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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사람들의 환호가 그칠 줄을 모른다. 신이 난 바텐더의 몸동작이 더욱 화려해진다. 무슨 일인가 싶은지 지나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시킨다. 바텐더 경력 5년차 한상인씨(29)의 칵테일쇼에 사람들은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 그도 6년 전 칵테일쇼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환호했었다.

98년 회사에 다니고 있던 그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바텐더의 모습을 봤다. 곧장 회사를 그만두고 호텔에서 서빙을 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칵테일 바의 지점장이 됐다.

ⓒ 김진석
당연히 다른 바텐더보다 할 일이 곱배기다. 가게 인테리어부터 다양한 메뉴의 개발, 직원 관리까지 그에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

칵테일 바는 오후 4시에 문을 열어 다음날 새벽 2시에 닫는다. 하지만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가게를 정리하고 직원들과 회의도 하며, 실내장식도 다시 한다.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게 손님을 맞이하려면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게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 김진석
매일 술과 같이 하는 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문화는 아쉬움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를 못해요. 특히 권하는 것. 자기가 마시고 다른 사람한테 막무가내로 권하는 거요. 술은 기분 좋게 먹어야죠.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이마시는 거예요.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착해야 돼요."

ⓒ 김진석
그의 양팔은 모두 상처자국으로 가득하다. 수없이 많은 병을 돌리며 난 상처다. 바텐더 하면 흔히 현란한 몸동작으로 병을 돌리는 모습을 연상한다. 아직 나이 어린 사람들 가운데는 병을 멋지게 돌리고 싶어 바텐더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도 많다.

"바텐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즐길 수 있는 마음이에요. 병만 잘 돌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라고 말하는 한씨는 손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곧 바텐더의 자부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을 돌리는 화려한 기교는 그 다음 일이라고 한씨는 강조했다.

"바텐더가 겉에서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되거든요. 손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상식도 풍부해야 돼요. 그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예를 들면 마술이나 풍선아트 같은 것이죠."

ⓒ 김진석
그는 '사랑의 전령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 연인이 다툰 후 가게를 찾았다.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에게 그가 마술을 보여주며 마음을 풀어줬다. 후에 그 연인은 200일, 300일 때도 그를 찾아와 번번히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고.

한씨의 특별한 손님 접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종종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손님들이 찾아와 속상한 이야기를 할 때면 진심으로 들어주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가벼운 조언을 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며 분위기를 돋군다. 이렇게 손님들과 이런 저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골도 여럿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따금씩 술 취한 손님이 그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며 모욕감을 주는 손님에게는 못 견딜 만큼 화가 난다고 한씨는 털어놓았다. 그런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 마음을 다스리는 것뿐이다.

ⓒ 김진석
"지금 밤도 깊었고 기분도 약간 다운되어 있을 텐데요.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고 이 곡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그가 트럼펫을 꺼내 들었다. 비틀스의 'yesterday'를 연주하는 그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연주를 마친 그가 쑥스런 미소를 짓는다.

여러 가지 재주가 많은 한씨는 그 덕에 회사에서도 이벤트 팀에 소속되어 공연을 하러 다닌다. 며칠 전에도 지방에 내려가 공연을 하고 돌아온 한씨에게 사생활이란 거의 없다. 그것이 그가 이 일을 하며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다.

ⓒ 김진석
"여긴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에요. 억압없이 자신의 능력을 무궁무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일터지요. 출근해서 사무실에 갑갑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뛰는 게 더 좋아요"라는 한씨의 모습에서 젊은 힘이 느껴진다.

"바텐더에게 나이 제한은 없지만 대부분 나이가 들면 관리직이나 내근으로 돌아가거든요. 하지만 전 언제까지나 현장에 있고 싶어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너무 좋거든요. 나이를 먹더라도 젊게 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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