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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24-25) 청도의 늠름한 소들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세대와 성별 국경을 뛰어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있습니다. 모처럼 서울특별시 동대문운동장 특설 링에는 유쾌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책에서만 봤던 소를 실제로 본 도시 아이들이 연신 질문을 쏟아 내구요. 이에 부모님들은 무언가 잊은 걸 되찾은 듯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시작합니다. 옛 추억을 찾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연인들의 낮은 속삭임이 그지없이 정겹습니다.

근데 왜 하필 흥을 돋구는 노래가 우리의 가락이 아닌 '팝송' 이었는지. 소싸움 경기 전후로 동대문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팝송이 우렁차게 흘러나올 때마다 씁쓸함과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통쾌한 승부를 쫓아 신명나는 해설자의 입담을 한 번 따라가 볼 까요.

ⓒ 김진석
"880키로의 백전노장 마꼬또! 850키로의 흙곰! 한일간의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마꼬또의 조련사가 흙곰의 조련사와 같은 쪽에 서 있는 데 이는 즉, 왼쪽 문화가 발달한 일본문화의 단면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주의할 점이니 알아두세요."

"현해탄을 건너 내가 한국에 올 때는 흙곰 너에게 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일본의 마꼬또가 흙곰에게 뿔걸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공격을 주도하는 소는 일반적으로 상대방 소보다 뿔이 더 아래에 있습니다."

"마꼬또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우리 흙곰 왼쪽으로 틀어 오른쪽으로 흘러버립니다."

"아자! 아자! 박수! 박수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밀리는 흙곰 자! 돌아 나옵니다. 으쌰! 우리 흙곰은 해 낼 수 있습니다!"

"계속 밀고 들어가는 마꼬또! 마꼬또도 대단하지요. 일본의 챔피언 마꼬또에게도 박수!"

"선제공격으로 계속 기선을 제압하는 마꼬또! 일전일퇴의 공방이 이어집니다. 우리의 흙곰 밀리면 끝장입니다. 돌아야 합니다. 흙곰 목을 틀어야 합니다. 마꼬또의 목을 비틀어라! 가자! 가자! 흙곰아!"

"자 우리의 흙곰이 찬스를 보냅니다. 드디어 마꼬또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이판사판 육판입니다! 입에 거품 물었던 소치고 이긴 소 본적이 없습니다!"

"서울시 만세! 통쾌, 상쾌, 명쾌! 우리의 흙곰이 악전고투 끝에 이겼습니다. 양국의 명예를 건 마꼬또와 흙곰에게 박수!"

ⓒ 김진석
"다음은 청도의 자랑 꺽쇠(뿔이 아래에 있고 다리 위에 검은 털이 있는 소)와 도끼입니다!"

"중량 1톤을 자랑하는 꺽쇠의 저 날카로운 뿔을 보십시오! 범의 시선을 가진 저 도끼를 봐주세요!"

"감히 우위를 점칠 수 없는 두 마리의 맹우. 밀고 들어가는 도끼!"

"농사 지으며 죽도록 고생만 했던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싸움판으로 나왔소!"

"농업의 기계화에 밀려 우리 조상처럼 살기 싫어 싸움소가 되었소!"

"저 육중한 네 개의 다리를 보라! 그들의 몸값은 1억을 넘나듭니다. 1년 사육비가 500-600만원, 1년에 개 2마리, 경기 1개월 전에는 십전대보탕을 먹습니다!"

"단 한푼의 시상금 없이 우리의 두 소가 서울특별시 시민을 위해 청도에서 올라왔습니다!"

"투우사가 투우의 심장을 찔러 죽이는 스페인의 투우는 이미 승부가 결정나 있지요. 사람과 소가 싸우는 것이 아닌 소와 소가 겨루는 감동적인 진땀 승부입니다! 소싸움은 속임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지고 이기며 정정당당합니다."

"우리의 소들은 주인과 함께 고된 훈련을 합니다. 산악 달리기, 타이어 끌기, 모래에서 뛰기 등 각종 체력 단련과 기술연마(밀치기, 머리치기, 목치기, 옆치기, 들치기, 뿔걸이 등)를 통해 싸움소로 태어납니다."

"막상막하 혈전입니다!"

"막 밀어 부치는 도끼입니다! 이런 우리의 도끼가 똥을 싸는군요."

"똥싸는 소치고 이기는 소 본 적 없습니다!"

"꺾쇠, 우리의 꺾쇠가 이겼습니다! 박수! 박수 안치는 사람은 건강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전통은 '씨앗을 심는 것' 이라고 합니다. 도심 한 가운데서 들어본 황소의 콧 바람 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으며 소싸움이 건강한 전통으로 성장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언제부턴가 '정직' 이 '바보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아니꼽고 치사한 세상. 계산 없는 순수한 소싸움을 우리네 세상살이가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합니다. 고요하게 응시하는 깊은 소의 눈을 당당히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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