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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영국 주주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국 최대 제약회사인 GSK(GlaxoSmithKline)의 주주총회 석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GSK의 소액주주들과 주주운동가들은 연대하여 CEO인 장 피에르 가니에(Jean Pierre Garnier)를 위해 상정된 퇴직금 안을 51%의 아슬아슬한 우위로 부결시킨 것이다. 회사는 당초 2200만 파운드(한화 약 429억)의 퇴직금을 가니에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며 주주총회의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난 주주 수백여 명은 “Fat Cat”(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비꼬는 표현임)을 상징하는 모형물을 들고 주주총회에 입장하여 영국 주주운동 역사상 최초로 회사가 상정한 임원 보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앞서 바클레이즈 은행(Barclays), 쉘(Shell), 힐튼호텔(Hilton Hotel) 등의 주주총회에서 이미 감지된 바 있었다. 런던 금융가의 기관 투자가들은 진작부터 사회 위화감을 조성하는 대기업들의 과다한 임원 보수안에 대해 제동을 걸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국보험연합회(Association of British Insurers)의 투자담당 책임자인 피터(Peter)씨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원 보수에 대해 아무 정책이 없는 회사들은 이번 사건을 중대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공개적으로 천명할 수 있는 매우 확실한 정책이 없다면 GSK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시민운동가들 역시 주주총회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세계 최대 유일의 에이즈 치료제 생산업체인 GSK에 대하여 치료제의 가격인하를 주장해왔던 것이다. 한 운동가는 퇴직금안과 GSK의 에이즈 치료제 가격정책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니에에게 지급될 그 돈이면 에이즈 환자 약 10만 명의 목숨을 살리고도 남는다. 우리는 GSK의 터무니없이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구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비인륜적인 약값 정책으로 이윤만을 추구하고 제 몫 챙기기에 바쁜 회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식으로든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단체는 캘퍼스(Calpers)를 위시한 주요 연금 투자가들에게 그 퇴직금 안에 대해 반대할 것을 맹렬히 종용해 왔다.”
이번 사건은 기업지배구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측면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이번 사건은 미국식 성과 위주의 임원 보수기준과 영국식 공동체 위주의 의사결정과정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영국 런던과 미국의 필라델피아를 동시에 거점으로 하고 있는 GSK에 있어서 이번 주주들의 반란은 미국식 가치를 영국식 기업문화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식의 경우는 주주가치의 극대화에 있어서 CEO의 능력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유능한 CEO의 영입을 위한 조건으로 대개 천문학적인 규모의 급여와 스톡옵션 등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반면 영국은 지난 80년대 대처 총리의 집권이후 미국식 성과보수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약품(Life Saving Product)의 가젹 정책은 기업 손익과 아울러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의 선상에서 검토하고 결정해야 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는 가난한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는 결국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해야 한다는 당위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CEO의 급여와 보상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우리의 문화와 실정에 맞는 객관적 원칙 없이 무비판적으로 미국적 가치와 방식을 최선의 것인 양 추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곱씹어 볼 일이다.
아울러 우리의 주주운동도 기업 투명성의 문제에서 기업윤리의 개념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담론의 수위를 더욱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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