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21일 오전 11시 노 대통령은 청와대를 찾아온 강신석 목사(5·18 기념재단 이사장), 정수만 유족회장 등 5·18 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를 맞았다.
이 자리는 추진위 측에서 지난 망월동 묘역 앞 시위 사태에 대해 도의적으로 사과하고 관련자 선처를 부탁하기 위해 요청한 것이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강 목사가 먼저 "지난번 기념식에서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고 누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강 목사는 "의도된 것이 없었는데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타나 마음이 아프다"면서 "언짢은 것이 있으며 푸시고…"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그런 것은 아니고…"라고 말하자, 강 목사는 다시 "젊은 학생들이 혈기도 있고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라며 선처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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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조금 길게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분이 상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 생각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각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 결과로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나무랄 줄 알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사회를 어떻게 꾸려가자는 이야기입니까. 감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 (5·18 묘역에) 진입할 때 피켓시위가 있다는 보고가 있어서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돌발사태를 대비해서 정복순경을 배치한다고 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길이 막힐지 모른다고 해서 무리하게 뚫지 말고 우리가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광주 5·18 기념식에서 제압하고 길을 뚫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데, 생각 밖으로 일이 전개됐어요."
여기까지 말한 노 대통령은 잠시 1∼2초간 쉰 후, 다시 "화가 나는 문제가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 근래 내가 부닥치는 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 문제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러다) 국가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듭니다. 전교조도 자기 주장을 가지고 국가 기능을 거부해 버리고…. 이러면 국가 의사결정 프로세스(과정)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상황으로 가면 대통령을 제대로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추진위측은 "시민단체와 사회단체들도 좀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며 거듭 도의적인 사과와 관련자 선처를 부탁했다. 추친위측의 간곡한 요청에 노 대통령은 배석한 유인태 정무수석에게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서 정무수석이 융통성 있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 | 노 대통령 이번 주말 잠시 휴식 | | | 2박 3일 거제시 저도 '청해대' 휴가...가족 동반 | | | |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주말 잠시 머리를 식히러 떠난다.
노 대통령은 23일(금)부터 25일(일)까지 2박3일간 경남 거제시 저도에 있는 청해대(靑海臺)로 휴가를 떠난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21일 저녁 밝혔다. 이번 휴가에는 가족들이 동행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6박7일간 미국에 다녀온 후 다음날 5·18 기념식 차 광주를 방문하는 등 최근 강행군을 해왔다. 또한 화물연대의 파업, 전교조의 연가투쟁 분위기 고조, 방미 굴욕외교 논란, 5·18 묘역 앞 시위 사태 등으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최근 정국으로 인해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윤 대변인은 "휴식을 취하고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구상도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전용 휴양지인 청남대가 충북에 반환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휴가처로 선택한 청해대는, 54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돼오다 72년 대통령별장으로 공식지정 됐으나 지난 93년 해제돼 현재는 해군 휴양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김종필 "대통령, 말을 조심해야" 조언
한편 2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노 대통령과 여야 대표 만찬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이날 오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있는데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조언했고 노 대통령은 "유념하겠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참석한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대통령이 미국 가서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나는 변했다기 보다는 정상화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정상을 계속 유지해달라"고 말했다.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약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고 윤태영 대변인은 전했다.
이로써 지난 4월 말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조성된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결 분위기는 다시 유화국면으로 바뀌었다. / 이병한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