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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가 BMG라는 회사에서 <백병동 작품집>이라는 이름으로 두장 짜리 CD를 냈다. 그런데 우리나라 창작곡 작곡 목록이 수록된 책을 뒤적이다가 서울대 서양음악 연구소에서 자체 제작한 백병동 음악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대 서양 음악 연구소의 민은기 교수와의 전화 끝에 연주 현장의 기록(1974~2000) 서울대학교 서양음악 연구소 현대 작곡가 시리즈1 백병동이라는 4장 짜리 CD를 손에 넣게 되었다. 고맙게도 민 교수는 <오늘을 노래하는 민요>라는 서울대 자체의 연구 음악회 실황을 담은 CD까지 덤으로 보내 주었다.
2001년 3월 FM 국악방송이 개국했을 때의 일이다. 인터넷으로 국악방송을 듣다보니 라디오 청취가 가능한 지역인 서울 경기 지방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청취소감을 보내주는 천 명을 골라 개국기념 음반과 테이프를 나눠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난 국악방송에 긴 메일을 보냈다. 방송 못 듣는 것도 억울한데 왜 아래지방 사람들에게는 음반마저 주지 않느냐? 너무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국악방송 안진홍 기술국장께서 답장과 더불어 <행복한 하루>라는 3장 짜리 CD를 보내 주셨다. 그 CD엔 마음의 안식을 얻기엔 안성맞춤인 평화로운 음악으로 가득해 있었다.
요 몇 년 사이 시립 국악관현악단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관현악단들은 자신들의 연주를 자체 제작하여 나눠 갖기도 한다. 물론 서울 시립 국악관현악단이나 부산 시립 국악관현악단처럼 시중에 출시되어 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증으로 처리되고 만다.
많은 시립 국악 관현악단 중에서도 안산 시립 국악관현악단의 이상균 단장은 참으로 부지런한 분이시다. 연주 활동도 열심히 하지만 외부에 안산 시립 국악 관현악단의 존재를 알리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분과는 몇 번의 메일이 오간 끝에 <민족 음악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두 장 짜리 CD를 얻은 일도 있다.
음반을 구하는데 있어 가장 난공불락의 요새는 국립 문화재 연구소가 으뜸이다. 거기서는 기록할 가치가 있는 무형문화재는 죄다 기록 보관해둔다. 판소리도 마찬가지다. 무형 문화재 중 여생이 얼마 안 남은 분 등을 대상으로 녹음을 진행한다. 재작년엔 중요 무형문화재 5호 한승호님의 <적벽가>녹음이 이뤄졌다는 걸 알고 구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공공 도서관 마다 배포했으니 도서관에 가서 들으면 된다는 무성의한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전 시내 공공 도서관마다 쫓아다니면서 음반의 존재 유무를 문의해 봤지만 사서 담당자들 중에서 그 음반의 존재를 아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한 술 더 떠 문화재 연구소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사람조차도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 정말이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민족문화에 대한 홀대가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실한 반증이었다. 몇 번이나 도서관들을 찾아가 항의한 끝에 최근 대전 시립 도서관의 창고에서 제멋대로 방기돼 있는 음반들을 찾아냈다.
요즘 그것을 빌려다가 CD로 굽고 있는 중이다. 문화재 연구소에서 나온 <김명환의 판소리 고법>이라는 4장 짜리 CD를 굽는 마음이 너무나 흡족해서 점심을 건너뛰고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더라는 말씀이다.
내 자신을 엄격히 평가한다면 나는 결코 광적인 수집가는 아니다. 다만 좋은 음악을 찾아 헤매었을 뿐이다. 요즘에는 국악 음반을 거의 구입하지 않는다. 요새 사람들의 연주 기량을 그리 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소리 창자라는 사람들은 닦다만 기량을 가지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창극조로 덜 떨어진 소리를 하고 7살 짜리 어린아이는 국악 신동이라는 이름으로 몇 시간 동안 완창을 한다.
심하게 말해서 '국악으로써 국악을 죽이는'것이다. 만일 그 아이가 정말 국악 신동이라면 소리가 채 익기도 전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소리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는 게 세상 이치다.
삶은 깊이가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함을 감수해야할 때가 있다. 이제 사물놀이도 거의 한계에 와 있는 듯 하다. 새로운 가락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인 채로 몇몇 가락만 우려먹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청중의 인기에만 영합해서 빠른 휘모리 장단만을 즐겨 연주하는 관행에 젖어 있기까지 하다. '굿거리 장단에서 춤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음악은 '느림'에 그 생명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느림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가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이제 국악 음반은 어느 정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내 관심은 차츰 월드뮤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음악이란 게 결국 정신적 활동의 산물이라면 억압에 대하여 항거했던 가수나 작곡가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토르 하라, 메르세데스 소사, 비올레타 파라등 남 아메리카나 그리스의 테오도라키스 등 독재에 항거했던 이들의 음반이 내 수집 목록에 등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빠른 음반 수집을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인터넷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