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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심> 포스터
<평심> 포스터 ⓒ 공연기획 이다
고급 관객이라 볼 수 있는 연극 평론가들이 한 해 공연된 작품 중 3편을 뽑아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발표한다. 작년에는 극단 차이무의 <거기>, 극단 풍경의 창단 작품 <하녀들>, 한일 합작극 <강 건너 저 편에>가 선정되었다. 이 중 <하녀들>은 여성 연출가 박정희의 존재를 연극계에 알린 작품이었다. 박정희씨는 이 작품으로 잘 훈련된 배우들과 치밀한 연출력으로 마치 움직이는 그림과 같은 무대를 창조했다는 찬사를 들었다.

6월 4일부터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극단 풍경의 두번째 작품 <평심>(平心)은 <하녀들>에 이은 박정희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관객들에게 독특함과 새로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평심>은 박상륭의 소설집 <평심> 중 <로이가 산 한 삶>, <왈튼 부인이 죽은 한 죽음>, <미스 앤더슨이 날려 보낸 한 깨달음>을 모티프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빼어난 문체와 심오한 사유를 담고 있는 소설가 박상륭과 독창적인 해석력과 표현력으로 주목받는 신인 연출가 박정희가 함께 한 <평심>은 올해,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주목해 볼 만하다.

지난 5월 27일, 공연 연습이 한창인 중곡동 극단 풍경 연습실에서 박정희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 극단 풍경(風磬)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작년에 만들어졌다. 작년에 공연한 <하녀들>이 창단 공연이었다.

- 첫 작품 <하녀들>이 '2002년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의 베스트 3'에 뽑히는 성과를 냈다. 축하한다. 극단 풍경에 대해 소개 해달라.
"바람에 힌트를 얻어서 풍경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좋아하는 외국 연출가 피터 브룩(Peter Brook)이 '연극은 바람이 새긴 문자'라고 했다. 폴 발레리는 시에서 '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겠다'라고 했다. 그것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것이 풍경이다. 바람은 일상적이고 지루한 것을 환기시켜준다. 그래서 풍경으로 정했다.

어떤 분들은 <하녀들>을 보고 '신체 훈련이 되어 있는 극단', '신체 언어를 찾아가는 극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맞다. 우리 극단이 지향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이다. 연극에서 언어적인 면이 문학적인 부분을 찾아간다면, 신체적인 면은 연극성을 담당한다. 넌버벌(Non-verbal) , 이미지가 아니라 이것을 통합 할 수 있는 양식을 추구하고 그 다음에 텍스트들의 시성(詩性)을 찾아내서 연극에서 언어가 잃고 있는 함축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심>의 박정희 연출
<평심>의 박정희 연출 ⓒ 한상언
- 연습과정을 지켜보았다. 공연 형태가 극적 구조가 강조된 드라마적인 연극과는 다르다. 연극을 접근하는 방식과 관점이 다른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극적 구조가 강조되어 있는 작품을 많이 올린다. 그렇다고 그와 반대로 '극적 구조를 버리고 이미지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따라 다르다. 일단 이야기 구조에 있어 드라마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게 필요하면 그 구조를 찾아간다. 우리 나라 연극계가 이야기 중심의 연극을 하니까 저 같은 경우는 양식적으로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이야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모티프를 차용해서 각색 할 적에 인문학적인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이야기가 중심이 된 연극을 한다 치더라도 대사에서 오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고, 구태의연하게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 현재 연습중인 작품 제목이 <평심>(平心)이다. 자주 쓰는 말은 아니다.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봤다. '오더너리 하트(ordinary heart)인가? 불교에서 일상의 마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평심을 찾는다. 인생에 있어 욕망이나 좌절이 몰려올때 항상 마음을 평정함으로써 그것을 흘려 보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평심이라고 한다.

이번에 박상륭 선생님의 작품을 과격하게 모티프만 차용해서 거의 재창조를 했다. 박상륭 선생님의 소설 <평심>은 싯다르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연 초반에 꼬마애가 읽는 것이 <평심>의 한 부분이다.

박상륭 선생님의 <평심> 개념은 파도가 몰아치는 방파제를 생각하면 된다. 방파제는 무정(無情)이다. 끊임없는 파도는 유정(有情)이다. 그림상으로 그 두 개가 같이 있는 것. 방파제가 있는 바다의 모습이 평심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부분과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그 두 개 자체의 상호 모순되는 것이 바로 평심이라는 것이다. 방파제가 없으면 파도에 의해 쓸려 다니고 방파제가 있어도 아무런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평심이 아니다."

- 박상륭 선생의 소설을 무대화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박상륭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천재이다. 동양적인 것만 아니라 동, 서양의 종교에서 추구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말씀하신다. 정신적인 스케일이 크다.

[미니 인터뷰] 음악/드라마투르그 최정우


- 음향과 음악이 독특하다. 음을 즉석에서 만들기도 하는데.

"일단 의도한 바는 아니다. 영화음악도 그렇고 연극 음악도 그렇겠지만 보통 어떤 개념을 가져와서 적재적소에 쓰게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드라마투트그이기도 하니까 기회가 좋아서 배우들의 리딩때부터 참여를 했다. 그렇게 배우들과 연습과정을 함께 하면서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 그때 이런 것이 어울리겠다 해서 만들다 보니 음악이 라이브한 형식이 되어서 단순히 녹음으로 하기엔 조금 어렵게 됐다. 그러다보니 음악이 곡으로 독립되어 있기 보다 섞여들어 간다고 할까. 아니면 독립된 음악의 개념이 아니라 대사들과 어울리는 소리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형성이 되었다."
/ 한상언
연출은 사실 허망한 직업이다. 왜냐하면 공연을 올려놓고 보면 사실 연출 것은 없다. 연출이 제일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될게 작업 과정에선 컨셉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모니, 조화를 생각해야 된다. 그러니 공연을 올려놓고 보면 연출은 없다. 과연 여기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봤다.

우리 나라에 박상륭 선생님 같은 분이 있고 그 분의 정신적인 스케일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김승옥 선생님의 <무진기행>같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왜냐하면 문학은 민족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사고가 언어로 지속되는 것이니까.

또 소개라는 측면에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알아서 그것에 맞는 작품으로 그를 알리고 싶다. 윤이상 선생님은 우리 나라에 이데올로기 때문에 못 오시고 돌아가셨다.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대중들에게 정신적 고향이 될 수 있는 그런 분들의 작품을 대중과 만나게 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

박상륭 선생님은 <남도>, <열명길> 그런 것으로 만났다. 너무 본질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셨다. 선생님 문학을 '대속(代贖)의 문학'이라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선생님 작품 <죽음의 한 연구>는 계속 성교를 하고 죽이고, 성교를 하고 죽이는 그런 엽기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선생님이 그러한 유정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마치 무당처럼 쓰면서 해방시켜준다. 그래서 '대속의 문학'이라고 한다. 또한 문체가 굉장히 세련됐다. 맨 처음 접하기는 힘든데 읽다 보면 정말 한국말의 그 세련됨에 놀라게 된다."

<평심>의 연습 장면
<평심>의 연습 장면 ⓒ 한상언
- 이번에 공연하는 작품 <평심>을 소개해 달라.
"소설집 <평심>에 나와있는 <로이가 산 한 삶>, <왈튼 부인이 죽은 한 죽음>, <미스 앤더슨이 날려 보낸 한 깨달음> 이 세 작품의 세 인물이 한 공간에 와 있다. 제가 주제로 잡은 것은 환면(幻面)이다. 박상륭 선생님이 TV를 환면이라고 했다. 환면은 실체가 투영되는 것이다. 저와 각색자 또 한사람은 인생 자체를 꿈이라고 봤다. 극중에 장자의 꿈 이야기도 나오는데, 살고 있는 것들이 허상이라는 것이다. 허상인데 모든 사람들은 나라는 것에 집착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들 인식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지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그려낸 것이다. 무정(無情), 공(空), 사(死), 업(業) 그 부분을 다 지나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의 보이지 않는 현실들은 거쳐간다."

- 세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무대에 올려놓았다. 처음 장면은 조명을 이용 영화처럼 사용했다. 영화적인 수법을 고려한 것인가?
"공간에 제한이 있으니까 연극하는 사람들이 영화적인 수법을 많이 접하고 융합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중심축이니까 하나 하나씩 보여주자고 한 거지 영화적 수법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지는 몰라도."

- 무용과 비슷한 움직임이 들어가 있다.
"그 움직임은 내면의 움직임이다. 댄서블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와 몸짓이 되는 무브먼트이다. 춤도 아니고 내면의 어떤 심상의 회화 그것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 구어체보다는 문어체가 많은데, 아마 문학작품이 대사로 많이 사용된 점도 한가지 이유일텐데?
"그런 점도 물론 있다. 패러디는 아니다. 일단 한국말이 요새 컴퓨터 언어며 그런 것들로 오염되어 있다. 독일에서 돌아와서 소설책을 읽어도 다 번역체라는 것을 느꼈다. 일단 한국말이 위상을 더 갖아야 되지 않나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지금 이 작품을 난해하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대사면 대사, 장면이면 장면으로 접했으면 한다. 제가 관객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집에 혼자 있거나 거울을 혼자 보고 있을 때 발견하는 모습들, 예를 들면 술 많이 먹고 취해서 자고 일어났을 때 자기모습을 이 무대에서 발견하고 잠시 존재의 심연에 머물러서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자신의 영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성찰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존재에 대한 명상' 첫 번째 작품이다."

- '존재에 대한 명상'은 계속 나올 것인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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