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에게 이 싯귀절은 늘 바다에 대한 환상이었다. 기껏해야 볼 수 있는 저수지나 강가에서 가슴속에 파도가 일었던 나. 이처럼 바다가 그리움으로 변해버릴 줄 알았더라면 아마 바다를 동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망망대해에 한가로이 배가 떠가고, 뭍에서 꿈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 한 대가 이제 막 바퀴를 내린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비행기만 보면 눈물을 흘렸던 시절을 생각하니 오늘따라 고향이 그립다.
그러나 이 망망대해 한켠엔 아직도 비상을 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용두암의 모습이 오늘따라 애처롭다.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일까? 마치 바위의 모습은 물처럼 까닥 않는 님에 대한 절규처럼 느껴진다.
제주시 한천 하류의 용연에서 서쪽으로 200미터쯤을 가면 서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른다. 용궁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르다 굳어진 바위의 모양. 용의 머리를 닮아서 용두암이라 부르는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용의 머리 형상을 그대로 닮은 용두암은 200만년 전에 용암이 분출하다 굳어진 바위로, 높이가 10여 미터. 길이가 30m로 그 모양이나 크기로 보아 아주 드문 형상기암이다.
사람들은 파도가 많이 치는 날 그 형상을 보면 그 바위가 울부짖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석양이 질 때, 용두암을 보면 바다 속에 잠긴 몸의 길이가 30m쯤 되어, 마치 상상 속에서 용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처럼 용두암은 시간과 날씨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또 다른 전설을 낳고 있다.
용두암에 대한 전설도 가지각색이다. 용왕의 사자가 한라산에 불로장생의 약초를 캐러 왔다가 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그 시체가 물에 잠기다 머리만 물에 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정말이지 만조시간이 되면 용머리는 바닷물에 잠겨 머리만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용이 승천할 때 한라산 산신령이 옥구슬을 입에 물고 달아나려 하자 산신령이 분노해서 쏜 화살아 맞아 바다로 떨어졌는데, 몸체만 바다 속에서 잠기고 머리는 울부짖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이 사실인 듯, 용두암의 성난 입에는 아직 옥구슬을 삼키지 못하고 겁에 질려 애타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기도 하다.
용두암 주변에는 멀리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휴식처가 있고, 금방 바다에서 빠져 나와 몸에 물기가 마르지 않은 듯한 인어 상이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용두암은 소도시에 살면서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못하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삭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쉬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뭍에서 달려온 관광객들이 제주공항을 빠져 나와 첫 여정을 풀 수 있는 곳, 벌써 이 용두암 바닷가엔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성질 급한 관광객들은 바다까지 내려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자갈의 느낌을 맛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물이 빠져나간 틈을 이용해 보말과 소라를 찾아 바다 속으로 성급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아마 이들에게도 바다는 환상과 동경의 바다였으리.
용두암은 지질학적으로 용암이 굳어진 곳이며, 제주 특산인 '섬갯분취'와 희귀식물인 '낚시 들풀' 등이 자생하고 있어 소중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이에 강태공들은 만조시간과 파도가 치는 날이면 짜릿한 손맛을 느끼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용두암 주변에 있는 바위와 자갈에 걸터앉아 해녀들이 금방 바다에서 건져 올린 소라며 전복. 해삼을 안주 삼아 바다를 술잔에 담아 삼키는 그 맛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전설을 삼키는 하얀 포말을 찾아서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떠난 님이 그리워 그리움을 토해 내고 싶진 않으세요?
지금 용두암으로 오세요. 지금 용두암은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그리고 용의 괴성으로 가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