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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무궁화야학교의 선생님들, 스승의 날 학생들이 준비한 꽃다발이 환하게 교무실을 밝히고 있다.
익산무궁화야학교의 선생님들, 스승의 날 학생들이 준비한 꽃다발이 환하게 교무실을 밝히고 있다. ⓒ 엄선주
'학교 가던 그 길을 눈물로 그리워하던 이들과 그 눈물을 닦아 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새로운 힘과 용기 있는 분들을 기다립니다.'

익산시 남중동 큰 길가.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 작은 플래카드가 달려있다. 그 아래로 자세히 보아야 찾을 법한 간판이 눈에 띈다. '무궁화 야학'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초라해 보이지만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배우고 싶어도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학교에 가는 것이 기쁨이었고 다행이었던 시절, 그러나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얼마 전만 해도 야학은 활성화되어 있어 배움의 기회를 찾기가 쉬웠지만 요즘은 주변에서 야학을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익산에는 30년이나 된 무궁화 야학이 있다. 이곳을 거쳐간 학생만도 1038명에 이른다. 지하의 퀴퀴한 기운을 느끼며, 교무실로 들어갔다. 비좁은 교무실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책상을 차지하고 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이 바로 스승의 날이다.

야학교사, 인생의 값진 경험

현재 무궁화 야학은 현재 5명의 선생님과 10명의 강사 선생님이 있으며, 학생은 20명이다. 선생님은 대부분 대학생이며, 학생은 40대 이후의 아주머니가 대부분이다.

야학 운영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교사의 모집이라고 한다.

이호승(31) 교무 선생님은 "야학 선생님의 경우 처음엔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꾸준히 봉사하는 분은 적다"며 "젊은 치기 하나로 야학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아무런 대가없이 봉사할 마음가짐이 되어있는 분들이라면 경험과 연령에 관계없이 야학교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초등과정인 개나리반의 강사 선생님도 마흔이 넘었다. 동생뻘, 조카뻘 되는 선생님들을 위해 간식을 챙기는 고마운 아줌마 선생님이다.

원광대 국사교육과 1학년에 재학중인 연동원(21) 선생님은 올 3월에 부임한 신입교사다. 어릴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배움의 기회를 잃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야학교사를 지원했다는 연동원씨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이곳 무궁화 야학에 젊음을 바치고 있다. 여자친구는 없지만 연동원씨는 그 누구보다 값진 젊은 시절을 이 곳에서 가꾸고 있었다.

20살 청년부터 64살 할머니까지 한 마음으로 공부

마침 중등과정반인 진달래반 수업이 끝났다. 반에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네 명 모여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분위기다.

모현동에 사는 김 모 학생(야학선생님들은 나이 많은 제자를 '학생분'이라고 부른다)은 큰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다. 모현동에서 이곳 남중동까지 남편이 태워다주고 데리러 온다고 한다. 아이들도 모두 어머니가 뒤늦게라도 공부하는 것에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평소 공부하고픈 열망이 있던 터에 인터넷을 통해 무궁화 야학과 인연을 맺었다는 김씨는 영어단어 하나씩 알아 가는 것이 제일 재밌다고 한다.

무궁화야학의 내부, 초라하지만 야학생들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공간이다.
무궁화야학의 내부, 초라하지만 야학생들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공간이다. ⓒ 엄선주
55살 먹은 이 모 학생은 손녀까지 있는 할머니다. 손녀는 '우리 할머니 학교 다닌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녀 동네 사람들이 이씨만 보면 '대단하다'며 칭찬한다고 쑥스러워한다.

이씨는 "전에는 영어사전을 만질 일도 없었는데 영어사전에서 단어를 찾을 줄 아는 것도 기쁘다"고 한다. 늦깎이로 공부하는 나이 많은 학생들은 모두 배우지 못해 설움을 받았던 적은 없으나, 스스로 만족할 수 없어서 야학을 찾았다고 했다. 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처음 한번이 어렵지만 일단 발만 들여놓으면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며 용기를 가질 것을 권유했다.

무궁화 야학의 제일 연장자는 64살의 할머니다. 멀리 오산에서 이곳까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매일 다니는데 수요일만 교회 가느라 결석을 하셔서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고등부까지 합격, 수능시험을 준비중인 Y아무개(21)씨는 나이 많은 야학생들과는 차이가 있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학교가 싫어서' 공부와 담을 쌓은 경우이다. 학교를 그만 두고 실컷 놀다가 '야학'을 알게 되어 공부했다는 Y씨는 "공부 뿐 아니라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억지로 공부할 때와는 달리 공부에 대한 열정은 두 배"라는 Y씨는 대학에 들어가면 야학선생님이 될 거라며 웃는다.

무궁화 야학의 문 항상 열려 있어

《무궁화 야학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배움 길로 이끄는 문입니다. 기회는 없습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무궁화야학에서는 수시로 교사와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초등과정의 개나리반, 중등과정의 진달래반, 고등과정의 솔반이 있으며, 국어·국사·수학·영어·독서·한문·사회·과학 등의 과목을 배운다. 특히 초등과정인 개나리반의 국어의 경우, 초등학교 교재인 말하기·듣기 책으로 직접 공부하며, 독서시간을 통해 글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힌다.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험과 연령 제한이 없으며 기본실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단,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교사임기는 1년이며 임기 후에도 퇴임교사로 봉사할 수 있다. 시에서 지원해주는 넉넉지 않은 보조금으로 아껴서 운영하며, 간간이 들어오는 후원금은 지하를 벗어나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저축하고 있다.

시설은 가난하나 훌륭한 선생님이 있는 학교, 전액 무료로 봉사하고 있는 학교, 연령제한이 없는 학교. 무궁화야학교의 또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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