하며 나는 샘물 속으로 두레박을 넣었다.

그들 두 연인은 바가지로 두레박의 물을 받으며 또렷한 소리로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 한 바가지를 서로 나누어 마시고 한 바가지는 패트병에 담았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조금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먼저 발을 떼었다.

내가 태을암 근처 너럭바위에서 허리운동을 한 다음 맨발로 바위 위를 거닐 때였다.

그들 두 연인이 근처 나무숲으로 들어가서 적당히 낮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펴놓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와 그들은 이미 구면이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끝내 모른 척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기대에 부응을 하듯 그들은 곧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저씨, 이 음식 좀 같이 드시지요."
청년의 음성은 의젓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난 당뇨 환자라서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많이들 드십시오."

그들과 합석은 하지 못하지만, 참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들의 그런 예의와 인사성으로 보아 그들이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의 쓰레기 처리도 잘할 것으로 믿어졌다.

잠시 후 나는 운동을 마치고 너럭바위를 먼저 떠나게 되었다. 근처 나무숲의 두 연인을 모른 척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두 분의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길이길이 행복하십시오."
내가 너럭바위를 내려가며 그런 말을 보내니, 그들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청년은 일어서서 내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친숙한 사람에게 하듯 번쩍 손을 들어 보였다.

절로 흐뭇해지는 마음이었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오늘의 한때를 조금 더 기쁘고 즐겁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더욱 흐뭇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 평범한 일상 속의 이런 소소한 기쁨들이 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즐겁고도 조금은 모호한 생각을 다시 하며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