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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덕씨 -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유공자들과 함께 오는 6일 현충일, 침묵시위를 열 예정이다.
박신덕씨 -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유공자들과 함께 오는 6일 현충일, 침묵시위를 열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개인택시 신규면허 대기자인 국가유공자 2세 박신덕(49)씨 등 택시기사 15명은 2일 "대구시가 지난 98년부터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개인택시 면허를 '자격제'에서 '순위제'로 전환하면서 일반 선행자와 함께 묶어 국가유공자 가족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면허를 발급 받는 처지가 되고 있다"면서, 오는 6일 오전 9시부터 앞산 충혼탑에서 국가유공자 유족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침묵시위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시는 지난 98년까지 일정 정도 자격요건만 충족시키면 개인택시 신규면허를 발급하는 '자격제'를 취해왔다. 하지만 개인택시의 수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으로 98년 신규면허 발급부터는 '순위제'로 일정 자격요건을 따더라도 무사고 운전경력을 잣대로 순위를 매겨 신규면허를 발급해왔다.

이와함께 지난 2001년 규정의 불합리한 조항을 개정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구광역시 개인택시 운송사업면허사무 취급규정'을 일부 개정했다. 이 당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국가유공자 유족들에 대한 면허 규정이 바뀐 것이다.

대구시, 국가유공자와 선행자 묶어 '순위제'로...경력 기준도 상향 조정

취급규정 개정에 따라 대구시는 같은 해 개인택시운송사업 신규면허자격의 경력 우선 기준을 제시하면서 국가유공자들에게 98년 기준인 택시운행 경력 6년을 8년으로, 시내버스 경력 6년 6월을 8년 6월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등 조건을 강화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8년부터 대구시는 국가유공자와 선행자(상훈법에 의한 훈·포장을 받은 자, 운전경력기관 중 대통령·국무총리·경찰청장의 표창을 받은 자)를 한데 묶어 순위제를 적용해 경력기간이 다소 열세인 유공자 가족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이어 2001년부터는 그나마 있던 '표창자는 수상 후 1년 이상 경과한 자'를 삭제해 일부 관련 단체들의 압력에 대구시가 '봐주기' 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빚기도 했다.

또 당시 대구시는 관련 규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10여 차례 이상 열면서도 정작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당시자인 국가유공자와 보훈청 등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은 "말만 공청회였지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2001년 당시 관련 공청회, "국가유공자 의견 전혀 반영 안돼"

반면 대구시는 이 조항에 '본인이 국가유공자일 경우 우선 면허한다'는 조항을 덧붙였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족들은 "국가유공자들의 경우 한국전쟁 상이군경 등이 가장 많은데 이 분들의 연령대로 봤을 때 본인들이 직접 개인택시 면허를 발급 받을 이유가 없고, 부상 유공자들의 경우에도 개인택시 면허를 발급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면서 "이는 대구시가 정작 개인면허가 쓸모없는 국가유공자들에게 내주고 개인택시 면허가 절실한 유공자의 자식들에겐 면허를 주지 않는 이중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결국 당시 10년 가까이 개인택시면허를 발급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국가유공자 유족들은 연일 대구보훈청과 대구시에 항의시위를 전개했고, 당시 대구시장이던 문희갑 전 시장과 유족 대표간의 면담이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당시 문 전 시장은 "개인택시 면허 발급이 국가유공자 유족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한 부분이 있다"며 유족들의 주장을 인정했고, "다음 신규면허 발급시 시정해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구두로 약속해 유공자 유족들은 항의시위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문 전 시장의 말만 믿고 있던 유족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유족들은 지난해 6월 대구시장 선거가 끝난 이후 조해녕 신임시장의 면담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문 전 시장과의 면담에 배석했던 대구시 김아무개 전 국장의 말은 유족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문희갑 전 시장, "시정하겠다" 약속했지만….

당시 김 전 국장을 만났던 박신덕(49)씨는 "문 시장과의 면담 당시 분명히 보상을 해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김 전 국장은 '그 말은 접대성 말이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믿고 있었느냐'면서 오히려 우리를 책망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씨는 "최근 들어서는 관계 공무원들에게 면담을 요구해도 '약속을 잡을 수 없다' '관계자들이 바뀌었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당시 공청회 등에서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면담 과정 중 문 시장이 국가유공자의 유족들에 대한 택시신규면허가 어렵게 된 점을 인정했고 일단 U대회 이후 개인택시 신규면허 발급 기간이 될 때 시정할 수 있도록 할 조치한다고 약속했다"고 유족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접대성 말' 언급에 대해서는 "유공자 유족들을 책망한 적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고 "아직 신규면허 일정도 잡혀져 있지 않은 시점에서 문제점을 시정하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구시 대중교통과 한 관계자도 "2001년도 규정이 바뀌면서 국가유공자들에게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유족들의 요구도 신규면허 모집 요인이 생기면 그 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감안, 수용될 것이지 지금 언급할 시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국가유공자 유족들은 또 다시 자신들이 소외된 채 규정이 바뀌고, 면허 발급 순위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건교부와 국가보훈청이 지난 82년부터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에게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의 우선순위를 부여하면서, 개인택시 면허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유가족들에겐 '단비' 같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자격제로 면허가 발급되던 지난 96년 국가유공자 접수자 27명 중 27명(전체 신규면허자 중 4.7%)이 면허를 발급 받은 것에 비해 순위제가 도입된 지난 98년엔 접수자 48명 중 11명(2.6%), 지난 2001년엔 44명 중 단 3명만이 택시면허(2.4%)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사고 운전경력이 늘어나는 등 자격요건이 까다로워지는데다, 대구시가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약속을 하지 않고 있어 유공자 유족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매번 조건을 충족해 신청을 하면 이어 조건이 까다로워지면, 차라리 유공자 혜택을 볼 필요없이 일반인 자격으로 면허신청을 하는 것이 낫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01년 보훈병원에서 숨진 한국전쟁 상이군경 아버지를 둔 박신덕씨는 "80년대에 3년만 법인택시를 몰면 개인택시 면허를 딸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아들이 면허 따 안정되게 생활하게 되기를 학수고대하다 결국 관련 규정이 바뀌면서 2001년 면허를 따지 못한 채 아버지가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택시 경력 12년째인 박씨는 "대구시가 지난 98년부터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임의로 변경된 기준에 의해 소외된 국가유공자들에 대해 소급적용을 통해서라도 신규면허를 허용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유공자=표창자? … 다가오는 현충일 씁쓸"

개인택시 신규면허를 2차례나 신청했다 떨어진 유공자 2세 이규락(44)씨도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전쟁터에 나가 상해를 입은 국가유공자와 표창을 받은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다가 공정하지 않는 룰을 만들어 차별대우를 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면서 "대구시에서 국가유공자라는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고 다가오는 현충일이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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